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부문 당선작품)
열흘 붉은 꽃이 영원을 산다는 것

 일러스트 장성윤 씨


 うつりにけりな いたづらに / わがよにふる ながめせしまに 
벚꽃의 아름다움이 바래버렸구나. 이 무슨 세월의 장난일까.
바라보고 있는 나도 결국 저 꽃처럼 되고 마는 걸까.

 
일본의 여류시인인 오노노 코마치는 인생의 덧없음을 지는 꽃에 빗대어 위 와카를 읊었다. 일제히 아름답게 피었다가도 금세 져버리는 벚꽃. 그 특성이야말로 짧아 허무하기만 했던 그녀의 생과 너무나 닮아있었으리라. 자유 분망한 연애를 선망하고 화려한 궁중 문화의 꽃을 피웠던 헤이안 시대에서 그녀는 제 총명함과 아름다움으로 임금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고 그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말년에는 아름다움을 잃고 궁을 나와 방황하였는데 그럼에도 시 짓기 실력만큼은 녹슬지 않았다고 한다. 꿈만 같았을 궁중의 삶, 푸르렀던 나날 위에 쌓였을 지고한 영광들. 그녀는 누구에게나 선망 받는 고귀한 시절을 누렸을 것이다. 허나 꽃이 영원을 살지 못한 것처럼 그저 순리에 의해 그 시간들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초로에 들어선 그녀는 잡을 수도 없이 흘러간 시간들이 그리웠던 것일까. 죽는 것은 순서가 없다지만 나이를 먹어가는 것만큼은 공평하지 그지없는 법. 늙는 것을 두려워하고 젊은 시절의 열정을 그리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겠지만 오노노 코마치는 그 우울함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 그녀는 아마 그 일련의 지는 것들을 회고하는 그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으리라.

아득한 세월을 먼저 나고 자란 오노노 코마치는 나와 접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내가 그녀를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남긴 노래들이 아직도 남아 세상에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하였던가. 가문의 이름을 드높인다는 입신양명이라는 사자성어가 우리나라에도 있음을 생각해 볼 때, 사회에서 무언가를 남기는 행위는 어쩌면 우리 인간들 나름의 사명일 런지도 모른다.

오노노 코마치는 자신의 업적을 밝고도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에 일구어놓았다. 그녀의 일생을 보고 생각한다면, 나의 이십대는 움츠러든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오른 개화기임에 틀림이 없다.

본래 청춘이라면 열정이나 꿈과 희망이 있는 시기이다. 하지만 헤이안의 육가선으로 당대 빼어난 재주를 뽐낼 수 있었던 그녀의 젊음은 나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녀가 그리워하는 시절은 나에게 있어서 아직도 인고하는 시간에 불과하기에. 그럼에도 청춘이란 내가 가장 소신대로 불타오를 수 있는 시절이리라.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고 싶은 것 보다 하지 못하는 것이 많아지고 꿈과 열정보다는 요령이 존중받는 것이 현 사회의 주소지이다. 평범하되 평범해서는 안 되며 유능하되 뛰어나서는 안 된다. 이 모순 같은 말들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라는 흔한 말로 대변되고 있지 않는가.

나는 꼬박 12년을 유수 대학에 입학해야한다는 압박감과 통념에 사로잡혀 사회의 톱니바퀴에 올랐었다. 이미 앞서 내 부모들이 걸었던 길. 스스로의 몫을 책임지고 나아가 가족의 몫을 더하는 인생.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선 그 만큼의 부양 능력이 필요한 세상. 그렇기에 좋아하는 것보단 소위 말하는 돈 되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 제일인 나라. 이런 사회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내가 원하고 이루고픈 꿈을 둘러싸고 노도마냥 산란하는 반대에 부딪쳐야 했다.

