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하는 여성,
특별한 게 아닌 평범
 
삐이익. 지난 10일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3라운드 헤르타BSC베를린과 SV베르더브레멘의 경기가 열렸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두 팀 간의 열띤 경기가 펼쳐졌다. 평범한 경기 속에서 주목을 받은 ‘특별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주심’ 비비아나 슈타인하우스였다.
 
  슈타인하우스가 주목받은 이유는 유럽 5대 리그의 1부 리그 경기를 맡은 첫 ‘여성’ 주심이었기 때문이다. 남성의 영역으로 치부돼 온 주심의 자리에 여성이 첫발을 디뎠다는 사실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슈타인하우스가 1부 리그 잔디를 밟기까지는 숱한 성차별 언행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는 선수로부터 ‘남자들의 스포츠인 축구에서 여성은 사라져야 한다’ 등 차별적인 발언을 들으면서도 꿋꿋이 유리천장을 두드렸다.
 
  스포츠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존재한다. 즐거움은 성별을 막론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에서의 성차별은 스포츠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행위다. 그러나 이미 성차별은 스포츠계에 만연해 있다. 필드 위에서 여성은 ‘능력’이 아닌 ‘성별’로 대우받고 평가받는다.
 
  최근에 우리나라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이 받은 성차별적 대우가 이슈였다. 지난 7월 여자배구 대표팀은 체코에서 열리는 ‘2017 월드그랑프리 2그룹 결선라운드’ 참가를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좌석 배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배구연맹으로부터 총 12명의 선수 중 6명만 비즈니스 좌석을 배정받고 나머지 절반은 이코노미석을 배정받은 것이다. 배구선수들의 신장을 고려하면 이코노미석에 앉아 유럽까지 비행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문제는 좁은 좌석만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 이란으로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 경기를 나선 남자배구 대표팀 선수 전원은 한국배구연맹으로부터 비즈니스석을 배정받았다. 한국배구연맹은 성차별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가장 큰 차별은 그것이 차별이라는 사실을 인지조차 못 한다는 데 있다.
 
  또한 여성 선수들은 능력이 아닌 ‘외모’로 평가받기도 한다. 일부 대중은 선수로서 그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일궈낸 퍼포먼스보다 잘 꾸며진 외형에 집중한다. 치열한 승부와 한계를 뛰어넘는 땀방울을 지켜보며 얻는 스포츠의 순수한 즐거움이 아니라 ‘성(性)’적 대상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지난 2013년 여자축구 국가대표 박은선 선수의 인권은 무참히 짓밟혔다. 당시 박은선 선수는 WK리그에서 25경기에 나서 22골을 몰아넣으며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우뚝 섰다. 최고의 선수 역시 성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타팀 감독들은 박은선 선수가 소위 말하는 ‘남성’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며 여성 선수가 맞는지 검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독들의 이런 주장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직접 나서 이는 명백한 성희롱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은선 선수는 이미 큰 충격을 받아 러시아 리그로 떠나버렸다. 선수의 가치를 노력과 퍼포먼스로 평가하기보다는 성적 대상으로 치부한 결과 최고 수준의 선수를 스스로 놓쳐버린 것이다.
 
  삐이익. 슈타인하우스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종료됐다. 슈타인하우스는 판정에 아무런 문제 없이 시합을 깔끔히 마무리했다. 글을 마치다 보니 특별하게 주목해야 하는 건 슈타인하우스가 아니었다. 정작 중요했던 건 슈타인하우스의 경기를 본 독일인의 덤덤한 반응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베를린의 수비수 세바스티안 랑캄프는 “슈타인하우스는 매우 잘 해냈는데 놀랄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슈타인하우스를 차별 없이 그저 평범한 스포츠인으로 바라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언제쯤 ‘평범한’ 주심 슈타인하우스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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