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 버린 노동조합의 목소리
  • 김강혁 기자
  • 승인 2017.09.24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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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소한 계기로 시작된 변화는 우리의 일상을 뒤집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죠. 그런 변화의 시점을 ‘티핑 포인트’라고 합니다. 이번학기 기획부는 우리 사회의 티핑 포인트가 되고자 합니다. 오늘은 ‘노조혐오’에 티핑 포인트를 찍어보겠습니다. 노동조합(노조)은 노동자의 사회·경제적인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합니다. 노조는 소득 격차, 불평등한 분배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평가되는데요.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노조는 부정적으로 여겨집니다. 국회의원들은 노조혐오적인 발언을 서슴지않고 일반 시민들 역시 ‘파업’, ‘투쟁’과 같이 폭력적인 이미지에 집중하고 있죠. 그렇다면 이러한 노조혐오는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떻게 형성됐는지. 그 속을 들여다봤습니다.
 
 
노조가 고통받는 현실
 

“밥만 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고 싶은 노동자입니다!” 지난 12일 현대푸드 노동조합원들이 사용자 측의 일방적인 근무 형태 변경과 임금 삭감에 항의하는 피케팅 시위를 진행했다. 어쩌면 이 말은 대한민국의 모든 노동자가 외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대우를 위해 노동조합(노조)을 조직했다. 노조는 사용자 측의 부당한 처우에 저항하고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한다. 그러나 사회는 그 주장을 ‘제 밥그릇 챙기기’로 오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혐오로 묻어버린다. 진정으로 그들의 목소리는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일까. 노조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를 짚어봤다. 
 
‘노조혐오’가 만연한 사회

인간답게 살 권리는
무너지다
 
권력과 자본은
손발을 묶었고
법은 입을 막았다

 
  프레임에 갇힌 노동자
  그간 노조 활동은 ‘강성 노조’, ‘귀족 노조’라는 이름으로 폄하돼 왔다. 실제로 한국경제인연합회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노동조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란 질문에 ‘쟁의행위’에 약 23.9%, ‘기득권’에 약 13.6%가 답했다.
 

  이런 사회적인 인식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발언으로도 드러났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당내 최고위원회의에서 ‘홍위병을 연상시키는 방송 노조의 작태는 앞으로 국민들로부터 심판받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 역시 ‘강경 노조가 제 밥그릇 늘리기에 몰두한 결과 회사가 문을 닫았다’며 노조를 향한 혐오를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교육선전실 임학현 차장은 경제 부흥을 우선시하는 개발독재 시대의 사고가 노조혐오를 생산했다고 말했다. 성장 중심의 사회는 곧 ‘근로자의 단체 행동은 성장과 발전을 저해한다’와 같은 생각에 힘을 실었다. “국가, 성장, 경쟁, 성과라는 담론에 치우쳐 노동자 스스로가 정당한 대우를 받는 개인으로서의 노동자를 지워버렸어요.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조 활동은 떼쓰기로 전락했죠.” 개발독재 시대의 성과주의와 경쟁 이데올로기 앞에 노동자의 인간답게 살 권리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이지현 교육선전실장은 언론의 보도가 노조혐오를 더욱 공고히 했다고 강조했다. “언론에게 좋은 노사관계는 기삿거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노조활동 중 파업과 같이 자극적인 요소만 부각해요. 파업만 하면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여론몰이를 하죠.”
 

  언론이 전파한 편향적인 시선으로 인해 같은 노동자 간의 혐오도 일어나고 있었다. “언론은 일부 대기업이나 공기업 정규직 노조의 급여와 복지를 언급하며 귀족 노조라는 프레임을 씌워요.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를 받는 노동자는 귀족 노조 프레임에 갇혀 그 노조가 자신보다 상황이 좋으면서 이기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하게 되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송재혁 대변인에 따르면 이런 언론의 행태는 노동자 간의 연대를 무너뜨리고 노조혐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부당해도 말할 수 없는 현실
  사용자의 입장에서 노조는 눈엣가시다. 사용자는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된 노조혐오 위에서 노조 탄압을 당당히 자행한다. 사용자 측의 노조혐오 사례를 묻자 각각의 산업체 별로 다양한 사례가 쏟아져 나왔다. 송재혁 대변인은 교사의 사용자인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어 노조로서 활동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은 전교조의 법외노조화를 해결하라고 수차례 요청했음에도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새 정부가 부당노동행위를 엄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정부가 저지른 부당노동행위는 여전히 고수하고 있죠.”
 

  언론계에서도 노조 탄압은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청와대와 국정원이 작성한 언론장악 문건에 의하면 노조 활동에 참여한 KBS·MBC의 기자와 PD를 퇴출하려 했어요. 정권과 경영진이 언론 노동자의 노조 활동을 조직적으로 탄압하려 했음을 알 수 있죠.” 임학현 차장에 따르면 언론노조 MBC 본부 조합원들은 16건의 부당해고, 153건의 부당징계, 70건의 부당전보를 당했다. 일부 인사 조치는 법원이 부당하다고 판단해 취소됐으나 여전히 많은 조합원이 해고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지현 실장은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자나 하청노동자 노조의 상황 역시 심각하다고 말했다. “하청 노동자들은 단체교섭을 요구하면 계약해지나 손해배상 및 가압류 등의 협박에 시달려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일자리를 잃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부당한 노동 조건임을 알면서도 참을 수밖에 없죠.” 이렇듯 노동자들은 노조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해고와 착취에 쉽게 노출된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은 권력과 자본을 앞세운 사용자 측에 의해 힘없이 망가지고 있다.
 

  믿었던 법마저…
  절차와 조건을 갖추고 노조 활동을 할지라도 여전히 장애물은 존재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에 의하면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해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임학현 차장은 쟁의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쟁의행위의 본질은 노동자를 탄압해 초과 이익을 얻어온 사용자에게 합법적으로 손해를 입히는 행위에요. 노동자가 부당하게 착취당한 대가를 돌려받고 자본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죠.”
 

  하지만 이런 쟁의행위도 불법행위로 규정되기 일쑤다. 노조의 쟁의행위는 폭력이 동반되지 않더라도 쟁의행위의 ▲주체 ▲목적 ▲절차 ▲수단의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대법원 2011. 3. 24. 선고 2009다29366 판결) 판례에 따르면 단체 교섭권을 가진 노조만이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이는 사내에 단일 노조만 존재하는 경우 단일 노조가 자동으로 단체 교섭권을 갖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복수 노조가 존재하는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로 인해 하나의 노조만 단체교섭권을 갖게 된다. 따라서 단체교섭권을 갖지 못한 노조가 쟁의행위를 할 경우 이는 불법이다.
 

  사용자 측이 노동자의 단체 교섭을 거부했을 때 조합원 간의 노동쟁의 찬반 투표와 같이 법이 규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런 절차를 걸친 쟁의행위는 수단과 방법이 사용자 측의 재산권을 보장해야 하며 폭력 행사에 해당하지 않아야 한다. 이처럼 현행법은 정당한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를 좁은 범위에서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지현 실장은 손해배상 및 가압류처분이 노조뿐만 아니라 개별 노동자의 활동을 제한한다고 말했다. “노동3권이 보장하는 쟁의행위에는 손해배상 및 가압류처분을 금지하는 법이 없어서 노동자들은 막대한 손해배상 요구에 시달릴 수 밖에 없어요. 실제로 이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노동자가 한 둘이 아니죠.”


  이렇듯 노조혐오는 사용자 측이 공공연하게 노동 탄압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고 법과 판결마저 노동자에 등을 돌리게 했다. 사회의 노조혐오가 결국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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