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모 일간지 조간신문에 현직대통령이 6.25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근무
했던 시절 전우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 인쇄되었다. 그 퇴색되고 구겨진
40여년전 군복차림의 사진 한 장은 그 당시 국회에서 야당 국회의원들이 김
영삼대통령이 병력미필이라고 우겨대던 발언을 조용히 잠재울 수 있었다.
이 사진의 제공자는 김대통령의 옛날 전우로서 신문에 난 야당공세의 기사를
보고 옛날 앨범을 뒤적여 신문사에 독자투고를 하여 진실을 밝힌 것이다. 물
론 김대통령은 자신의 학도병 시절 당시에 찍은 사진을 전쟁피난시절에 모두
를 잃어버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평범한 사
진 한 장이 개인의 결백을 밝힐 수도 있고 국가의혼란과 안정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4.19의거를 민주화의 성공으로 일으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사건은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눈알에 최루탄이 박혀 처참하게 죽은 당시 마
산고등학교 학생 김주열의 사진이 일간지에 발표되자 전국은 발칵 뒤집혀져
서 순식간에 자유당정권이 무너져버린 것이다.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문민정부
가 1988년에 들어서면서(그 당시 언론들은 노태우대통령이 우리나라 최초의
문민대통령이라고 칭했다), 정치보다는 문화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려고 최
로로 문화부를 신설했다. 그러면서 파격적으로 그 당시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이며 문학비평가인 이어령씨를 초대 문화부장관에 임명했다. 그리고 이어령
장관은 번뜩이는 혜안으로 참으로많은 일을 했다. 그리고는 해마다 좀더 집중
적으로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려는 의도로 91년부터 연극.영화의 해로 정하고
92년은 춤의 해, 93년은 책의 해등으로 진행된 것이다. 그 이후 대통령의 병역
기피 문제가 한 장의 사진으로 해소되니 사진의 인식문제도 많이 달라져서 몇
몇 뜻있는 사람들의 제의와 수많은 사진 영상인들의 열망으로 1998년은 사진
영상의 해로 제정된 것이다.

한번은 독일의 소도시 에스링겐에서 국제사진 심포지움을 한다고 해서 초대받
아 간 일이 있는데 생각보다 도시규모도 작고 심지어는 번번한 미술관도 없
는데 왜이런 국제적인 행사를 하느냐고 그당시 관장이던 알렉산드로한테 의
아한 생각에 질문을 했더니 그의 답변은 의외로 사진은 미술과는 달리 누구
나 이해할수 있어 국적을 초월한 언어가 될 수 있고 작은 비용으로 시민들의
정서함양과 국제친선에 도움을 준다고 말하는 것이었다.내년 98년 사진영상
의 해에 국민들의 기대는 그리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진 영상인들이
거는 기대는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우선 이미 사진
계에 있었던 일회성의 행사인 전시회나 세미나보다는 미래지향적이고 사진박
물관 건립에 주안점을 두고 싶다. 그리고 사진영상이 소수의 사람만이 즐기
고 공유하는 것이 아닌 우리 국민 모두가 이미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
는 해가 되고싶다.예를 들면 이미 우리 가정에 최소한 카메라 한 대, 텔레비
젼 한 대 없는 집이 없다. 우리 자신 주변만 하더라도 누구나 주민등록증에
증명사진을 부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사진박물관 건립이 하루 아
침에 건립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부지확보라도 해 두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사진이 처음 도입할 당시에 외국인 선교사가 촬영한 구
한말 정겨웠던 모습의 기록사진, 1930년대의 초창기 우리나라의 사진가들의
초기작품에서부터 1970년 경제개발이후의 산업화된 모습과 그 산업과정에서
자연스레 발생한 현대사진까지를 보관하고 전시하고 연구할 종합기관인 사진
박물관을 건립했으면 싶다.그 나라의 문화유산이라는 것은 그 민족의 고난과
영광의 채취가 담긴 것이 값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현재 갈 곳이 없
어서 개인의 장롱이나 뜻있는 이의 개인 연구실, 사무실에 있는 옛날 사진들을
모두 모와 문화재로 복원시켜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오
늘날의 우리의 모습도 시간이 지나면 훌륭한 문화재가 될 수 있다는것도 일
깨워 주고 싶다.

임영균<예술대 사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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