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한 취재가 없었더라면
들리지 않았을 목소리

대학보도부 기자는 내면적 갈등을 겪는다. 대학보도부에서 다루는 민감한 학·내외 사항을 취재할 때 기자는 부담을 느낀다. 대표적인 상황은 사건 원인을 제공한 취재원에게 껄끄러운 질문을 할 때다. 질문 하나하나에 취재원은 예민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계속 질문을 던지며 사건을 깊숙하게 파헤쳐야만 하는 기자의 숙명과 심리적 압박 사이에 발생하는 내면적 갈등은 늘 무거운 짐이다.

  이런 고민을 대학보도부장인 선배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선배의 답은 “나 역시도”였다. 하지만 선배는 “그럼에도 기자는 약자와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해야 한다”며 “두려움과 압박이 밀려올 때면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하며 이겨내고 있다”고 답했다. 선배의 조언이 어떤 의미인지 그 뒤로도 한참을 생각했다.

  그 조언의 진의를 깨우친 건 지난달 ‘310관 8호기 엘리베이터 하강 사고’를 취재하면서였다. 당시 관리자가 부재해 CCTV는 살펴볼 수 없었고 통합상황실 관계자는 근무일지에 8호기 이상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음날 다시 방문해 CCTV 기록을 확인해보니 1층에서 출발한 엘리베이터는 3층으로 향하던 중 급정지했고 이내 2층까지 하강했다. 찰나의 사고에 놀란 탑승자들의 표정이 바라보고 있던 모니터 너머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충격적이었다. 순간 두려움에 떨고 있는 탑승자들의 표정이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선배가 말했던 피해자 입장의 취재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기자는 CCTV 속 피해자의 두려움에 공감했다. 그리고 취재에 임하는 자세를 다잡았다. 철저하게 질문하고 파고들겠다고 결심했다.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비단 사고 당시 8호기에 탑승해 있던 사람들만을 위한 다짐은 아니었다. 이번 사고의 피해자는 물론 사고 소식을 전해 들으며 불안함을 느꼈을 학내 구성원, 그간 수차례 반복됐던 310관 엘리베이터 사고로 두려움에 떨었던 피해자들, 앞으로 같은 이유로 발생할지 모르는 피해자 등 모두를 위한 다짐이었다.
 
  기자는 묻고 또 물으며 취재원을 난감하고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거듭해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가 묻기 전까지 관계자들은 사고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별다른 조치 없이 엘리베이터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된 질문과 취재로 관계자들은 8호기 엘리베이터 사고 사실을 인지했다. 그리고 해당 엘리베이터를 점검해 사고의 원인이 ‘압력 스위치 오작동’이었음을 알아냈고 문제가 된 부분을 수리했다.

  사회의 여러 사건에서 피해자는 권력적 우위에 서지 못한 약자인 경우가 많다. 피해자와 대치하는 상대가 거대 권력인 경우 피해자의 입장은 묵살돼 피해자는 권리를 주장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다. 이럴 때 기자와 언론은 피해자의 목소리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 역할은 기자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피해자의 입장에 귀 기울이며 사건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데서 시작한다.

  논란을 가시화한다는 것만으로 기자는 심리적 압박을 느껴왔다. 그러나 논란을 마주한 기자가 이를 피해자 입장에서 바라보고 피해자를 위해 용기 있게 문제를 공론화할 때 비로소 사회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부끄럽게도 기자는 제 역할을 알고 있었음에도 취재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겠다. 앞으로도 약자의 피해에 분노할 줄 알고 그 입장에서 사건의 원인과 책임을 따져 묻는 기자가 되겠다. 순간의 압박감에 귀를 닫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행위를 부끄럽게 생각하며 내면적 갈등을 몰아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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