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잘앙잘은 작은 소리로 원망스럽게 종알종알 군소리를 자꾸 내는 모양을 뜻합니다. 이번학기 앙잘앙잘에서는 갖가지 주제를 말하는 대학생의 작은 소리를 모아 보려 합니다. 이번 주제는 인간관계입니다. 올해 중앙대 대나무숲에 올라온 게시글 중 인간관계란 단어가 들어간 게시글은 총 73개라고 합니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대학생들은 어떤 고민을 갖고 있을지, 3명의 학생들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적극은 100점 소극은 0?
인관관계는 성적표가 아니야
 
성격이 다를 뿐
다름에 열등은 없어
 
 
  ‘좋은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하면 흔히 친구가 많은 사람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예담 펴냄)의 작가 서늘한 여름밤원하지 않는 관계를 억지로 견디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인간관계 기술이다고 말하죠. 사회에선 어떤 인간관계가 이상적으로 여겨질까요? 우리는 꼭 사회가 내린 정의에 맞춰 인간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이번 좌담회는 이주엽 학생(화학신소재공학부 3), 박주혁 학생(전자전기공학부 3), 박예진 학생(국민대 한국역사학과)과 함께 했습니다.
 
사회자: 여러분은 낯선 사람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하나요?
 
예진: 전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요. 낯을 별로 안 가리는 성격이죠.
 
주엽: 저는 첫 만남에서 낯을 가리는 편이에요. 어색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바꾸기 어렵거든요.
 
주혁: 단둘이 있으면 제가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이끌어요. 상대방이 나와 있는 시간을 재미없다고 느끼지 않길 바라거든요. 하지만 여럿이 있는 자리에선 분위기에 맞춰 조용히 있는 편이죠.
 
 
 
 
  대학친구는 겉친구?
사회자:대학친구는 겉친구란 말 들어보셨나요? 대학에서 만나는 친구는 겉으로만 친구일 뿐 속으로는 진정한 우정을 주고받지 않는다는 의미인데요. 여러분은 대학에서 형성하는 인간관계에 어떤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예진: 대학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넓고 얕은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것 같아요. 학창시절에는 대부분 같은 지역에서 자란 사람과 친구가 돼요. 성장 배경이 비슷해 동질감을 느끼죠. 그런데 대학에 오면 여러 지역에서 온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 보니 동질감이 덜 해요. 그래서 넓고 얕은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에서 겉친구란 단어가 나온 것 같아요.
 
주혁: 대신에 그만큼 마음이 맞는 사람 몇 명과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과는 한 학년에 200명이 넘어요. 그래서 모든 동기와 친해지기 어렵죠.
 
주엽: 맞아요. 학과 학생 수에 따라 친구가 되는 양상이 달라지기도 해요. 저는 학생 수가 많은 과에서 적은 과로 전과를 했어요. 사람이 많은 과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다니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에 수가 적은 과는 학과 전체가 두루두루 친하더라고요.
 
사회자: 고등학교보다 대학에서 친구 사귀는 게 더 어렵다고 생각하세요?
 
주혁: 어려운 건 아니지만 대학에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해요. 고등학생 때는 오랜 시간 같이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기 때문에 굳이 누구와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대학에선 새터나 OT 이후에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형성되기 어렵죠. 고등학생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엽: 더군다나 대학은 시간표가 각자 달라서 친해질 기회가 적어요. 휴학이나 군대 등으로 만남이 단절되니까 깊게 사귀기 힘들죠. 계속 만나면서 감정이 오가야 관계가 형성되는데 말이에요.
 
주혁: 맞아요. 저도 전역하고 나선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해요. 복학하고 보니 과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입대 전에 알고 지냈던 친구들도 시간대가 안 맞아서 만나기 힘들죠. 제가 따로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 친구관계는 제자리에 머무는 것 같아요.
 
사회자: 스스로 얼마나 노력하냐에 따라 인간관계가 달라지네요. 여러분은 대학에서 어떻게 친구를 사귀고 있나요?
 
예진: 저는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해요. 새내기 시절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친구를 사귀었죠. 그러다 2학년이 되고 나서 넓은 인간관계를 맺는 게 부질없다고 느껴졌어요. 힘들 때 만날 수 있고 아무 때나 편하게 전화할 수 있는 친구는 몇 안 되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사람만 챙겨요.
 
주엽: 저는 낯을 가려서 예진씨처럼 넓은 인간관계를 맺진 못하는 편이에요. 지금은 새내기 때 같이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과 주로 연락하며 지내요.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때 어려움을 많이 겪는 거 같아요.
 
 
  기술이 되어버린 인간관계
사회자: 인간관계가 부질없거나 어렵다고 느끼는 건 모두 인간관계를 잘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인간관계를 한다는 건 뭘까요?
 
주혁: 사회에서 정의하는 인간관계를 잘 하는 기준이 있다고 생각해요. 대학이나 군대, 기업 등 사람이 모인 단체는 지향하는 목표가 있잖아요.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원만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인간관계를 잘 한다고 여겨지죠.
 
