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이 현재의 터에 자리 잡은지 올해로 79년이 된다. 79년 전인 1938년 5월 2일은 중앙대학교가 대한민국의 명문대로 자리매김하는 가장 중요한 시작이며 모두가 하나가 됐던 감격의 날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날의 소식을 일간 신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신록의 5월을 맞아 약진 도상에 있는 교육 조선에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이 있다. (중략) 중앙보육학교에서는 오랫동안 교사가 없어 피어슨 학교의 1부 교사를 빌어서 수업을 계속하는 일방 동교 교장 임영신의 진력으로 한강 넘어 명수대에 웅장한 교사 신축 신축공사가 준공을 보게 되어 2일 드디어 동교에서는 신교사로 기쁨의 이사를 하였다.”
 
  이 날을 특별히 기억하고자 하는 이유는 존폐의 위기를 극복하고 감격의 날을 만들기 위해 쏟았던 뜨거운 열정과 피나는 노력을 잊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그 열정과 노력은 오늘날 우리가 중앙대를 생각할 때 새겨야 할 행동지침이고 가슴에 품어야 할 중앙정신이다.
 
  우리 대학의 효시를 1918년 설립된 중앙유치원으로 보지만 오늘날 중앙대로의 발전에서 결정적 전기는 1928년 중앙보육학교의 설립과 1933년 임영신 박사가 중앙보육학교를 인수한 것이라 본다. 
 
  임영신 박사는 1933년 중앙보육학교 인수에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모은 6만 달러를 전부 사용해 인수 후 큰 시련에 직면하게 된다. 중앙보육학교는 소유 건물과 부지가 없었던 관계로 정동에서 창신동을 거쳐 서대문의 피어슨 성경학원까지 전전했다. 하지만 피어슨 성경학원 건물주의 명도 요구가 거셌고 이에 임영신 박사는 흑석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한다.
 
  그 이후 임영신 박사는 미국으로 건너가 이름 모를 청년 두 사람이 기탁한 6000원을 여비로 하와이에서부터 LA, 뉴욕으로 교사 건립을 위한 길고 힘겨운 모금 여정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임영신 박사는 폰 클라인스미스 남가주대 총장 부부, 암스트롱 부인, 루즈벨트 대통령 부인, 록펠러 2세, 포오드, 에디슨 등 수 많은 미국 정‧재계의 중요 인물들을 만났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파이퍼 여사로부터 3만7000불을 기부 받아 1937년 4월부터 지금의 영신관 건립을 시작해 1937년 12월에 완전히 독립된 우리만의 교육 시설과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중앙대를 위한 이런 노력의 결과 남의 건물과 땅에서 셋방살이의 설움을 겪고 있던 학생과 교직원들은 1938년 5월 2일 서대문 피어슨 성경학원을 떠나 걸어서 지금의 흑석동 영신관 건물로 이동해 새 시대를 열고 오늘날의 명문 사학 중앙대가 된 것이다.
 
  100주년을 코앞에 두고 지난학기에 발생한 QS 사태는 구성원들을 자괴감으로 빠져 들게 하고, 우리 대학의 자랑인 역동성이 힘을 잃어가는 듯해 매우 안타깝다. 하루빨리 중앙대가 하나 된 마음으로 2018년 100주년을 맞이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윤형원 팀장
100주년기념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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