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언론의 한계를 넘고 독자의 곁에 서다
  • 김성우 기자
  • 승인 2017.08.27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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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밖으로 눈을 돌려
끈질긴 취재와 분석으로
대학언론의 방향 제시
 
주 2회 발행, 지역면 도입 등 
새로운 시도
 
중대신문의 ‘정론직필’ 정신은 1990년대에도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진실에 기반을 둔 올바른 보도를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았죠. 1990년대의 중대신문은 대학언론의 한계를 넘어서 사회 현실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정론직필’로 사회를 흔들다
  지난 1990년 4월 중대신문은 현대중공업 파업사태 현장으로 2명의 기자를 파견했습니다. 기자들은 르포 기사에 실제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 전달했죠. 중대신문은 해당 기사를 통해 경찰 투입으로 파업 사태를 진정시켰다는 일간지 보도가 오보였음을 밝혀냈습니다.
 
  또한 같은해 11월 중대신문은 대학 입시 커트라인을 알려주는 입시전문지 『진학』이 일부 대학의 커트라인을 높게 설정하고 중앙대의 커트라인은 낮춰 발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끈질긴 취재와 날카로운 보도로 중대신문은 『진학』이 제시한 예상 합격선의 불합리를 밝혀냈죠.
 
  진실을 추구하는 중대신문의 ‘정론직필’ 정신이 발휘된 기사들은 주요 일간지에서 후속 보도를 낼 정도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90년대 중대신문은 대학언론의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대학언론 최초 주 2회 발행
  중대신문은 주 2회 발행으로 1990년대의 막을 올렸습니다. 1989년 ‘주 2회 발행 준비소위원회’를 구성해 시험적으로 시도했던 주 2회 발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죠. 신속한 보도와 활발한 여론 수렴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중대신문은 ▲대학원신문과의 통합 ▲여론수렴기구 강화 ▲지면 구성 다원화 등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쳐 실행한 주 2회 발행으로 뉴스 접근성과 영향력을 향상했습니다. 당시 주 2회 발행을 했던 윤준구 동문(경영학과 90학번, 인재개발팀 및 취업지원 1팀장)은 “주 2회 발행으로 뉴스의 속보성을 강화하고 중대신문 기자들의 노력을 주 2회 전달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죠.
 
  주 2회 발행은 시행 만 3년 5개월이 지난 1993년에 막을 내립니다.매일 신문을 발행하지 않는 한 속보성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기자로서의 사명감과 학생으로서의 현실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도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결국 기자들의 부담을 줄이고 더욱 정확한 기사를 쓰기 위해 주 1회 발행으로 체계를 개편합니다. 이후 지금까지 중대신문은 주 1회 발행을 이어오고 있죠.
 
  지역면, 대학과 지역을 연결하다
  1995년 중대신문은 대학언론 최초로 ‘지역면’을 신설했습니다. 대학과 지역을 연계해 상생 발전을 이루기 위함이었죠. 지역면에는 ▲문화 행사 ▲지역의 문화유산 ▲관공서 공지사항 등 지역 주민과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 면으로 시작된 지역면은 1996년부터 1997년까지 3개 면으로 증면됩니다. 1998년 3월부터는 지역면을 서울캠과 안성캠으로 분리해 지역 특성을 살린 중대신문을 제작했습니다. 같은해 배부처를 노량진과 안성 일반농원까지 확대해 보다 많은 지역주민과 소통하는 기회를 마련했죠. 안성은 학교와 시내 사이가 멀어 기자들이 직접 지역주민을 찾아가 신문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10년 동안 중대신문의 한 축을 담당했던 지역면은 지난 2004년 폐지됐습니다. 지역과 대학을 연계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 반복으로 참신함을 잃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중대신문은 ‘중앙대 후원의 집을 찾아서’와 ‘동작/안성은 지금’ 등의 꼭지로 여전히 지역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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