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석이라는 무대에 서다 - 중대신문
최종편집 : 2017.9.19 화 17:19
문화
관객석이라는 무대에 서다
장은지 기자  |  silverpaper@cauon.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9.04  10:46:1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관객 참여형 연극 <쉬어매드니스(Shear Madness)>에서는 관객이 또다른 배우가 되어 무대 위 배우들과 활발하게 소통한다.사진제공 콘텐츠 플래닝

관찰과 경험 사이
그 어딘가

오늘도 수많은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관객들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보며 극 중 인물이 돼 극을 이끄는 상상을 한다. 최근 대학로에 관객들의 이런 상상을 실현해줄 작품이 등장했다. 바로 관객참여형 코믹 추리 수사극 <쉬어매드니스(Shear Madness)>다. 연극 <쉬어매드니스>에는 ‘관람’보다는 ‘체험’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만난 <쉬어매드니스>에서 기존 연극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연극을 체험해봤다.

단 한 순간도 눈 뗄 수 없다
 공연 시작 10분 전, 공연장에 들어서자 배우들이 이미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고 있었다. 분주한 움직임과 흥겨운 노랫소리에 정신이 팔려있다 보니 어느새 객석이 어두워지면서 연극이 시작됐다. 미용실 직원 ‘조호진’, ‘장미숙’은 경쾌한 락 음악에 맞추어 손님들의 머리를 매만졌다. 조호진은 쉬지 않고 춤을 추며 손님들과 수다를 떨고 장미숙은 끊임없이 남자 손님들에게 추파를 던졌다. 부잣집 사모님 ‘한보현’, 골동품 판매상 ‘오준수’도 손님으로 미용실을 방문했다.

 그 소란에 익숙해질 즈음 갑자기 소름 끼치는 비명이 들려왔다. 미용실 위층에 살고 있는 유명 피아니스트 ‘바이엘 하’가 살해된 것이다. 곧이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형사가 등장했다. 사건 현장과 같은 건물에 있던 조호진, 장미숙, 한보현, 오준수는 용의자로 지목됐다. 용의자들은 각자 물건을 숨긴다거나 다른 주인공과 귓속말을 주고받는 등 수상한 행동을 하면서 용의 선상에 오를만한 빌미를 남겼다.

 모두가 의심스러운 상황.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들자 머리를 싸매고 있던 형사가 손을 들었다. “여기 누가 불 좀 켜주세요.” 형사가 관객석 쪽을 응시하며 외친 말에 깜깜했던 객석이 밝아졌다. 그리고 관객석을 포함한 공연장 전체로 무대가 확장됐다. “지금까지 잘 지켜보셨습니까? 이제부터 이 모든 사건을 지켜보신 여러분은 목격자가 돼저희의 수사에 협조해주셔야겠습니다.”

 관객 안홍석씨(27)는 그 순간부터 극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처음엔 당황스러웠어요. 하지만 제가 사건을 추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마치 형사가 된 것 같더라고요. 1막에서 배우들이 보여줬던 수상한 행동을 더 눈여겨보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극에 관객들을 참여시키며 벌어진 소란에 형사가 조금 쉬고 돌아와 취조를 계속하자며 사건 현장을 정리했다. 그렇게 1막이 끝나고 10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희미해진 극과 현실의 경계선
 형사는 쉬는 시간 동안에 밖에서 제보를 받겠다며 극장을 나섰다. 밖으로 나가보니 한 관객이 로비에 앉아있는 형사에게 단서를 제보하고 있었다. “형사님이 오준수를 취조하실 때 살해 도구가 가위라는 사실을 알려준 적도 없는데 오준수가 이미 알고 있었어요.” 형사는 진지한 얼굴로 수첩에 증언을 받아 적었다.

 무대 위 다른 배우들도 저마다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장미숙은 이 와중에도 미용사로서의 본분을 다하겠다는 듯 한보현의 머리를 만지고 화장을 고쳐줬다. 오준수나 조호진은 범인이 아니냐고 장난스레 묻는 관객들에게 화를 내며 물을 뿌리기도 했다. 그들은 ‘역할을 맡은 배우’가 아니라 역할 그 자체로서 존재했다.

 조호진, 장미숙, 한보현, 오준수와 자유로이 대화를 나누는 관객들을 보면서 관객이 또 다른 배우로서 극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공연 시작 전부터 쉬는 시간까지. 본래 ‘현실’이었어야 할 시간에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으니 ‘현실’과 ‘공연’의 경계가 흐려지는 듯했다.

