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올해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 부쩍 페미니즘에 관심을 보였다. 어느 날 딸아이가 “아빠는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하도 진지하게 물어 고민하다 그만 원론적이고 맥 빠진 답변을 내놓았다. “아빠는 양성평등에 찬성해. 차이가 차별이 되면 곤란하니까.” 답을 건네자마자 딸아이가 “아빠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이라고 해야지. 양성평등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이분법으로만 바라보는 잘못된 표현이야.” 딸아이의 말에 머쓱해지는 동시에 부끄러웠다.

  세 가족 중 아내와 딸 둘이 여성인데 그동안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인식과 태도는 대한민국 평균 남성 수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명색이 교수인지라 페미니즘에 무지하거나 페미니즘을 무시하지는 않았다고 믿어왔다. 페미니즘 관련 책들도 적지 않게 읽어온 터였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내 실존의 문제와 관련해 깊이 있게 사유하거나 실천하지 못했다. 혹은 안했다.
 
  이런 와중에 중대신문이 페미니즘과 관련된 문제를 다뤄 꼼꼼히 읽었다. 시의적절한 주제에다 문제의 쟁점과 핵심도 잘 짚은 좋은 기사라 생각했다. 특히 중앙대에서 발생한 안티페미니즘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점과 총 2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점이 돋보였다. 이와 함께 6면과 7면 하단에 전문가의 의견과 함께 제시한 해결책도 좋았다. 요컨대 기획 기사가 갖추어야 할 ‘안티페미니즘’에 대한 진단과 분석 그리고 처방 모두 두루 설득력을 얻었다.
 
  수업시간에 지성과 교양은 자신이 아는 것과 자신이 하는 짓 사이의 격차를 예민하게 인식하고, 그 격차를 최대한 좁힐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페미니즘’을 다룬 중대신문 기획 기사는 내게 너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아프게 되물었다. 그렇게 살아야겠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
류찬열 교수
다빈치교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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