우리 사이도 틈이 필요해
  • 이나원 기자
  • 승인 2017.10.3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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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잘앙잘’은 작은 소리로 원망스럽게 종알종알 군소리를 자꾸 내는 모양을 뜻합니다. 이번학기 앙잘앙잘에서는 갖가지 주제를 말하는 대학생의 작은 소리를 모아 보려 합니다. 이번 주제는 ‘오지랖’입니다. 오지랖이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말입니다. 그리고 ‘오지랖이 넓다’라는 관용어구는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는 사람을 빗댄 표현이죠. 하지만 정(情)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오지랖이 지나치게 ‘좁은’ 사람이 비난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학생들은 오지랖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어긋난 관심에
병이 든 관계

굳어진 잣대보단
다채로움을 인정해야


타인과의 관계는 관심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 관심이 마냥 달갑지 않게 다가오기도 하죠. 남들의 평가와 시선이 불편한 오지랖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관심을 가졌을 뿐인데 상대방의 뜻하지 않은 반응으로 무안했던 경우도 있었을 겁니다. 당신이 들었던 말은 따뜻한 관심으로 느껴졌나요. 아니면 오지랖으로 느껴졌나요? 고경표 학생(경영학부 1), 김진명 학생(사회복지학부 2), 임진경 학생(홍익대 회화과)과 함께 오지랖에 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선을 넘은 관심
사회자: 오지랖 때문에 불편했던 경험이 있나요?


진명: 얼마 전에 추석이었잖아요. 집안 어른들께 진로에 대한 잔소리를 듣고 왔어요. ‘행정고시 1~2년은 준비해봐야 하지 않겠니’라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좋은 뜻으로 하신 조언이지만 우리가 필요한 관심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경표: 고등학생 때 일이에요. 수학시험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왔는데 책상 위에 제 시험지가 채점돼서 올려져 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친구가 한 거였어요. 등급 컷을 가늠해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당황스러웠던 경험이었죠.


진경: 저는 고등학생 때 미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친구들끼리 작품을 평가하는 게 불편했어요. 제 작품에 대한 평가가 곧 성적으로 직결되니까요. 지금은 누군가가 제 작품을 평가해주면 고마워요.


사회자: 같은 평가지만 상황에 따라 불편하기도, 고맙기도 했네요.


진경: 맞아요. 비슷한 질문이라도 오지랖이 아닌 관심으로 느껴질 때가 있죠. 얼마 전에 할머니가 서울에 올라오셔서 터미널까지 모셔다드린 적이 있어요. 터미널 앞에서 커플들이 헤어지기 전 사랑을 표현하고 있더라고요.(웃음) 할머니가 그걸 보시고는 ‘진경아, 너는 남자친구 없니?’라고 물어보셨어요. 이제 만나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평소엔 누가 제 연애에 간섭하는 걸 오지랖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땐 할머니의 진심 어린 걱정이 느껴졌어요.


사회자: 그렇다면 관심과 오지랖을 결정하는 기준은 뭘까요?


경표: 관심인지 오지랖인지는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이 건네는 조언은 관심으로 느껴져요. 그렇지만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이 조언하면 그건 오지랖이 아닐까요.


진명: 전문가가 하는 충고라 해도 잘못하면 오지랖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언은 방향을 제시하는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요. ‘이게 맞다’고 답을 정해 놓고 대답을 강요하는 말은 오지랖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렇지만 진심으로 걱정 어린 질문을 받으면 관심으로 느껴지죠.


진경: 관심과 오지랖은 말하는 상대에 따라 구분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까 말을 조심하는 수밖에 없죠.


사회자: 우리 사회에서 오지랖이 심하다고 느껴진 일이 있었나요?


진명: 우리나라는 유독 연예인에게 오지랖이 심한 것 같아요. 끼나 재능을 팔기 위해 대중 앞에 서지만 인성까지 완벽해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우리도 살다 보면 비슷한 실수를 할 수도 있고요. 연예인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순 없어요.


경표: 외적인 면에도 오지랖이 심한 것 같아요. 수능 끝나고 친척끼리 모인 자리에 동갑내기 사촌이 머리를 파랗게 염색하고 왔더라고요. 친척들이 ‘머리가 그게 뭐니’, ‘네가 연예인이니?’라고 한마디씩 하셨어요. 저도 머리색을 밝게 바꾸고 싶어서 탈색약까지 샀는데…. 그 일이 있고 나서 아직까지도 염색을 못 하고 있어요.(웃음)


진경: 맞아요. 저도 겉모습을 보고 참견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고 느꼈어요. 직접적으로 참견하지 않더라도 남들과 다른 모습에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해요. 과도한 시선도 오지랖이 될 수 있죠. 한 번은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지하철을 타고 오는 친구가 메신저로 불쾌함을 표현하더라고요.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이 다 자기를 쳐다봐서 기분이 나쁘대요.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는데 그 친구를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말았어요. 고무줄 바지에 무릎까지 오는 긴 가죽 신발을 신은 모습이 눈길을 끌더라고요. 제가 웃는 걸 보고 친구는 화를 냈죠. 남이 어떻게 입든 무슨 상관이냐면서요.


