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이은실 연구원이 이성애와 동성애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 최지환 기자
‘이성애/동성애’ 이분법에 의문
양성애 재구성 방안 논의해
 
지난 14일 310관(100주년기념관 및 경영경제관) B603호에서 여성주의 학회 ‘여백’이 주최한 공개 강연 ‘담장 위의 양성애 : 이성애/동성애 이분법을 넘어’가 열렸다. 강연자는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박이은실 연구원으로 성적 정체성 개념과 양성애를 주제로 강연했다.
 
  성적 정체성이 왜 중요한가
  박이은실 연구원은 이성애자, 동성애자 등과 같은 ‘성적 정체성’ 개념이 중요해진 배경을 설명했다. 근대시대 이전엔 성적 정체성을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신분 사회에서는 신분이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므로 성적 정체성 구분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근현대 이르러 인간은 자신에 대해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규정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이후 ‘내가 누구인지’를 찾는 일이 중요해졌고 이를 고민하며 생겨난 핵심 개념 중 하나가 성이다.

  성은 자아 정체성이나 관계를 구성하는 요소이다. 따라서 근현대인은 성장하며 ‘내 성적 정체성은 무엇인가’와 ‘이 사회는 내 성적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두 가지 고민을 하게 된다. 박이은실 연구원은 “두 고민의 답이 일치하면 이성애라는 ‘주류 성적 질서’에 편입하게 된다”며 “그러나 두 고민의 답이 서로 다른 사람은 주류적 성적 질서에 편입하지 못해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이분법이 불러온 불편
   1960년대 후반 북미·유럽을 중심으로 주류적 성적 질서에 저항하는 동성애 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몇몇 나라에서 동성혼이 합법화되는 등 지속적인 변화를 보였다. 박이은실 연구원은 “한편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라는 이분법적 규정 속에 자신을 귀속시키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동성애와 이성애를 규정하는 방식은 모든 성적 정체성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유효하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한 동성애와 이성애를 규정하는 방식에는 ‘성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보통 동성애와 이성애의 규정은 나와 상대의 성별 일치, 불일치 확인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내가 남자고 너도 남자면 동성애, 내가 여자고 네가 남자면 이성애라는 식이다. 박이은실 연구원은 “그러나 개인의 성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복잡한 문제다”고 말했다. 그동안 성별은 여성스러움 등의 사회적 코드나 생물학적 차이로 구분해왔다. 하지만 이처럼 사회적 코드나 생물학적 차이로 개인의 성별을 규정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타자에 의해 성별을 규정당함으로써 개인의 정체성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성애가 나아가야 할 길
  박이은실 연구원은 정체성을 규정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성애’라는 정체성 개념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성애 담론이 없었을 때는 동성 간 성폭력 등에 인식이 없어 피해 구제가 어려웠다”며 “양성애자의 경우도 삶의 방식 때문에 차별이나 폭력을 받았을 때 문제를 제기하고 법적·정책적 구제를 받을 통로가 필요하다.” 이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 양성애자라는 정체성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현재 페미니즘 담론은 ‘여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토대는 없다’는 주류 합의에 도달했다. 계급, 성격 등 여성 안의 다양성이 여성이라는 동질성보다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박이은실 연구원은 양성애자도 이처럼 열린 정의로 규정해야 한다고 봤다.
 
  박이은실 연구원은 “그럼 동질성 없이 어떻게 만나 정치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가”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진 후 “정체성 대신 입장이나 위치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의 정체성이 무엇이든 자신의 삶 속에서 당장 개선이 필요한 사안에 따라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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