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정약용을 만났다
  • 중대신문
  • 승인 2017.09.03 12: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창비 펴냄)

됴쿄에서 오사카로 가는 신칸센 안에서 겪은 일이다.
지난 723, 열차 안에서 야마구치 유키오(山口幸夫) 일본 원자력자료실 공동대표를 만났다. 그는 도쿄대 공학 박사인데, 풍부한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었다. 야마구치 선생은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를 비판했고,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문학에 나타난 독특한 개인성에 대해 논평하기도 했다.

  대화 도중에 야마구치 선생이 질문했다. “한국의 역사 속에서 정신사적으로 의미 있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야기했다.
다산 정약용입니다.”

  다산은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대표하는 사상가이고,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불우한 지식인이었다. 조선 후기라는 시대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민중을 중심에 두고 사유하는 민본주의 사상과 인간적 도리에 입각한 윤리관이 돋보이는 근대적 인물이기도 했다. 나는 현대문학 전공자이지만, 다산의 글을 좋아한다. 책상 가까운 곳에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선 목민심서, 다산 정약용 평전이 꽂혀 있다. 다산의 넓은 사상세계, 유형지에서 토해냈던 고통스러운 문장들에 대해 야마구치 선생도 흥미로워했다. 나는 다산의 글쓰기 태도가 잘 드러나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목민심서에 대해 보다 자세히 이야기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사람에게 있어 문장은 풀이나 나무로 보면 아름다운 꽃과 같다라고 했다. 꽃을 급하게 피어나게 할 수 없듯이 문장도 정성스런 뜻과 바른 마음으로 만들어진다. 목민심서에서는 정치의 근본 원리로 지방관리와 민중의 신뢰를 강조했다. 야마구치 선생도 문장이나 옳은 일은 윤리적 신념과 정성스러운 실천을 통해 천천히 이뤄진다고 동의해주었다.
 
  야마구치 선생은 진심어린 호기심을 갖고 정약용을 한문으로 어떻게 쓰는 지를 내게 물었다. 나는 丁若鏞이라고 써주었다. 야마구치 선생은 정약용이 지방관리와 민중의 관계를 중시했다면, 지금은 과학 전문가와 시민의 신뢰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자이지만, 과학의 세계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과학 전문가와 시민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야마구치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한국사회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에너지 문제와 탈원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한국사회는 원자력 에너지에 의지해 계속 성장주의를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에너지로 방향 전환해 생명존중의 세계로 나아갈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그 판단을 과학전문가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주의에서 벗어난 시민과 과학자들이 만나는 정치의 장이 열려야 한다. 정치의 장이야말로 다산 정약용이 이야기한 민본주의가 구현되는 장소일 것이다. 나는 야마구치 유키오에게서 정약용의 마음을 읽었다. 그것은 일본에서 정약용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오창은 교수
다빈치교양대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