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물의 이름을 툭 던지면 곧바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연관된 사연이 저마다 각각이기 때문이다. 내게 중대신문은 ‘훈련소’를 떠올리게 한다. 시간을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논산 육군훈련소. 어느 봄날이었다. 각개전투에 녹초가 된 훈련병을 맞이한 것은 중대신문이었다. 학교에서 친구가 보내 준 것이었다. 여덟 쪽짜리 신문을 펴든 순간 푸르른 잔디밭의 캠퍼스가 펼쳐지는 듯했다. 중앙도서관 앞 활짝 핀 등나무 꽃향기가 온몸에 퍼져왔다. 딱히 읽을거리가 없는 곳이라 그렇기도 했겠지만 읽고 또 읽어 귀퉁이가 모두 헤진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30여 년 전 그 삭막한 곳에 꽃향기를 전해줬던 중대신문이 지령 70주년을 맞이한다. 사람의 나이 일흔을 고희(古稀)라고 부르는데,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의 줄임말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가 읊은 시 ‘곡강(曲江)’의 한 구절로 ‘예로부터 사람이 칠십 살기 드문 일’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의학이 발달해 70은 기본이요, 100세 시대를 맞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70이 그만큼 드문, 긴 세월이었으리라.

  중대신문이 지나온 70년 세월은 격동의 시기였다. 멀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었고 4.19를 거쳐 5.18로 이어졌고 가까이는 촛불혁명이 있었다. 중대신문은 그 지난한 70년의 시간을 중앙인과 늘 함께하면서 그 애환과 역사를 오롯이 기록해 왔다. 사람도 70을 살다 보면 기쁨도 있지만 좌절도 있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긴다. 하물며 인간도 그럴진대 신문의 역사가 왜 그렇지 않았겠는가. 신문발행이 중단되면서 명줄이 끊길 위기도 여러 차례 있었을 것이다. 굽이굽이 그 굴곡들을 떨치고 오늘에 이른 까닭은 때로는 투쟁으로, 때로는 피로써 정론직필을 지켜온 선후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중앙대 졸업생으로 국내 언론현장에서 뛰고 있는 동문들. 중앙언론동문회 회원들이다. 이들 중에서도 중대신문 출신들이 많은데 중앙의혈이 우리 한국 언론의 핏줄에도 도도히 흐르고 있음을 절감한다. 중앙언론동문회를 대표해 중대신문의 창간 7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앞으로의 70년은, 아니 천년만년은 찬란한 꽃길이길 기원해본다. 30여 년 전 어느 봄날, 논산 육군훈련소의 한 훈련병에게 가득 싣고 왔던 캠퍼스의 꽃향기처럼 말이다.
 
임광기
중앙언론동문회장
(신문방송학과 81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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