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편지의 추억
  • 중대신문
  • 승인 2017.09.17 22: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지천명을 맞이하게 된다. 믿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평생을 살면서 받아온 편지들을 모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한지에 곱게 써서 보내주셨던 편지에서부터 학부시절 군사훈련 가서 문무대에서 받았던 여학우들의 위문편지들과 레포트지에 써서 반으로 접은 후 대학학보를 둘둘 말아 보내온 편지들과 독일 유학시절 아내에게 받았던 편지들까지. 작은 박스로 몇 박스는 된다.
 
  이사를 수차례 하면서 버릴 기회가 많았지만 마치 무슨 큰 보물인 양 간직해 오게 된 것은 그 안에 담긴 하나하나의 추억 때문이라 여겨진다. 다행히 90년대 말에 이메일이 일반화되면서 그 편리함에 편지 박스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지만 가끔씩은 필체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그립기도 하다. 글씨를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어떤 편지는 한 획 한 획 정성을 다해 쓰여 있고, 펜의 종류와 색에 따라서도 읽는 느낌이 달라지기도 한다. 편지를 보내놓고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는 기대감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요즘은 각종 문명의 이기를 통해서 의사소통을 한다. 문자메세지는 기본이고, 소위 ‘단체톡’ 및 각종 SNS상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글들과 약어 및 기호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어떤 때는 아침에 일어나서 대화방에 가득 차 있는 문자들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바쁜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서 이런 소통이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짧은 문장으로 인해 오해가 발생하고 친구들 간의 우정에 금이 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래서 최근에는 글쓰기가 두렵기까지 하다.
 
  사실 필자는 문자보다는 이메일을, 이메일보다는 전화를, 전화보다는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게 되고 내 의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오해가 있다면 부연 설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버스기사가 어린아이만 내린 후 엄마를 그대로 태우고 출발한 사건으로 온라인이 뜨거웠다. 한 누리꾼이 부정확한 사실을 기반으로 작성한 글 하나가 애꿎은 피해자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사실 확인도 없이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그 글을 퍼다 날랐고, 정확한 취재도 없이 인터넷 기사가 도배되었다. 다시 그 누리꾼이 뒤늦게 사과의 글을 올리기는 했으나 사회적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진 후였다.
 
  요즘 세상에 글을 쓰는 것은 너무 쉽고 편한 일이며, 어디에서나 스마트폰을 두드리면 되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 온갖 은어, 약어, 외계어, 비속어와 이모티콘 등으로 혼란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시류에 크게 맞서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조금만 더 생각하고 글을 쓴다면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 보다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문득 손 편지 한 장이 그리워진다. 오래되어 잉크가 말라붙은 만년필을 새삼스럽게 청소하고 잉크를 넣어본다.

김동석 교수
의학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