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말을 써놓고 나서 한참을 고민했다. 비록 한 학보사의 편집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게 됐다고는 하지만 내가 지면을 통해 중대신문의 창간 70주년을 축하하는 글을 남길 만한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차라리 아예 일기 같은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학보사에서의 특수한 경험, 기자로서의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더 진솔한 축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신문에 들어와 겪은 많은 일은 솔직히 몹시 힘들었다. 매주 두 차례의 긴 회의를 했고, 숱한 취재를 다녀야 했고, 그렇게 힘들게 기사를 내면 무수한 코멘트를 듣고 다시 수정해야 했고, 결국 힘들게 기사를 내도 칭찬보다는 비판을 듣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학보사에 남은 이유를 묻는다면 ‘나’라는 사람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을 해볼 수 있었고, 그만큼 많이 바뀌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엘리트적 회의론 따위로 포장해오던 내 모습이 학내외의 주요한 사안에 대한 무지와 정치적 무관심에서 비롯했을 뿐임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만큼 훨씬 더 면밀하게 세상을 마주하게 됐다.

  더불어 근거 없는 고집과 필요 없는 자존심을 버릴 수 있었다. 타협과 협의, 수용과 납득이란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비판과 논의를 비난과 공격으로부터 분리해내는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학과 언론사 사이, 숱한 학내 구성원들 사이에서 애매한 위치를 점하는 학보사의 숙명을 두고서도 많은 고민을 했다. 이 정체성의 문제를 두고 꽤나 큰 아픔을 겪었던 지난 학기에는 그에 대한 아주 기나긴 숙고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여전히 완전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이 애매한 구조 속에서 꾸준히 새로운 중심점을, 타협점을 찾아내는 게 학보사의 역할이리라는 모호한 결론을 내려 본다.

  ‘학보사는 학생사회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돌고 ‘기성언론사 신문을 보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하물며 학보사를 보는 사람이 있겠냐’는 김빠지는 발언이 들리지만, 어쨌든 나는 학보사에서 일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 학보사가 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가진다. 중대신문이 맞이한 창간 70주년 역시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학보사란 필요한 존재며 소중한 존재이기에 맞이할 수 있는 순간일 것이다. 다시 한번 중대신문의 창간 70주년과 1900호 발행을 축하드린다.
 
이경인
대학신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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