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에 지워진 너에게
  • 김풀잎 기자
  • 승인 2017.09.2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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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의 노래 : 장자,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

 오늘도 미동 없이 강의를 듣고 있는 당신, 그 굳어버린 얼굴에서 지루함과 어려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네요. 오늘만큼은 신나게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면 우리 같이 차근차근 들여다보죠. 그럼 낯선 내용이더라도 끄떡없이 끄덕끄덕, 할 수 있을 거예요. 이번주에는 장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들여다봤어요.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학적 사유는 흘러간 시간과 흘러갈 시간 모두를 무색하게 했죠. 그럼, 함께 끄덕일 준비 되셨나요?
  

극심한 취업난에 취업 준비자의 ‘스펙’은 고공으로 치솟고 있다. 기업의 인사 관계자들이 좀 더 ‘쓸모’ 있는 인재를 원하기 때문이다. 스펙은 지원자의 쓸모를 입증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생산성을 기준으로 삼는 현재의 채용방식 속에서 개인의 인간성은 잊힌 지 오래다. ‘효용’의 신화에 지쳐버린 이들에게 ‘쓸모없어도 괜찮다’며 위로하는 이가 있다. 2500년 전으로부터 들려오는 장자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지난 19일 학술정보원이 주최한 2차 창의인문독서특강에서 이연도 교수(다빈치교양대학)가 ‘자유로운 영혼의 노래 : 장자,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을 주제로 강연했다. 

 

  아직 불안한 신세계
  시작에 앞서 이연도 교수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를 소개했다. ‘특이점’은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점을 말한다. 책에 따르면 2024년에는 번역 업무에, 나아가 2053년에는 외과수술에까지 특이점이 온다. 가령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세련된 번역 결과물을 내놓고, 더 정교하게 수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특이점이 올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연도 교수가 청중에게 물었다. “특이점이 온 사회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한 학생이 대답했다. “두려워요. 복제기술이나 인공지능 등이 제 존재를 대체할까 봐요.” 다른 청중 또한 이에 동의하듯 끄덕였다.
 
  이연도 교수는 과학 기술에 관한 청중의 태도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특이점에 이르면 인간에 의한 노동은 최소화된다. 인간은 절약된 노동시간으로 노동 이외의 가치 창출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의 대전제로 인간 노동력의 대체를 꼽기도 했다. 그러나 대중은 특이점이 온 미래를 어딘가 불안하고 위험한 느낌과 연관 짓는다.
 
  과학 기술에 깃든 인간의 불안은 미래사회를 ‘디스토피아’로 묘사하는 다수의 문학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가령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속 사회는 고도의 기술로 고통을 원천 차단해 오직 쾌락만 존재하는 유토피아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세계를 벗어나 고통받을 자유, 불안해질 자유 등을 찾아 나선다. 독자 역시 이 멋진 신세계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낀다.
 
 
   기계의 마음에 인간은 없다
  “특이점이 올 미래를 대비하는 것과 별개로 그 사회가 좋은 사회일지의 여부는 의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죠.” 이연도 교수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살기 좋은 사회를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인간이 미래에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는 이유다. 하지만 이 같은 두려움은 오늘날에 국한된 감정이 아니다. 먼 과거에서부터 기술의 발전을 경계하는 의식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강연 중 함께 읽은 장자의 『천지』 구절 속에 이런 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은 길가에서 밭일하는 노인을 만난다. 드는 힘에 비해 더디고 느린 노인을 딱하게 여긴 자공은 용두레라는 기계를 알려준다. 그러자 노인은 불끈 화를 내더니 이윽고 웃음을 띠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스승에게 들은 것이지만 기계라는 것은 반드시 기계로서의 기능이 있게 마련이네. 기계의 기능이 있는 한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되고(機心),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네. 본성을 보전하지 못하게 되면 생명이 자리를 잃고(神生不定) 생명이 자리를 잃으면 도가 깃들지 못하는 법이네. 내가 (기계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이 여겨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네”
 
  장자는 기심(機心)이 인간의 본성과 존재를 보전하지 못하게 한다고 비판한다. 이연도 교수는 현대 사회에 만연한 기심이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이 ‘기계의 마음’을 가진 결과 사회가 구조적 모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는 기계가 늘어나는데도 인간은 끊임없이 노동에 시달리는 모순이 그 결과다. “기계가 아껴준 시간으로 여가시간이 늘어나야 하는데 오히려 노동시간이 늘어나고 있죠.”
 