사회자: 친구의 단호한 태도에 당황하셨을 것 같아요.


진경: 네 맞아요. 너무 미안했어요. 우리가 남의 옷차림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죠. 해외여행 중에 운동복 바지에 정장 상의를 입고 다니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 저희 과 사람도 옷을 독특하게 입고 다니는 편인데요.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가곤 했지만 이후부터 조심하고 있어요.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불편함
사회자: 예전에는 외모를 칭찬하는 말이 무례하다고 여겨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요즘 들어 ‘상대방의 외적요소를 평가하기 때문에 오지랖이다’라는 인식이 생겼죠. 그럼 질문 하나 할게요. 여러분은 ‘예쁘다’라는 말을 건네는 게 오지랖이라고 생각하나요?


진명: 본인이 평가받기 때문에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관심이 과한 게 문제지 관심 자체가 없어져서는 안 되잖아요. ‘예쁘다’를 비롯한 사소한 칭찬도 관심에서 시작된 발언이죠. 습관적으로 쓰이는 말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해요. 지적할 건 지적하되 ‘너는 둔한 사람이야’, ‘너는 차별주의자야’라고 단정 짓고 비난하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요.


경표: 저는 ‘예쁘다’는 표현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예쁘다’ 같은 외적 평가가 만연하면 주변 사람도 외적인 면을 의식하게 돼요. ‘나도 저 사람처럼 꾸며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외모에 신경 쓰게 되겠죠. 이런 사소한 말부터 외모지상주의의 시발점이 되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외모뿐만 아니라 다른 외적요소를 평가하는 말도 줄여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진경: 저는 사소한 불편에도 문제를 제기하는 분위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옛날엔 가족끼리 모인 자리에서 남녀가 겸상하지 못했잖아요. ‘여자가 저렇게 하면 안 돼’ 같은 고정관념도 당연하게 여겨졌고요. 아무도 불편함을 말하지 않았죠. 하지만 이제는 작은 불편이라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생겼어요. ‘예쁘다’라는 흔한 표현에도 불편함이 제기된 것처럼요. 사회가 긍정적으로 바뀌는 과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행복한 거리를 두고 마주하려면
사회자: 적당한 관심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한 동력이 되지만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상처를 남기죠. 오지랖이 넓지 않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표: 대답하기 싫은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그걸 받아들이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라 해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질문이면 말할 수밖에 없잖아요. 집안 어른이 학생에게 성적을 물어보시는 것처럼요. ‘저는 제 성적을 공개하기 싫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무례한 사람이 되죠.


진명: 저도 오지랖으로 느껴진 일이 있었지만 윗사람에게 주관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오지랖을 향한 지적에 좀 더 관대해진다면 불편한 상황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진경: 저는 오지랖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면 곧바로 화를 내곤 했어요. 하지만 대화 중에 갑자기 날카로운 태도를 보이는 게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제 모습이 예민하고 변덕스러워 보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말은 내게 참견으로 느껴지고 기분이 나쁘다’라고 상대방을 차분히 설득하려고 노력했죠. 그러니 상대방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이해해주더라고요.


진명: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고치려는 노력도 필요해요. 저는 오지랖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조성됐다고 생각해요. ‘학생은 염색하면 안 된다’와 같은 고정관념과 편견 때문에 두발규정이 생긴 것처럼요. 편견이 지속되면 오지랖이 가득한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경: 맞아요. 우리 사회는 ‘성공한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틀이 정해져 있잖아요. 이상적인 모델에서 벗어나 있으면 주위에서 오지랖을 부리죠.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경험을 못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돈도 많이 들고 미래도 불확실한데 왜 미술을 하느냐’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사람마다 하고 싶은 일이 다르잖아요. 남들이 생각하는 길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죠. 다양함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사회자: 인간은 서로의 관심에서 벗어나 살 수 없죠. 하지만 동시에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해나갈 권리가 있어요. 관심과 개인의 선택, 둘을 저울질하며 배려하는 태도가 중요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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