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월 혁명의 기억은 현장에서 일하는 운동가들에게는 아직도 훈장처럼 남아있다. 비록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것이 많은 미완성의 혁명이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전국이 민주화의 열기로 뜨거웠던 87년 초여름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 무엇이 한국사람들을 거리로 거리로 내몰았으며, 넥타이를 매고 ‘독재정권 물러가고 직선제를 수용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게 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를 카치아피카스는 ‘에로스 효과’ 때문이라고 간결하게 설명한다. 그는 68년 혁명도 이와 같은 이론의 틀로 설명하면서 신체적·정신적·물질적 억압에 대한 인간 내면의 본능적 해방의 자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그의 스승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로부터 따온 것이 많은데, 사실 이도 마르쿠제가 ‘에로스와 문명’(1955)에서 이야기한 에로스의 개념을 차용한 개념. 그러나 그가 혁명을 설명하는 틀로 제시한 에로스 효과가 68혁명과 그 지지세력인 신좌파의 활동을 이론적 틀로 설명한 최초의 이론가라는 이유때문인지 그 비판은 빛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와 함께 사건이 발생한 다음에 이론의 틀거리를 설명하는 사후적이고 기술적인 이론이라는 비판이 있으나 이는 그도 함께 인정하는 바이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다음과 같은 설명을 통해 손쉽게 설명한다. “철학적 단계에서 기존의 맑스는 상품의 생산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노동의 가치에 역점을 두고 하버마스가 민주주의 의사 결정과정에서 중요한 의사소통의 개념을 이야기하고 나의 스승 마르쿠제가 인간의 예술활동에 주목을 한다면 나는 혁명이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이다. 이는 그가 비록 맑스와 같은 거대담론을 제시한 이론가는 아니더라도 최근 98년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퇴진 운동과 같은
국지적인 투쟁사례에 대한 이론적 틀거리를 제공한 데 대한 자부심일 터.

책에서 이야기한 것이지만 그가 말하는 이론은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지 않는 현실원칙’을 만드는 것이다. 68년 1월 베트남의 구정 공세부터 시작해 프라하의 봄, 프랑스의 5월 사건, 서독에서의 학생봉기, 마틴 루터 킹 암살, 미국 칼럼비아 대학의 점거사태, 미국의 5월 학생운동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고 신좌파가 이 가운데 하는 역할을 주목하는 것이다. 그는 80년대 후반 한국의 87년 6월 혁명을 포함하여 필리핀의 마르코스 독재타도 투쟁, 중국의 천안문 사태 등 동아시아의 민주화운동사례도 68혁명의 연장선상에서 본다. 가장 최근에 이르러서는 멕시코 치아파스주의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이끄는 사파티스타와 한국 97년 총파업도 본질적으로는 같다. 그는 “이 개개의 사건이 독립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모두 연관되어 있는 것들이다”라며 “다음 세기에 이러한 투쟁은 더욱 늘어날 것이며 이것이 바로 에로스 효과의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일련의 운동을 설명하는 데 있어 반드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 ‘신좌파’의 개념이다. 그는 신좌파를 현존 좌파로부터 독립한 ‘좌파’로 보지 않고 보수주의 세력과 전통적 좌파 양쪽 모두의 권력구조로부터 도전한 ‘좌파’라고 봤다. “신좌파가 제기한 문제는 구좌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개량하고자 그 체제에 침윤되어 있는 ‘억압’을 폭로하는 것”이고, “구좌파가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체제에 어느정도 유기적으로 ‘기능적’인 역할을 한다면 신좌파의 역할은 구좌파의 구조적 지위를 파괴하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듯 구좌파가 노동문제에 몰두하고 신좌파가 반전, 여성운동, 학생운동에 몰두하는 같은 단순한 범주 구분이 아니다. 즉, 신좌파의 궁극적 역할은 구좌파가 보수주의의 반대급부로서 존재하면서 생기는 지위들을 하나씩 파괴하고 ‘인간해방’이라는 진정한 자유로의 도약 가능성을 간직하라고 충고하는 것이다.

신좌파는 단순히 특정 조직이나 이론가들에 기대어 설명할 경우에는 신좌파 운동이 함축하고 있는 상상력과 전망을 밝힐 수 없다. 그의 말대로 “신좌파는 당의 상층부나 대학의 상아탑에서 하나의 성역으로서 보존될 이데올로기적 활동이 아니라 대중이 사회체계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이성적 인간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나 예외 없는 원칙이 없듯이, 약점 없는 완벽한 이론체계도 없다. 그의 강연이 끝난 후 질문 시간에는 에로스 효과와 신좌파에 대한 관련 문제가 지적되었다. △에로스 효과가 민중들의 억압에 대한 자발적인 운동이라면 이것이 전체주의, 파시즘에 반동적으로 이용당할 우려가 있지 않는가 △에로스 효과가 너무 사후적이고 기술적인 개념이 아닌가 △동양과 서양의 특수성을 염두하지 않고 너무 전세계적이라고 말한 것이 아닌가 △최근 억압의 형태가 익명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데, 이런 억압은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가 △신좌파가 제시하는 대안적 정치형태가 있는가 라는 많은 질문이 지적되었다. 이와 같은 질문을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설명해 주려 했으나 한국의 학생들에게는 가깝게 와닿지 않는 예를 들면서 논점을 흐린 점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강연은 아직 한국에서는 미진한 신좌파 관련 첫 강연이라는 점에서 층분히 유의미하지 않을까. 진보평론이 ‘구좌파와 신좌파, 학계와 현장 활동을 포괄하는 좌파 이론의 집합체’라는 거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했어도 여전히 맑스주의 이론의 문제지점에서 고민하는 것들에서 보듯 한국은 아직 신좌파의 논의 자체도 어렵다. 다만 역동적인 한국 학생운동이 한국의 신좌파적 운동의 논의점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학자들이 방한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단순히 책 홍보와 강연에 치우친 데 비해 카치아피카스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광주를 방문할 예정이다. 그는 강연에서 자신은 신좌파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번 방한이 자신의 영화만 위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운동을 고민하기 위한 연장선이라는 것. 아마 이것이 그가 자신을 신좌파라고 못 박은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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