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이 닮았다』는 1932년 발표된 김동인의 단편 소설이다. 소설 속 노총각 M은 아내가 낳은 혼외자와 자신의 발가락이 닮았다며 눈물겨운 합리화를 보인다. 하지만 이제 노총각 M처럼 발가락이 닮았다며 상황을 합리화시킬 필요가 없어졌다. 더이상 혼외자를 기르는 상황이 멀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재혼 가족, 입양 가족, 주거공동체 등 콘텐츠가 보여주는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졌다. 콘텐츠 분석을 통해 다양한 가족 형태들을 정리해봤다.
 
  피를 나누지 않아도 괜찮아
  지난해 11월 종영한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 남녀주인공의 러브 스토리 만큼이나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빨강은 극 초반에 아빠를 여읜다. 이후 빨강이는 두 명의 엄마와 함께 한집에서 살아가게 된다. 어렸을 적 집을 나갔던 친모와 자신을 키워줬던 새엄마다. 빨강이는 두 엄마 모두에게 각기 다른 애착을 두고 있다. 두 엄마와 딸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기묘한 동거를 계속하면서 서로에 대한 가족애를 키워나간다.

  이렇듯 콘텐츠에 등장하는 가족의 형태는 과거와 비교해 크게 변했다. 임소진 강사(가족복지전공)는 사회가 변하면서 혈연 중심이었던 가족의 의미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과거에 우리는 암묵적으로 가족의 정의를 혈연 안에서 받아들였어요. 그러나 이제 개인이 정의하는 가족의 의미가 사회가 정의했던 가족의 의미보다 커졌어요. 두 의미 간 차이가 커지면서 더 이상 혈연으로 가족을 정의하기가 힘들어졌죠.”

  3대가 함께 모여 살면서 조용할 날 없는 대가족 이야기가 주를 이뤘던 공중파 주말드라마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지난해 약 33%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아이가 다섯>은 재혼 가족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남자주인공 ‘이상태’는 아내와 사별한 뒤에도 처가에 살면서 아이 둘을 홀로 키우고, 여자주인공 ‘안미정’은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뒤에 아이 셋과 살고 있다. 상태와 미정은 재혼 가정을 이루면서 부모의 반대, 아이들 문제 등 여러 난관에 부딪힌다. 가족 갈등을 봉합하면서 억지로 혈연주의 가족을 밀고 나갔던 이전 가족 드라마와는 달리 <아이가 다섯>은 재혼한 부모와 살지 않겠다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등 가족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해결책을 찾아간다. 전혀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란 두 집 아이들은 한 집에 모여 살게 되면서 처음에는 마찰을 빚는다. 그러나 점점 서로를 위하고 정을 나누면서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임소진 강사는 <아이가 다섯>에 등장한 가정처럼 최근의 가족은 여러 가지 특성을 가진 복합적인 형태를 띤다고 설명했다. “지금 사회 전반적으로 1인 가구, 한부모 가정, 재혼 가족, 입양 가족, 조손 가족 등 모든 가족 형태가 증가하는 추세예요. 그 와중에 두드러지는 특징은 여러 가지 형태가 한 가정에 동시에 나타난다는 거죠. 이렇게 복합적인 요소로 이뤄진 가족이 많으니 꼭 형태를 기준으로 가족을 분류해야 하느냐는 회의적 목소리도 있어요.” 부모와 혈연으로 이뤄진 자녀가 있는 핵가족만을 ‘정상가족’의 형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족이 된다
  임소진 강사는 최근 가족의 조건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혈연에 의한 가족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지금 많은 학자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짓는 조건으로 정체성과 유대감을 많이 꼽아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혈연이 아닌 정체성과 유대감으로 이뤄진 가족을 그린다. 주인공 ‘료타’는 아내 ‘미도리’와의 사이에서 6살 아들 ‘케이타’를 둔 성공한 비즈니스맨이다. 그러나 어느 날 케이타가 태어난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료타와 미도리는 자신의 친아들을 키우고 있는 부부를 만난다. 두 가족은 상반된 가정환경과 분위기에서 뒤바뀐 아이를 키워왔다. 그리고 아이들을 다시 바꿔 데려옴으로써 혈연으로 이어진 가정의 형태를 찾아가려고 노력한다. 료타는 혈연을 기준으로 아이들을 자신이 생각하는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혈연으로만 이어진 낯선 가족은 ‘제자리’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본래의 가족을 그리워한다. “집에 가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하루아침에 나타난 친부모의 존재는 낯설기만 하다. 두 부부는 자신들에게도 낯선 아이를 단지 혈연이라는 이유로 행복하게 해주려고 애쓰지만 아이들은 길러준 부모에게 돌아가고 싶어 한다.
 
  료타 또한 6년을 함께한 케이타를 잊지 못해 아이를 찾아간다. 하지만 케이타는 자신을 두고 떠난 료타에게 등을 돌린다. 료타는 혈육의 끈과 키워낸 정 사이에서 진정한 아버지, 그리고 가족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결국 혈육만으로 가족을 규정하려 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료타는 진정한 아버지가 돼간다. 가족은 혈연으로만 규정될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해 호평 속에 종영했던 드라마 <청춘시대>에서는 피를 나누지 않은 5명의 20대 여자들이 가족과 같은 관계를 맺고 한집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다룬다. 주인공 5명은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해주며 가족이 돼간다. 떨어져 사는 본래 혈육에게 받은 상처까지 서로에게 위로받으며 오히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유대감과 친밀감을 갖는다. 면접을 앞둔 메이트에게 자신의 신발을 벗어주기도 하고, 데이트 폭력에 고통받는 메이트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그들의 모습은 그 어느 혈연 가족보다 끈끈하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는 가족의 틀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가족은 다정하고 자상한 부모와 아이 하나 혹은 둘로만 규정되지 않아요. 동성 부부는 물론 아이가 없거나 부모가 없어도 가능하죠. 피를 나누지 않거나 사랑이 없어도 괜찮아요. 가족이란 끊임없이 노력하고 서로를 지켜보면서 맺어지고 튼튼해지는 관계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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