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
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여름징역은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
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중의 형벌입니다'양심수로서 20년간 감옥에서 묶였어야 했던 신
영복교수가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에서 한 말이다.여름보다는 차
마 겨울이 낫다지만 따뜻한 방안에 앉았어도 시린 이 겨울, 온기 한 점 없는
0.75평 독방에 아들, 딸들을 보낸 가족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다.

내 한몸 착잡함을 뒤로 한 채,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염원하다 감옥으로 끌
려간 아들, 딸의 석방을 위해 민주화실천가족 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 어머
님들의 주최로 지난 12월 23일 장충 체육관에서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이 열렸다.거리엔 온통 성탄과 세모의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올해로
9회째를 맞는 이날 공연에는 약 4천여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공연이 시작되기
도 전 장충체육관 입구를 여러겹의 줄로 에워쌌다. 장충체육관의 좌석을 가
득 메우고도 자리가 부족하여 상당수의 사람들이 무대 바로 아래의 체육관
바닥까지 신문지를 깔고 앉아야 하는 통에 공연은 10여분이나 지체되었지만
이날 모인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부당하게 갇힌 양심수의 석방을 바라는 소망
들이 큼을 짐작케 했다.사회를 맡은 사회운동가 최광기씨가 공동사회자인 배
우 명계남씨를 소개하자 무대에 선 명계남씨가 "나는 자랑스런 양심수 민가
협 어머님들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쳐 양심수 석방을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며 다짐했다.

이어 관중들이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며 모두 일어나 한 손을 들고 다짐을 함
께 하면서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이 시작됐다.이어 `조국과 청춘',
락그룹 `황신혜밴드' 가 나와 격렬한 사운드와 화려한 조명으로 분위기를 한
층 고조시켰으며 삼각교회 어린이 성가대들이 나와 `루돌프 사슴코',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등의 캐럴로 감옥의 양심수들에게 사랑과 평
화를 노래했다. 크리스마스가 이틀여 앞으로 다가왔건만 감옥의 양심수들과
함께 성탄의 기쁨을 나눌 수 없음에 안타까움과 숙연함이 교차되는 분위기였
다.

무엇보다 가수 장혜진씨가 현재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신인
영씨가 어머님께 쓴 편지를 낭독하자 무대 뒤쪽에 앉아계신 민가협 어머님들
을 비롯하여 관중석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박상민, 최백호,
정태춘.박은옥 부부, 리아 등의 무대가 계속되었고 배우 권해요씨가 박노해씨
의 시 `나는 미친 듯 걷고 싶다'를 낭독하자 관중석 뒷편에 앉아계시던 한 어머
님의 "양심수 삭방하라"라는 절규가 몇차례에 걸쳐 터져나왔다.공연 막바지에
꽃다지의 `세상을 바꾸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가 진행되는 동안
민가협 어머님들이 수감돼있는 가족의 사진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오자 관중
석 여기저기서 "어머님사랑해요"라는 학생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양심수 이경섭군(인하대)의 어머니는 "민간정부가 들어섰는 데 왜 아직도 우
리 아이들은 차디찬 감옥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느냐"며 "양심수들의 석
방없이 그들을 가둔 전, 노 대통령의 사면은 말도 안된다"고 호소했다.끝으로
모든 출연진들이 무대로 나온 가운데 관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며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의 막을 내렸다.
3시간여의 공연이 계속되는 동안 구속된 가족들의 얼굴 사진을 들고 선 민가
협 어머님들의 붉게 물든 두 눈은 또다시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양심수'들의
겨울이 올해가 마지막이기를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김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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