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혈연의 얕은 신화

흔히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은 운명에 비유되곤 한다. 피는 타고나기에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콘텐츠에서 “그래도 네 혈육인데 어쩌겠니”라는 말로 주인공에게 상대의 악행을 용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혈연은 운명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고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혈연이 과연 ‘운명’일까. 인간에게, 나아가 한국인에게 혈연이 갖는 의미를 분석해봤다.

  본능도, 운명도 아닌
  김민정 교수(강원대 문화인류학과)는 혈연인식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오래된 문화 규범이라고 말했다. 혈연이 가족을 이루는 기본적인 기준이 된 건 ‘본능’이 아니라 집단생활을 위해 만들어낸 질서와 규칙때문이라는 것이다. 몸속의 피는 타고난 것이었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전통적인 가족의 역할은 재생산과 노동력 창출, 이를 위한 자녀 양육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역할은 가족 내 출산을 통해서 수행된다고 여겨졌기에 가족은 곧 혈연이란 인식이 생긴 거죠.” 안진경 강사(가족복지전공)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가족이 혈연 중심으로 이뤄진 것도 그 규칙의 일부라고 지적했다. 사람은 연약하기에 다른 동물에 비해 양육의 과정이 중요시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구성된 가장 기본적인 사회가 혈연을 기반으로 한 가족관계였다.
 
  김민정 교수는 혈연에 대한 인식은 정치, 경제, 법률, 예술 등 사회의 다른 영역과도 연관된다고 설명했다. “혈연인식은 어른들의 양육을 받으며 도덕이나 윤리로 습득되기 때문에 고마움, 죄책감 등의 원초적인 감정으로 느껴지곤합니다. 하지만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혈연은 사회의 다른 측면들과 연결돼 있습니다.” 타고난 것이 아닌 만큼 혈연에 대한 인식은 주변의 영향을 받아 언제든 변화할 수 있었다.
 
  이 사례를 단적으로 드러낸 예가 바로 현재 가장 보편화 된 가족 형태인 일부일처제 가족으로의 변화다. 19세기 철학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저서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에서 현재 일부일처제는 사유재산이 발생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과거 모계 중심 사회에서 남자들은 자신의 혈육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또 어차피 공동양육을 하기에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사유재산이 생기고 이를 축적하는 것이 자신의 세력을 넓히는 길이 되고부터 ‘자신의 아이’가 필요해졌다. 부를 축적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상속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남성이 자신의 혈육을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일부일처제 사회가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중요한 건 피가 아니었다
  타 국가보다 한국에서 특히나 혈연이 중시되는 이유도 사회적 요소들과 크게 연관돼 있다. 한국에서 혈연주의가 강조되는 이유로는 유교를 들 수 있다. 유교는 인간을 한 개인보단 가족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파악함은 물론 친족중시 혈연관계를 사회관계 중심에 놓고 있는데, 한국은 이러한 유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가족주의가 비단 유교적 가치관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논문 「유교와 한국의 가족주의」(김동춘, 2002)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가족주의는 유교적 가치관과 조선 후기 사회상이 결합한 결과다. 씨족 중심, 가문 중심의 연대가 확고해진 것은 유교적 명분과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고자 했던 조선 초·중기가 아니라 조선 후기쯤이었다.
 
  현재의 공고한 혈연주의는 조선의 유교 통치 질서의 위기 속에서 확립됐다. 조선 후기 신분제 동요 속에서 양반층의 경제적 몰락 가능성이 커지자 양반층은 가족, 씨족 내 유대를 강화했다. 지역사회에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이름난 조상을 모시는 종가를 중심으로 씨족이 단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양반층은 제례를 통해 씨족 간 상징적 단결을 추구하고, 조상의 공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지위를 과시했다. 현재까지도 제사와 같은 조상숭배가 거의 종교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모습은 부계혈통주의, 종법질서가 매우 강력하게 구축된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결국 한국에서 혈연이 강조된 이유는 본능도, 혈연이 천명이란 믿음도 아닌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안진경 강사는 이러한 전통적 가족관이 형상화된 것이 족보나 호적이라고 말했다. “가족의 역사를 기록한 족보나 과거 호주제에서의 호적은 한국의 혈연주의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죠.”

지금은 호주제가 폐지 돼 호적도 사라졌고, 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꽤 변했지만 아직도 한국의 법이 규정하는 가족은 함께 살며 형성된 유대감보다 혈연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민법 제779조에는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는 생계를 함께하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가족의 범위에 포함시킨다고 명시돼있다. 혈연이 아닌, 직계혈족의 배우자도 가족의 범위에 포함될 순 있지만 그 경우엔 꼭 생계를 같이 해야만 한다. 생계보다 혈연이 우위에 있는 것이다.
 
  같은 마음이 흐르는 가족
  여전히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혈연주의는 다양한 부작용들을 낳고 있다. 논문 「유교와 한국의 가족주의」(김동춘, 2002)에 따르면 현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라고 꼽히는 연고주의도 혈연주의에서 비롯됐다. 조선 말 양반들의 가족주의가 근대 이후 대중적 차원으로 확산되며 연고주의, 지역주의 등으로 나타나게 됐다는 설명이다.
 
  김민정 교수는 한국사회의 혈연주의는 국가 차원에서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외국인 주민이 약 3.4%(2015년 기준)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혼혈인이나 해외입양인이 한국인으로 당연하게 인식되고 있진 않죠.” 혈연주의는 가족을 넘어 국가적인 순혈주의를 불러왔다.

과도한 혈연주의의 부작용은 입양문화에서도 드러났다. 아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입양 사실을 알리고 입양하는 공개입양은 아이에게도 비밀로 하는 비밀입양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 아이가 자신이 입양아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아정체성 형성도 빠르고, 부모가 아이에게 떳떳하기에 아이와의 유대관계도 훨씬 잘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선 꽤 오랜 기간 비밀입양이 선호됐다.
 
  물론 최근에 와선 공개입양이 선호되는 추세지만 과거 수많은 부모들은 공개입양의 장점들을 알면서도 끝내 비밀입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입양홍보회 정영란 사업부 팀장은 그 기반에 사회적 시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선 혈연관계가 중요시되다 보니 입양할 때 출산하는 것처럼 가장해서 비밀입양을 하기도 했어요. 본인은 괜찮더라도 시댁이나 친정 어른들이 혈연관계가 아닌 아이들을 싫어하는 경우도 많았으니 말이죠. 아이가 사회적 시선에 상처받을까 비밀입양을 많이 선택했죠.” 과거 철저한 비밀입양을 원하는 부모들은 자신과 혈액형이 맞는 아이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 핏줄’의 신화는 허상에 불과하다. 정영란 팀장은 양부모와 입양아동 사이에는 혈연을 뛰어넘은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신기하게도 양육을 하다 보면 아이가 부모를 많이 닮게 돼요. 애초에 극단적으로 다르게 생긴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대부분 많이 닮아 있더라고요.” 아이와 부모를 닮게 하고, 가족으로 만드는 것은 피로 이어진 육체가 아니라 정으로 이어진 마음이었다. 혈연은 결코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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