 다시 2막이 시작되고 모든 관객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형사는 바이엘 하를 살해한 용의자를 찾아내기 위해 미용실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처음부터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각 장면에서 관객들은 인물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며 알리바이를 확인했다. “장미숙이 아까 쓰레기통에 가위를 살짝 버렸어요!” 관객들이 외칠 때마다 형사는 바쁘게 움직였다. 관객들은 형사로 하여금 오준수가 가지고 있던 가방을 열게 하거나, 장미숙이 무대 밖으로 가지고 나갔던 쓰레기통을 뒤져 증거를 찾게 했다.

 의심을 받은 배우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해명을 즉석에서 늘어놓고 형사는 관객들의 증언을 토대로 하나씩 증거들을 확인했다. 위층에서 시끄럽게 피아노를 치던 바이엘 하에 화가 나 담판을 짓겠다며 쫓아 올라갔던 조호진이 관객들의 집중공세를 받았다. “조호진이 다시 돌아왔을 때 앞치마가 없어졌어요!” 날카로운 추리가 나올 때마다 관객석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같은 관객들끼리도 서로의 추리와 관찰력에감탄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관객들은 관객석이라는 또 다른 무대에서 배우들과 대사 아닌 대사를 주고받으며 극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쉬어매드니스>의 진짜 매력은 이때 빛을 발했다. 관객들이 극의 흐름에 참여하다 보니 연극은 ‘짜여진 판’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배우들은 자신을 향한 의혹에 애드리브로 응수했는데 배우들의 매번 다른 리액션이 극의 백미였다. 특히 조호진 역의 배우는 자신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관객들에게 욕이 섞인 유머를 던지며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같이 여행 가는 거 아니에요?” “둘이 무슨 사이예요?” 한보현과 오준수를 엮는 듯한 질문엔 한보현 역의 배우가 발끈하면서 역정을 내기도 했다. “뭔 소리야, 저 사람 내 스타일 아니에요!” 배우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배우들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을 때 하는 대처가 재밌어서 자꾸 보러 오게 돼요” 박연우씨(22)는 배우들의 늘 새로운 리액션이 공연을 여러 번 봐도 지루하지 않게 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암흑에서 벗어나 또 다른 배우가 되다
 극이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 형사는 가장 범인으로 의심되는 용의자에 손을 들라고 말했다. 기자는 살해된바이엘 하와 미묘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장미숙에 손을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이엘 하의 유산을 노렸던 오준수에게 대다수 관객이 손을 들고 있었다. 이후 오준수가 범인으로 밝혀지고 오준수의 범행 동기와 뒷이야기로 극이 마무리됐다.

 범인이 장미숙인 줄 알았는데, 추리가 틀렸다고 아쉬워할 즈음 장미숙이 한 손에 범행 도구로 사용됐다는 가위를 들고 등장했다. 기괴한 빨간 핀 조명 아래 장미숙과 다른 용의자들이 한 명씩 나와 가위를 들고 섬뜩한 대사를 읊었다. 누구나 범인이 될 수 있었다는 여지를 남기며 극을 끝낸 것이다.
옆자리에서 ‘에이 또 오준수 엔딩이네. 조호진 엔딩 보고 싶었는데’라는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혼자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인생 첫 연극으로 쉬어 매드니스를 만났다는 박연우씨는 이미 모든 결말을 다 보았다고 말했다. “연극을 관람하다 보면 결말 욕심이 생기거든요. 친구들한테 이 연극을 추천해주면서 같이 와서 자주 관람했어요. 그렇게 해서 저는 모든 엔딩을 다 봤죠.”

 수많은 연극 속에서 관객은 그저 암흑 속 관조자로 존재했다. 제한된 공간에서 배우들이 펼쳐낸 연기를 보고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만이 관객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연극 <쉬어매드니스>는 이런 틀을 깨뜨렸다. 관객들의 질문 한마디, 말 한마디는 무대 위 배우들의 다른 행동, 다른 대사를 이끌어내며 매번 다른 줄거리를 만들어냈다. 형사의 마지막 대사는 <쉬어매드니스>의 새로운 시도를 한마디로 정리하는 듯하다.
“내일 보게 될 이 연극의 마지막은 오늘 보신 것과 다를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저희가 연극을 하고자 하는 방식입니다. 감사합니다.”

 

< 저작권자 © 중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관련기사]

장은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중앙대학교 310관(100주년기념관 및 경영경제관) B205호 중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881-7358~9 | 팩스 : 02-817-9347
인터넷총괄책임 : 편집부국장 | 게시판총괄책임 : 편집부국장 | 청소년보호책임자 : 편집부국장
Copyright 2017 중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ditor@cau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