  이 과정은 인간 삶의 일부였던 노동이 기계의 등장으로 지위가 낮아지면서 시작된다. 노동의 가치가 격하되자 모두의 것이였던 노동이 기계라는 생산 수단을 가지지 못한 하위 계층만의 전유물이 됐다. 그리고 생산 수단을 가진 이들은 더 많은 잉여를 욕망하며 효율을 강조하게 된다. 이들을 따라 노동자와 기계 또한 ‘효율적으로’ 더 많은 생산을 위해 일했지만 효율의 결과는 그들의 몫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현 사회구조에서 발현된 4차 산업혁명은 이 모순을 돌파할 수 있을까. 인문학자들은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과학 기술로 극대화된 효율은 추가적인 잉여의 공급을 보장하지만 새로운 잉여 또한 소수에게 집중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회구조에선 과학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다수의 사람이 신분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빠질 겁니다.”
 
 
  쓸모 너머의 지점으로
  장자는 효율의 결과를 우려하는 동시에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 자체를 부정한다. 장자에게 효율이란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연도 교수는 『인간세』 속 장자가 생각하는 ‘쓸모’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목수 장석은 아주 큰 도토리나무를 발견하고도 지나친다. 그의 제자가 이처럼 훌륭한 재목을 거들떠보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재목이 못되어 쓸데없는 나무이기에 이토록 오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 이후 장석의 꿈에 그 큰 나무가 등장해 묻는다.

  ‘그대는 나를 어디에다 견주려는 것인가? …나는 쓸모없기를 바란지가 오래다. 만약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어찌 이렇게 커질 수 있었겠는가? 그대처럼 죽을 날이 머지않은 쓸모없는 사람이 어찌 쓸모없는 나무를 알 수가 있겠는가?’
 
   인간이 규정한 쓸모의 기준으로 대상의 쓸모를 판단할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오늘날 절대적으로 쓸모만을 추구해온 현대인에게 쓸모 자체의 의미를 고민하게 한다. 인간이 규정한 쓸모의 정의는 일반적이거나 고정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연도 교수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편 잘 우는 거위와 울지 못하는 거위 중 울지 못하는 거위가 잡히는 것을 본 제자들이 장자에게 다시 물었다. ‘어제 산의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천수를 다할 수 있었는데 오늘 이 집의 거위는 쓸모가 없어서 죽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장차 어디에 서겠습니까?’
장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중간에 처하겠다.’
 
  “장자가 중간이라는 경계를 웃으며 얘기한 이유는 뭘까요?” 이연도 교수는 장자의 대답에 주목했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중간이 절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연도 교수는 장자의 중간은 쓸모를 구분하거나 규정하는 모든 행위를 부정하는, 다른 형태의 가치일 것으로 짐작된다고만 말했다.  
 
  그리고 그 중간 지점을 찾아가는 고민은 청중의 몫으로 남겨뒀다. 누군가의 해석에 의존한 가르침보단 저마다의 사유 과정 자체가 가치 있기 때문이다. “장자 본연의 뜻은 장자만이 알고 있어요. 여러분이 자유로운 통찰로 그 진의를 파악해보세요.” 장자는 『천도』에서 ‘전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군요’라며 개인의 깨달음이 문자를 통해 온전히 전달될 수 없음을 지적한 바 있다. 더욱이 우화 위주로 구성된 『장자』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에 편견이나 기존의 지식에 매이지 않은 채로 스스로 일독해볼 것을 권했다. 
 
  마지막으로 이연도 교수는 과학 발전이 인문학적 사유와 함께 이뤄져야 함을 다시금 강조했다. ‘인간을 위한 발전’은 휴머니즘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고전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보편적 기준을 다룬다. 그렇기에 쓸모를 성찰하고 기계를 대하는 마음을 비판하는 장자의 생각은 오늘날 그리고 미래까지도 유효하다.
 
  역사 속 모든 사상은 당대의 사회질서가 위협받을 때 태동했다. 특이점이라는 격동적인 변화를 맞이하기 이전에 사상적 변화와 학문 경계를 뛰어넘은 종합적 사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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