일 년을 두 학기로 나누어 꼬박 18학점을 채워 수업을 들으며 그 사이 사이에 소위 말하는 스펙 쌓기를 전개한다. 쉬려고만 하면 과제들이 속속히 날아들고 보고 싶고 하고 싶었던 일들 간의 괴리가 생긴다. 하루가 48시간이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하고픈 모든 것들을 미루어두고 잠을 자면 금방 아침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일어나 어둑한 공기에 숨을 쉬고 탁한 목 안을 미지근한 물로 데우며 낮은 숨을 내뱉기를 수어 차례.

그렇게 또 정해진 운명처럼 하루가 시작되고 나는 어느새 마리오네트가 되어 그 하루를 살아간다. 이러한 삶이 이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진리이다. 친구들과의 짧은 담소에는 삶에 대한 피로가 묻어나고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음에도 악착까지 살아가려고 한다. 집으로 들어와선 많은 양의 과제와 각종 대외활동에 시달린다. 우습게도 그런 활동들은 기본일 뿐이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한 삶의 연속. 그것이 사회라는 울타리가 제시하는 내가 걸어 나가야 할 길이다. 금기어라도 되는 양 그 누구도 다르게 살아도 된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사회에서 인간의 경쟁은 동식물들이 서로 대립하여 살아남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에. 이때 사회의 룰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금방 무리에서 배제되고 만다.

이제껏 살아온 내 일생 중 열정 없는 나날이 없었고 성실하지 않는 나날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남들을 제치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몸부림쳤고 지독한 끈기를 가지고 오로지 대학에 갈 나날만을 바랐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던 대학에 들어온 1년을 보내니 깨달은 것은 내가 사회의 톱니바퀴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해진 순리라도 되는 양 사회는 틀을 제시했고 아무렇지 않게 그에 맞춰 복잡한 일들을 처리해나가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새삼 기가 차게 슬펐다. 모나지 않게 순탄하게 살아야 하는 삶.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삶.  내 삶을 사회라고 하는 통상의 진리가 접고 오려내 만들어간다는 것은 심히 불쾌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비단 사회만의 악행만이 아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내 편일 가족조차도 내 인생을 재단하려 한다. 맨 처음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을 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었다. ‘너무 진지하게는 하지 말라. 취미 정도로만 여기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먼저 쌓으라고. 또 아빠는 이렇게도 말했었다. 큰 것을 바라지 말라고. 세상은 내가 노력한 만큼 돌려주지 않을 때도 있다고. 그것은 앞서 인생을 살아온 연장자로서의 조언이었다. 부모들은 사회의 현실을 잘 알았다. 그들이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톱니바퀴를 돌려주고 있기에 자식 세대인 나는 어려움 하나 없이 자란 것도 사실이다. 소위 베이비 붐 세대로 대표되는 나의 부모들은 비교적 어려운 형편에서 자라 자식인 나에게 되도록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파 했다. 그렇게 그들 품에 안겨 양육받기를 12. 그러나 마냥 돌봄의 대상이었던 나는 어느새 자라나 선거권까지 가지게 되었다. 마냥 부모의 품에 안겨있을 수 없는 시기가 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모는 자식이 실패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무조건 안정적이고 경제성 있는 직업을 찾고 평범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들은 자식에게 아낌없는 나무처럼 사랑을 베푼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으로 어르고 키웠다 한들 자식은 부모들의 소망 투영물은 될 수 없다. 때때로 부모는 자식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종종 자식의 중대사를 멋대로 결정하고 만족해 왔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번번이 자식들은 침음을 삼켜오지 않았던가. 나에게 부모란 때론 거대한 벽과도 같아서 아무리 진심을 전달하려 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사람답게 교육시켜놓았으니 모든 평생을 부모에게 저당 잡혀야 한다는 것은 잔인한 처사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부족하다곤 하나 지금은 사회적으로 충분히 성인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자신감의 발로일까? 나는 더는 부모님의 뜻에 맞춰 사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부모가 그들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왔듯 나도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사회생활 안 해본 풋내기의 말이라 부모님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과 맞설 준비도 되어 있다. 그러나 어떠한 운명과 마주한다 할지라도 나는 대화하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 않은가. 대화를 지속하다보면 접점이 생길 것이고 언젠가 마음이 통할 수도 있으리라. 부모는 기실 개인의 삶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들이다. 분명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들이 충고를 가장해 개인의 삶에 끼어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 끝에 후회가 있더라도 오롯이 자신의 선택을 밀고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타고난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이기적인 감상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을 꿈꾼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우리의 무언가는 남아 시간, 공간을 초월한 세상에 전해질 수 있다. 당대 혁신적인 여성으로 유명했던 오노노 코마치가 필부의 삶을 좇았더라면 그녀의 아름다운 시구들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작은 것이라도 목적을 두고 있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세상 모든 이들은 자신들이 정한 분야에서 성공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그 성공이 굳이 사회적인 입지를 확립하는 것이 아니어도 좋다. 작고 소박하거나 혹은 크고 거창하거나. 저마다의 의미가 담겨진 성공이라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공은 사회 혹은 부모 또는 지인의 의해서가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선택과 결정만이 이룰 수 있다. 무언가를 남기는 것이란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값지고 유의미하게 거론되고 있다. ‘베르테르의 슬픔을 만들어낸 괴테 본인의 처절한 짝사랑과 철학의 대가, 니체를 이루는 이념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남아있는 기록물들로 앞선 천재들을 기리고 있다. 그들이 세상에 남겨놓은 책과 논문 등에는 그들의 열정이 묻어나온다. 이러한 결과물은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본인들의 의지에 의해 일구어놓은 기억의 산물이다. 즉 과거의 천재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에 정성을 다해 흙으로 돌아가질 않을 영원을 남긴 셈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다. 권력은 십년을 가지 못하고 꽃은 열흘을 붉지 못하다는 뜻으로 어떤 것이든 영원은 없다는 것을 토로한다. 기실 죽어 없어질 것은 한계가 있다. 그것이 권력이던 미모이던 간에. 그러나 악행을 저지른 자와 선행으로 덕망 높은 자 모두 역사에 기록되니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었는가가 후대에게 달리 알려진다.

