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의 1차 자금지원을 받았는데도 외환·금융시작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 14일 현시기 IMF자금지원이 갖는 의미와 한국사회에 미치는 여향, 노
동자 민중의 대응방향에 대한 논의를 버였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주최
의 정세토론회에서 한성대 경상학부 김상조교수의 발제문을 요약, 싣는다

<편집자주>

오늘날의 IMF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창설될 당시의 모습과 상당히 달라졌지만,
한가지 원칙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외환시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비용은 IMF 구제금융 수혜국, 즉 국제수지 적자국이 국내 긴
축정책을 통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점증하는 국제통화금융질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IMF의 대응력
은 극히 제한되어 있는 가운데, 국제수지 적자국만이 구조조정 비용을 부담하
는 방식으로 국제통화금융질서의 불안한 생명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것이 IMF
체제의 본질적 특성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만이 예외로 인정됨으로써, 결국
IMF체제는 창설 당시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미국적 경제질서를 세계경제질서
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IMF의 구제금융에 따른 조건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당면
외환위기를 초래한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요인에 대한 대책이고, 두번째는 구
조적이고 장기적인 요인에 대한 대책으로 IMF 또는 미국의 관점에서 본 해당
국 경제질서의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에서 이 두 부
분은 혼재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겠지만, 단순화시켜 본다면 첫째 부분은 안정
화 프로그램으로, 두번째 부분은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96년에 2백37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였는데(GNP
대비 4.9%) 이것은 GNP대비 비율로만 본다면 약 7%를 기록한 태국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된다.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는 외채를 누적시
켰고, 특히 1년이내에 상환하여야 할 단기외채가 총외채의 절반 이상을 차지
함으로써 외환시장은 조그마한 충격에도 금방 혼란에 빠질 가능성을 안고 있
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IMF가 부과한 단기대책의 내용은 단호한 것이었다. 우선, 경
상수지적자를 감축하고 외환보유고를 확대하기 위한 대대적인 안정화 프로그
램, 즉 재정.금융상의 긴축정책이 강제되었다. 이에 따라 3% 이하의 GNP 성
장률, 5% 이하의 물가상승률이 1998년의 거시경제적 목표수치로 설정되었으
며, 그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상당기간에 걸쳐 저성장과 고실업의 고통에서 벗
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3%의 GDP 성장률하에서는 실업자 수1백10만명에 실
업율이 5%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긴축정책.부실 금융기관 정리대책의 파급
효과에 못지 않게 필자가 우려하는 바는 우리나라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
해 IMF가 제시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가져올 영향이다.IMF의 구조조정 프로
그램은 시장의 자유, 따라서 소수 기득권층의 자유(그것이 미국.일본의 초국
적 자본이든 또는 국내의 재벌이든 간에)만을 확대하는 정책이다. 우리가 IMF
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책을 강구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
이 외세에 의한 것이라는 감상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이기 때문이다

현재 IMF가 요구하고 있는 구조조정 정책이나 모두 진정한 의미의 재벌해체
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선진국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너무나 후진
적인 재벌들의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번 IMF의 요구는
재벌들의 힘에 억눌려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던 시장기능을 활성화하는, 즉 시
장에 보다 많은 자유를 부여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적 자유화정책의 산물이
다.IMF는 큰 강제력을 수반하고있기 때문에, IMF의 요구는 재벌체제의 후진
성을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며, 이를 현실화하는 것은 진보진영의 입
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결론적으로 IMF의 요구로 인해 재벌의 후진성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그러
나 구조조정 과정이 신자유주의적인 IMF에 의해 주도되거나 또는 심지어 수
구적인 재벌.차기정권에 의해 왜곡된다면, 그 결과는 재벌해체가 아니라 보
다 세련화된 거대독점자본의 탄생일 뿐이다. 구조조정 과정에 대한 노동.진
보진영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근본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IMF와의 협
상이 타결되고 실제 자금지원이 시작된 현 시점에서도 한국 경제의 위기상황
은 좀처럼 수그러지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의 경제상황은 전형적인 신
용공황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편승하여 재벌들은 한편으로는 민족주
의적 감정을 선도함으로써 자신들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를 호도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량해고와 임금삭감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려
는 구조조정 전략을 획책하고 있다.

사태가 이처럼 악화된 직접적 원인은 물론 현 정부의 정책적 무능에 있다. 기
아사태가 발생했을 때 존재하지도 않는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말
만 되풀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용공황이 눈앞에 보이는 현 순간에도 정부
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시장이 존재하지 않거나 불완전할 때
경제활동에 개입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특히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핵심
인 금융질서가 붕괴될 위험에 직면하였을 때 이를 지탱하는 것은 정부의 절대
적 의무이며, 이것은 IMF를 포함한 신자유주의자들조차 부정하지 않는다.전
술한 바와 같이, 재벌에 대한 IMF의구조개선 요구사항은 차입의존적 경영행
태 쇄신과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일 뿐 진정한 의미의 재벌해체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재벌해체는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 차원을 넘어
총수 1인의 소유경영권 독점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대책을 포함할 때에
만이 실현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사항이 있다. `재벌이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른바 국경없는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재
벌체제는 어쩔 수 없는 필요악 아닌가'라는 재벌 자신과 정부의 변명이 그것
이다. 이 변명에 다수의 노동자들이 체념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재벌해체라는 진보진영의 대안이 기업해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모든 대기업을 중소기업으로 만들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치열한 국제경쟁에
서 이기기 위해 재벌이 필요악이라고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
쟁력 있는 개별기업으로서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이지, 삼성그룹 전체나
현대그룹 전체가 아니다.결론적으로 그룹내부 경영의 측면에서나 국민경제
전체에 대해서나 독재를 자행하고 있는 재벌을 근원적으로 혁신하지 않고서
는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의 상태로 전락할 것이며, 치
열한 국제경쟁에서도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벌체제의 근원적 혁신은
형평성의 측면에서나 효율성의 측면에서나 절박한 과제이다.

긴축정책과 자유화정책을 핵심으로 하는 IMF의 정책처방은 특히 노동자계층
에 대해 파괴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또한 IMF의 정책처방에 실제 집
행되는 과정에서 재벌과 차기 정권에 의해 수구적 방향으로 왜곡될 위험성도
매우 농후하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IMF로부터도, 수구적인 재벌과 차기 정
권으로부터도 노동자와 진보진영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수
구적인 재벌과 정치권을 근원적으로 혁신함으로써 진보적 경제사회질서를 창
출하는 과제는 노동자와 진보진영의 것일 수밖에 없다.현 경제위기를 극복하
는 과정에서 노동자도 고통을 부담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한 경제적.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노동자들 자신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근원적 혁
신을 통해 재벌과 정치권도 뼈를 깎는 고통을 부담할 것을 요구하는 노동자
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참여의 권리, 그리고 이에 따른 책임
의 분담'. 이 양자가 병존할 때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며, 우리는 희
망의 미래사회로 나아가는 실천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권리와 책임이 병
존하는 미래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노동자.민중의 경제
적·정치적 주장이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즉 민주.진보진영의 정치세
력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진보에 의해 견제되지 않는 보수는 수구에 불과하
며, 올해 분명히 확인했듯이 수구권력은 위기극복을 위한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고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

김상조 <한성대 경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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