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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보도보도기획
중대신문 70년을 되돌아 보다중대신문 타임라인
이수빈·이찬규 기자  |  su-bin@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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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27  23: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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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중대신문이 고희(古稀)를 맞았습니다. 중대신문은 70년의 세월 동안 총 1900호의 신문을 발행했습니다. 지난 1947년 최초로 탄생한 대학언론인 중대신문은 도전으로 가득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한글판 가로쓰기 도입부터 자유언론투쟁 주도, 대학언론 최초 주 2회 발행, 대학언론 최초 지역면 신설, 베를리너판 도입까지…. 도전의 정신을 끊임없이 이어 왔기에 중대신문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대학신문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창간 70주년을 맞아 중대신문의 역사를 그 시작부터 돌아봤습니다.
 
   
 
  중대신문 제1호 1947년 9월 1일(좌측)
  제가 태어났을 때 사진입니다. 아참,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제 이름은 중대신문, 대학신문의 효시입니다. 즉 대한민국 대학신문의 원조라는 말씀입니다!
 
  중대신문 제2호 1948년 4월 1일(우측)
  1940년대 중반 길거리 포스터, 일간지 대부분은 세로쓰기 였어요. 저는 일간지들과는 다르게 한글 가로쓰기를 시범 도입했죠. 어때요? 저의 혁신적인 노력이 보이시나요?
 
 
 

  중대신문 제27호 1956년 4월 15일
  견습 기자 모집! 당시엔 수습기자 대신 견습기자라는 용어를 사용했어요. 견습기자제도를 통해 저와 함께하고 싶은 친구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구하고 싶었죠. 덕분에 친구들과 함께 계속 발전할 수 있었고 지금도 열심히 발전하고 있답니다.
 

  현재와 마찬가지로 견습기자는 6개월 동안 취재부터 편집까지 신문의 모든 걸 배운 뒤 정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기자들이 중앙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중앙대의 역사를 기록했죠. 다음달 12일까지 모집하는 79기 친구들도 기대되네요.

   
 

   중대신문 제154호 1960년 9월 11일(좌측)
  어릴 적 제 이름(제호)은 다양했습니다. 중대학보, 중앙대학보, 중대신보…. 그러다 독자 여러분에게 익숙한 현재 이름인 중대신문으로 정착했습니다.


  중대신문 제389호 1967년 3월 2일(우측)
  중대신문이라는 이름을 얻은지 7년쯤 되는 해에 모습을 바꾸게 됩니다. 한자로 써있던 제 이름을 한글로 바꾸게 됐거든요. 이름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매호마다 독자 여러분을 향한 저의 노력은 언제나 그대로입니다.
   
 
   1970년대는 저변 확대의 시대였습니다. 증면을 통해 더욱 많은 소식을 독자들에게 전달했죠.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획기사들도 준비했습니다. 개항 100년 기획으로 개항을 역사,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봤습니다. 또한 1976년 3월 11일에 발행된 제700호에서는 대학신문의 진로를 진단하기도 했죠.
 
  일반 신문 지면을 뛰어넘는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고교판 중대신문도 만들었죠. 아참, 중대신문에 실린 명칼럼을 모은 『의와 참의 지성』과 문화 교양 시리즈 『문학의 의미』를 발간했습니다!
 
   
 
   중대신문 제866호 1981년 9월 3일(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중앙인 친구들을 위해 살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래서 ‘중앙인의 의식조사’를 실시해 중앙인 친구들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올해까지 총 20번 이어졌죠!
 
  1987년 9월 1일(아래)
  “부활하라, 너 중대신문!” 당시 저는 외부와 내부에서 많은 압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친구들이 언론의 자유를 위해 목소리를 냈죠. 정론직필(正論直筆)!
 
   
 
  중대신문 제1113호 1990년 3월 5일(위)
  ‘주 2회’발행. 저는 독자 여러분에게 많은 소식을 전달하고자 모험적인 시도를 했습니다. 주 2회 발행은 너무 힘들었죠. 하지만 독자 여러분이 배부대에서 저를 기다려주는 것 만큼 큰 행복은 없었습니다.
 
  중대신문 제1126호 1990년 4월 30일(아래)
  바깥에서는 현대중공업 노조파업이 끝났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졌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였죠. 진실을 찾기 위해 저는 바로 울산으로 달려갔고 그 진실을 세상에 최초로 알렸습니다.
 
   
 
  중대신문 제1312호 1995년 5월 8일
  여러분에게 흑석과 안성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저는 대학과 지역은 하나의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흑석과 안성은 중앙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죠. 흑석과 안성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대학신문 최초로 ‘지역면’을 만들었습니다.
 
  지역면을 통해 중앙대와 인접한 지역의 소식을 꾸준히 전달해왔고 배부대 역시 지역으로 확대했습니다. 지역면은 여러 번의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1998년과 1999년에는 각각 지역면, 보도면을 흑석, 안성에 분리 발행해 지역과의 연계성을 강화했죠.
 
   
 
  중대신문 제1536호 2003년 10월 6일(좌측)
  한반도는 분단의 아픔이 있습니다. 지금도 남과 북으로 갈라진 상황이죠. 저는 4년간의 준비 끝에 대학신문 최초로 방북취재에 나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중대신문 제1689호 2009년 9월 1일(우측)
  우측에 있는 저, 약간 달라보이지 않나요? 베를리너판으로 바뀌어 작아졌지만 훨씬 보기 좋아졌죠. 겉모습만 달리진 건 아닙니다. 혁신적인 시도로 대학신문의 디자인을 선도하고 있죠.
 
   
 
   2012~2015년 대학신문상 연속 수상
  2010년대 들어서 저는 여러 상을 수상했습니다. 2012년 <시사IN> 대학신문상에선 ‘학내 취재 보도상’, ‘사진 보도상’ 2개 부문을 석권했죠. 중앙일보 ‘올해의 대학신문상’을 2012년과 2013년 그리고 2015년에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2014·5년 송건호대학사진상에 2년 연속 지명됐죠.
 
  제가 대학신문상을 휩쓸 수 있던건 저를 도와주신 분들 덕분인 것 같습니다. 기자들은 물론, 취재에 응해주시고 도와주신 모든 여러분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중대신문 제1900호 2017년 8월 28일
  대학언론으로 열심히 달려온 지 벌써 70년이 됐습니다. 신문 지면으로는 1900번째를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발전했습니다. 달라진 저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저를 사랑해주시고 때로는 비판해주신 모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먼저 드립니다!

  앞으로도 저는 끊임없는 고민과 발전으로 달라질 겁니다. 하지만 딱 한 가지는 변함없을 것 입니다. 대학신문의 효시답게 대학언론의 선두자로서 언제나 여러분을 위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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