주엽: 저는 인간관계를 잘 한다고 하면 인맥관리가 떠올라요. 사회생활을 하면 인맥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대학만 해도 수업을 들을 때 궁금한 점을 물어볼 친구가 없으면 곤란해요. 특히 저는 휴학을 오랫동안하고 이번학기에 복학을 하면서 인맥관리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전공수업에서 조별과제를 하기 위해 조를 짤 때였죠. 교수님께서 같이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학생은 먼저 조를 편성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복학생이라 수강생 중에 친한 사람이 없었죠. 그래도 수강생이 많은 수업이니까 조를 편성하지 못한 사람과 같은 조가 되겠거니 했어요. 교수님께서 먼저 짜인 조를 확인하라고 종이를 돌리시는데 종이에 적힌 이름이 꽤 많더라고요. 설마 하는 마음으로 E-Class에 들어가 수강생 수를 확인했죠. 확인해보니까 수강생 수가 98명인데 종이에 적힌 사람은 97명이었어요.
 
사회자: 사람이 100명 가까이 되는데 주엽씨 빼고 전부 조가 짜인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주엽:드랍했죠. 수강을 취소했어요. 처음엔 인간관계를 형식적으로 묘사하는 것 같아서 인맥관리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인맥관리가 필요할 수도 있단 걸 느꼈죠. 필요에 의해 인간관계를 맺어야만 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사회자: 사회에서는 인맥관리를 좋은 인간관계를 갖기 위한 방법으로 여기죠. 인맥관리 기술을 설명하는 책이 나오기도 하잖아요. 그렇다면 이런 책이나 정보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요?
 
주혁: 진솔한 인간관계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은 친구 이외에도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잖아요? 특히 취직하면 다양한 세대와 함께 일해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면 인간관계 기술이 도움 되겠죠.
 
예진: 인간관계 기술과 소중한 친구를 대하는 방법이 아예 다르진 않다고 생각해요. 모든 친구가 언제나 나와 잘 맞는 건 아니니까 다름을 받아들이려면 어쩔 땐 관계를 맺는 기술이 필요하기도 하잖아요.
 
주엽: 맞아요. 하지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적당히 수긍하거나 걸러 듣는 등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조금 씁쓸해요. 속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되니까요.
 
일러스트 윤국화님
  인간관계에 정답은 없어
사회자: 구인·구직 사이트를 보면 대부분 밝고 적극적인성격을 가진 사람을 찾아요. 친구관계에서도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친구를 사귄다고 생각하죠. 왜 사람들은 적극적인 성격을 장점으로 볼까요?
 
예진: 친밀한 성격이 관계를 형성할 때 긍정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죠. 부탁을 받거나 함께 일을 할 때 상대가 친밀하게 다가오면 분위기가 좋아지잖아요.
 
주혁: 낮은 취업률과 높은 실업률 때문에 사회가 취업 중심으로 바뀐 영향이라 생각해요. 취업 중심 사회에서 적극적인 성격은 중요한 능력으로 여겨지죠. 기업 입장에선 사람들과 어울려 결과를 낼 수 있는 인재를 필요로 하잖아요.
 
예진: 맞아요. 면접에선 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하고 매력을 드러내야 해요.
 
사회자: 사람이 상품이 되고 적극적인 성격이 메리트가 되는군요.
 
주엽: 그렇죠. 소극적인 사람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요. 인간관계와 개인의 성격이 사회 기준에 따라 한 사람의 자산으로 평가되거든요. 성격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인데 말이죠.
 
사회자: 친구를 만들 때도 적극적인 성격이 꼭 필요할까요?
 
예진: 인간관계를 폭넓게 맺고 싶다면 적극적인 성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야 하잖아요.
 
주엽: 먼저 손 내밀어주길 바라는 사람은 많지만,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은 적어요. 이 상황에선 적극적으로 손 내미는 사람이 당연히 더 많은 사람의 손을 잡겠죠. 성격이 능력이 된다면 적극적인 사람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거예요.
 
사회자: 그렇다면 적극적이지 못해서 인간관계가 좁은 사람은 실패자가 되는 걸까요?
 
주엽: 아니에요.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는 사람을 실패자로 규정하면 성격의 다양성이 인정받지 못해요. 특정 성격에게만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진 않으니까요.
 
예진: 저는 오히려 좁은 인간관계에 만족하는 사람이 부러워요. 넓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감정과 시간을 많이 소모하게 되거든요.
 
주엽: 저는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에요. 그래서 사회의 기준, 대학의 기준에 따르면 실패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죠. 소극적이면 당장 조별 과제 조원 찾기도 힘들고 팀을 꾸려서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어려워요. 더군다나 조별 과제는 성적으로 이어지잖아요. 낮은 조별 과제 성적을 받으면 다른 사람에 비해 내 성격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진: 하지만 반드시 많은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어요. 제가 아는 선배는 학과 생활보다 동아리 활동에 더 집중해요. 같이 동아리를 하는 사람하고만 어울려도 만족하고 즐거워하죠.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중요해요.
 
주혁: 맞아요. 결국 본인이 만족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사회가 적극적인 성격을 좋아한다고 소극적인 사람이 위축될 필요는 없어요. 성격에 따라 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 다르니까요.
 
사회자: 맞아요.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는 성격이 모두 나와 같아지기를 바라지 말라, 매끈한 돌이나 거친 돌이나 다 제각기 쓸모가 있는 법이다라고 말했죠. 사회가 정한 이상적인 인간관계, 좋은 성격에 스스로를 얽매지 않길 바라면서 이만 좌담회를 마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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