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소설에는 새로 태어난 아기와 자신의 어느 구석과 닮았는가를 찾는 아버지가 나온다. 그 아버지가 찾아낸 것은 바로 발가락. 자신의 자식이 아닐지도 모르는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여기려는 마음은 안타깝기도 했다. 자신의 자식이라고 여기고 싶지만, 발가락이 닮은 그 아이에게는 아버지의 유전자 한 조각도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알까.

지난 2월 29일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앞으로 2개월후 인간의 유전자 지도인 게놈 해독 작업이 완료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인류의 궁극적 목적인 난치병 치료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이 거대한 작업이 지난 90년 시작한 이래로 곧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인간의 세포속에 나선형으로 꼬여 있는 23쌍, 46개의 염색체에 모든 유전 정보가 담겨있다. 사람이 어떤 질병에 걸릴지 몇시간 안에 알아낼 수 있으며 특정 유전자를 고쳐 병을 치료하거나 유전자 백신으로 병을 예방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름하여 인간게놈프로젝트(Genome Project).

인간게놈프로젝트는 1990년 10월부터 시작해 5만∼10만개에 달하는 인간 유전자와 30억개의 염기서열을 밝혀내는 연구다. 이 유전자 염기서열(아데닌, 시토신, 구아닌, 티민)을 알파벳처럼 풀어서 책을 만들면 1천쪽 분량의 책 2백권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를 위해 매년 2억달러의 예산을 투입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일본 등 기술선진국들이 참여하고 있다. 휴고(HUGO, human genome organation)에서 각 국가간 게놈 연구를 조율한다. 50여국에서 1천여명의 회원이 봉사하고 있고 연구자들은 매년 모여 그때까지의 게놈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번에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완전히 밝혀진다고 해서 유전자 연구가 끝이 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의학적인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약 5∼10년이 걸리는데 △유전자 개체의 기능 △개인간 세포간 염기서열의 차이 등을 함께 밝혀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그만큼 게놈 연구는 지속적인 연구와 연구자간의 협력을 통해 완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전자 연구는 어떤 식으로 하는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유전체 지도를 만드는 일이다. 이는 유전체에 담겨있는 유전정보에 체계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기준점이다. 왜냐하면 인간 유전체 내의 유전 정보는 너무도 방대하기 때문에 그 유전자가 어느 위치에 있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파악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유전체 지도를 통해 얻어진 유전체 DNA절편의 염기서열을 순차적으로 결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수천만에서 수십억개의 염기서열을 결정하는 것은 현재 유전공학기술로는 힘든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데 이 부문이 바로 선진국들이 서로 협조해 가면서 연구한 분야이다. 그 다음에는 연구를 통해 얻은 유전정보들을 전산화함으로써 마치게 된다.

국내에서는 1994년부터 과학기술처 중심으로 사람과 산업미생물에 대한 시범연구사업이 추진되어 왔고, 농림부 주관으로 벼와 일부 식물에 대한 유전체 연구가 소규모로 착수된 적이 있다. 또 96년 과학기술처가 국내 모든 유전정보를 집대성할 ‘게놈사업단’을 과학기술처 산하 생명공학연구소에 설립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인간게놈연구에 직접적으로 뛰어들지 못한 상황이라 그 수준은 미비하다. 이대실 생명과학연구소 게놈프로젝트 연구단장은 “원론적으로 유전자 정보는 인류 공동의 자산이지만 실질적으로 유전자 정보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어 있고, 사유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기술후발국에서는 국제협력이 필수적이다”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에 미국과 그외 선진국이 주도적으로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면 무료공개한다는 입장이라 한국에서는 그 유전자 지도를 바탕으로 몇몇 제약회사들이 신약을 만들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예측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들어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유전정보의 공공성 문제다. 곧 선진국의 게놈연구가 마무리될 것이지만 벤쳐기업들이 핵심연구소 출신의 우수한 인적 자원을 확보해 유전정보를 사유화할 가능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공동자산인 유전자 정보에서 지적재산권의 문제까지 대두되어 게놈연구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다. 민간기업과 선진국 국책연구소 어느 곳에서 먼저 할 지는 알 수 없지만 유전자 연구와 더불어 지적재산권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오승환 기자> kunstbe@press.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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