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동물
  • 이지은 기자
  • 승인 2017.09.25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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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으로 마주했던
육식주의 스키마

기자는 기획부에서 매주 새로운 기획으로 ‘tipping point(티핑 포인트)’를 찍으며 독자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획부에서는 프랜차이즈 갑질’, ‘채식’, ‘안티 페미니즘이라는 3개의 주제에 티핑 포인트를 찍었습니다. 세 주제와 관련한 기사를 준비하면서 각 주제를 바라보는 제 자신의 시각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중에서도 채식기획은 제게 강렬한 티핑 포인트가 됐습니다. 채식 기획은 채식을 돌아보는 계기도 됐지만 동물권이라는 새로운 권리에도 한 번 더 티핑 포인트를 찍어주었습니다.

  채식 기획 기사를 위해 다양한 채식인들을 인터뷰하면서 동물권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접했습니다. 전국적으로 구제역이나 조류 독감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각종 언론은 피해로 활기를 잃은 농가’, ‘사람에게 전염될 가능성등에 집중합니다. 인간의 재산과 안전에 관한 이야기에만 목소리를 높일 뿐 죽어간 동물 그 자체에는 큰 관심을 주지 않죠.

  양계장의 닭들은 A4 용지보다도 좁은 닭장에 갇혀 움직이지도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갑니다. 이런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 닭을 포함한 각종 동물들은 속수무책으로 전염병에 감염돼 그대로 목숨을 잃거나 심지어는 생매장 당합니다. 인간이 만든 가혹한 환경에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던 동물들이 결국 그 환경으로 인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거죠. 이런 사태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안전을 위한 최선의 결정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인식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육식주의 스키마(schema)’가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키마는 기존의 신념과 생각이 구조화된 상태를 이릅니다. 멜라니 조이가 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모멘토 펴냄)에 따르면 비채식인들이 육식주의 스키마로 구성된 이데올로기로 육식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마저도 동물인 인간은 육식주의 스키마를 통해 다른 동물들을 타자화합니다. 그리고 타자화된 동물을 또다시 반려동물, 유해동물, 식용동물 등으로 분류해 인식하죠. 이런 육식주의 스키마 작업이 완료되면 인간은 더 이상 동물과 동일시되지 않습니다. 또한 다른 동물들에게 계급을 매김으로써 동물 착취를 정당화할 수 있게 되죠. 인간과 가깝다고 인식될수록 높은 계급을 부여받고, 그렇지 않을수록 낮은 계급으로 취급돼 생명을 착취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입니다. 육식주의 스키마에 따라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인 개를 식용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에 눈살을 찌푸립니다. 그러나 식용동물인 돼지나 소를 먹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죠. 같은 동물인 인간이 개와 돼지, 소를 임의로 분류해 서로 다른 위계를 부여한 것입니다.

  결국 개고기를 떠올릴 때 반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 라는 동물이 걸쳐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과는 다르지만 반려동물인 개는 감정을 가지고 인간과 교류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죠. 돼지와 소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키워질 뿐 결코 감정을 교류하는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과연 다른 동물을 타자화해 바라보는 게 당연한 일일까요. 돼지와 소는 우리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존재인 걸까요.

  이런 질문을 하며 식탁에 앉으니 이전에는 맛있게만 보이던 고기가 이제는 불편하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이 나쁘지 않습니다. 갇혀있던 제 생각의 지평이 넓어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독자들이 기사를 읽고 동물권을 상기하며 함께 불편하고, 함께 고민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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