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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한평생을 사람과 함께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좋은 이름을 지어주려 한다. 아이의 이름은 학교, 직장 등 사회 어디에서나 따라다니고 심지어 죽어서도 묘비에 기록된다. 언제 어디에서나 함께 하는 동반자와 같은 이름. 이름은 도대체 무엇이고 인간에게 평생 어떤 영향을 줄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인간에게 이름이 갖는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성명학=이름은 옷이다
  성명학은 운명과 관련지어 이름을 짓고 풀이하는 학문을 말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철학관 혹은 작명소에 가서 좋은 이름을 지어오는 풍습은 성명학이 우리 생활 속에 깊게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이동우 성명학자는 이름이 인간의 개척 정신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사주, 즉 운명은 개인이 타고난 불변의 것이지만 작명을 통해서 운명을 개척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운명을 담은 사주가 몸이라면 좋은 이름은 몸을 멋지게 꾸밀 평생의 옷이죠. 좋지 않은 사주를 타고 났어도 이름이 좋다면 운명이 좋게 바뀔 수 있어요.” 이는 반대로 아무리 좋은 사주를 타고 났어도 이름이 좋지 않다면 운명이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이동우 학자는 평생 입는 옷인 만큼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명학에서는 좋은 이름이 좋은 에너지를 불러온다고 말한다. 또한 이름이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영과 육체를 움직이게 하는 동시에 그 둘을 연결하는 고리가 된다고 여긴다. 이런 고리를 만드는 작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조화다. 작명할 때는 이름을 구성하는 한자의 뜻부터 획수까지 음양오행의 조화를 치밀하게 계산한다. 조화가 깨져 한쪽으로 치우친 이름은 한평생 오장육부와 성격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름의 획수가 음의 숫자로만 이뤄지면 내성적이고 병약하며, 양의 숫자로만 이뤄지면 지나치게 외향적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이동우 학자는 이름과 운명의 연관성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름이 정체성의 그릇 역할을 하면서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이름이 운명 전체를 결정짓는다는 믿음은 과장이에요.” 이름은 단지 운명을 바꿔보려는 노력의 일환일 뿐 절대적으로 운명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리학=이름은 나침반이다
  허지원 교수(심리학과)는 이름이 인간의 선호도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사람은 자존감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특성들을 좋아하는데 이는 이후 인간이 마주하는 선택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선호도를 형성한다. 이름에 대한 선호도도 그중 하나다. 
 
  실제로도 미국의 조지아(Georgia)주에는 유독 조지(George)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플로리다(Florida) 주에는 플로렌스(Florence)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비슷한 현상으로 로렌스(Lawrence)나 루이스(Lewis)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이후에 변호사(Lawyer)가 될 확률 또한 높았다. 
 
  허지원 교수는  위와 같은 사례가 이름이 형성한 선호도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특정 주에 사는 사람들이 자식에게 주와 유사한 이름을 붙이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조사 결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과 유사한 지역으로 이사했던 것으로 밝혀졌죠. 자신의 이름과 유사한 이름의 주에 거주하거나, 직업을 가지면 행복한 삶을 살 것 같다는 무의식적인 욕구의 반영이에요.” 
 
  그뿐만 아니라 허지원 교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름으로부터 암시적인 메시지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름이 너무 평범하다던가 의욕을 좌절시킬 수 있는 어감을 가진다면 위험을 감수할만한 일을 만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나는 그 정도가 아닐지도 몰라’라며 스스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어요.” 이름이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도록 주의를 요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허지원 교수는 너무 거창한 의미를 가진 이름을 지을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이상을 가진 이름을 지을 필요는 없어요. 결국,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니까요.”
 
  언어학=이름은 거울이다
  양명희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이름에 특정 시대를 지배하는 가치관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작명이라는 행위는 사적인 범주처럼 보이지만 특정 시대의 사유 체계 안에서 이뤄져요. 이름을 통해 한 시대가 표방하는 문화적 특성까지 파악할 수 있죠.”
 
  과거 이름들은 전통사회가 가족, 혈연 중심 사회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통적 사회에서 이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혈연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박환영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이름은 자신의 뿌리를 알리는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동서양 공통으로 이름의 성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주된 해석은 이름의 성이 부계를 알리면서 해당 친족집단의 구성원임을 밝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란 것이죠.” 서양에 Baker, Taylor처럼 직업을 의미하는 단어의 성이 많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대로 가업을 물려받던 전통사회에선 직업이 가문의 정체성이 되기도 했다.
 
 가족이 중시됐던 과거 사회에서는 이름 세 글자 중 단 한 글자만이 개인에게 허락됐다. 조선 시대에 이름을 지을 때는 물려받은 성 이외에도 항렬에 따른 돌림자가 미리 정해졌기 때문이다. 돌림자를 통해서 당시 남성들은 조상의 제사와 관련한 의례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사회가 세계화, 다원화됨에 따라 이름의 전통적 기능이 쇠퇴하고 개인의 의지가 더 많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박환영 교수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이름이 가진 이미지를 중시하는데 이는 개개인에게 형성한 이미지를 그들의 이름에 투영하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서 유행을 타는 이름들은 대개 연예인이나 행복한 결말의 드라마 주인공 이름이었다. 연예인이나 드라마 주인공들이 가진 좋은 이미지를 이름에 투영해 자식들도 그 이미지를 가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연예인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에 맞는 가명을 사용한다.
 
  양명희 교수는 이름이 인간의 존재 가치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이름이 있어야 집단이 아닌 하나의 개체로서 존재가 유의미해져요. 그냥 인간 중 하나가 아니라 특정한 누군가가 되는 거죠.”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아무 의미도 없던 존재는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개체성을 띠고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처음 만난 사람과의 통성명도 같은 원리다. 인간은 통성명을 통해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박환영 교수는 이름이 개인과 사회의 모습을 함께 담고 있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름은 우리의 뿌리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이미지를 말해줘요. 이름을 통해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에서 현재 내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디인지 그 속에서 나는 누구인지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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