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공공의 적’이 되었나
  • 공하은 기자
  • 승인 2017.09.24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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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기사에서 사용하는 '빨갱이'라는 용어는 사회 운동가, 노동조합 등을 향한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을 의미합니다. 
 
역사가 말하는 노조혐오

역사적으로 기득권 세력이 자신의 특권을 위협해오는 움직임을 탄압한 사례는 많다. 문자가 권력이었던 조선 전기 사대부들은 서민들이 문자를 익히는 게 두려워 한글 반포를 반대했고, 조선 후기 신분제 사회에서 만민평등을 외치는 천주교는 박해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노동조합(노조)은 특이하게도 기득권층과 그 외의 계층 모두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도대체 왜, 그들은 공공의 적이 되었을까.
 

  50년대: “노조는 빨갱이야.”
  50년대에 존재했던 노조혐오에는 ‘레드콤플렉스’의 영향이 컸다. 6·25 전쟁을 치른 후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반공주의가 심화됐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노조는 노동자 계급이 중심이 되는 공산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처럼 여겨졌고, 그로 인해 노조에 대한 반감이 형성됐다.
 
  해방 이후 가장 먼저 결성된 노조는 조선공산당 산하 단체인 ‘조선노조전국평의회(전평)’다. 전평은 16개의 산별노조와 50만에 이르는 조합원을 기반으로 체계적으로 운영됐다. 당시의 전평은 노동자의 권익뿐 아니라 완전한 자주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운동을 펼치는 등 정치적인 활동도 활발히 했다.
 
  그러나 미군정이 등장하면서 전평은 탄압의 대상이 됐다. 유경순 교수(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과)는 우익 정치세력을 지지하던 미군이 좌익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노동운동을 향한 탄압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익 성격의 노조만을 노조로 인정한다는 방침을 발표했고 노조의 파업행위를 공산주의 행위로 간주해 금지했어요.” 실제로 이승만 정부는 좌익 성격을 가진 노조원뿐 아니라 그에 동조하거나 관련 있는 노동자들까지도 ‘빨갱이’로 몰아 집중적으로 검거하고 처형했다.
 
  50년대에 형성됐던 노조에 대한 ‘빨갱이 프레임’은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조는 진보적인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는 단체예요. 그러다보니 보수측 사람들이 노조를 빨갱이로 매도해 변화를 억누르는 거죠.” 김동원 교수(고려대 경영학과)는 아직도 노조를 빨갱이로 매도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60-70년대: “노조는 매국노야.”
  60년대 이후 노조는 빨갱이 프레임에 이어 ‘경제개발’과 ‘독재정권’ 두 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탄압받기 시작했다. 유경순 교수는 노조가 박정희 정부의 ‘선성장 후분배’ 정책의 기조에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60, 7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 전략은 ‘수출주도형 산업화 전략’이었어요. 다른 국가들보다 싼값에 많은 물건을 수출하기 위해선 극도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필수였죠.”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개선하기 위해 임금을 올리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라고 외치는 노조는 국가를 배반하는 매국노와도 같은 존재였다.
 
  당시의 노조 탄압에는 경제 개발뿐만 아니라 독재정권이라는 정치적 배경도 한몫했다. 김동원 교수는 노조 탄압이 독재정권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독재자는 변화를 원하는 저항적인 대중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기 마련이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독재정권이 들어선 나라라면 어디든 자생적 민주 노조를 탄압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에요.”
 
  실제로 박정희 정권은 기존의 민주적 노조들을 모두 강제 해산시키고 정부가 지명한 노조간부들을 통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결성했다. 정부 주도로 결성된 한국노총은 정부의 손을 잡고 민주 노조를 탄압하며 유신정권의 지지 기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독재정권은 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순종적인 노조를 구성하고 그 밖의 노조엔 ‘빨갱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지속시키며 노조 탄압을 이어갔다.
 
  1987년 이후: “노조는 이기적이야.”
  “1987년 6·29 민주선언 후 정치권과 민주화운동세력이 한숨 돌리고 있는 사이 투쟁의 불길을 당긴 것은 노동자들이었어요.” 유경순 교수는 1987년을 한국 노조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 꼽았다. 6월 항쟁 이후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졌던 이 시기에 그동안 억눌려왔던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석 달 가까이 이어졌던 노동자대투쟁은 대규모로 이뤄졌으며, 장기적이고 완강했다. 중소기업과 여성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이어져 온 노동운동에 상대적 엘리트층인 대기업 남성노동자까지 합류하면서 더 조직적인 형태로 확대됐다. 또한 노조를 억압하는 정부에 편승해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던 기존의 어용노조를 타도하고 스스로를 ‘민주 노조’라고 칭하는 신규 노조들이 조직됐다.
 
  하지만 노조의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의 노조혐오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김동원 교수는 일부 노조의 강성일변도식 투쟁이 노조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기득권을 옹호하려는 집단이기주의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일부 노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노조까지 대중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는 거죠.”
 
  그렇다면 일부의 문제가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경순 교수는 그러한 노조혐오의 분위기를 기득권이 만들어냈다며 대표적인 예시로 ‘귀족노조’ 프레임을 꼽았다. 귀족노조는 대기업에서 고임금을 받으면서 노조 활동을 하는 노동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사실 그들은 장시간노동과 산업재해에 시달리며 노동한 대가를 노조를 통해 확보해냈을 뿐인데 정권과 기업이 만들어낸 프레임 속에서 그들은 이기적인 존재로 비춰져요. 그래서 결국 같은 노동자들도 그들을 시기하게 되죠.”
 
  자본주의에서 노조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인 양극화와 부의 재분배 문제를 노조가 투쟁과 노사협의를 통해 완화시킴으로써 자본주의가 스스로 교정하며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김동원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노조가 힘을 잃지 않기 위해선 노조 자체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열악한 계층은 노조를 만들 여력조차 없는 게 사실이잖아요. 노조가 소외된 노동계층의 권익을 위한 단체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스스로 개혁해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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