이처럼 나는 현실에서 버티며 나름의 의미를 찾으며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어떤 이들의 눈치를 보고 싶지 않고 자유롭게 하다가 가고 싶다. 물론 그 사이에는 여러 어려움과 절망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도 곧 내 몫이리라. 그리고 언젠가 청춘을 바친 나의 노력이 꽃을 피울 날도 오리라. 열흘이 아닌 영원의 이름을 한 붉은 꽃으로.

 

 

(당선자 인터뷰)
영혼이 빚어낼 영원의 꽃
 
 
깊은 내면에서 삭고 곪아 입으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벅차오르는 감정이 있다. 그런 감정은 한 자씩 글에 담아보는 게 좋다. 어느새 자기도 알기 힘들었던 마음이 정리돼 세상에 자기 색을 빛내기 때문이다. 수필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가 담기기에 그 자신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수필공모전 수필 부문 당선자는 이지민 학생(역사학과 2)이다. 영원히 아름다운 꽃을 만들고 싶다는 그녀를 만나봤다.
 
  -공모전에 지원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평소에도 글을 쓰거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걸 좋아해요.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만드는 거요. 대외활동으로 대학생 기자단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기사는 일정한 틀 내에서 써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내가 쓰고 싶은 대로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던 중 우연히 공모전 광고를 보고 수필을 내게 됐어요.” 
 
  -대학 생활을 바쁘게 보내는 것 같다.
  “네, 맞아요. 고등학교 때는 공부나 친구 관계 등 여러 이유로 스트레스가 컸어요. 대학 진학은 제게 유일한 탈출구였죠.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걸 꿈꿔요. 새장을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처럼 말이에요.(웃음) 작년 새내기 시절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워요. 맘껏 놀고 즐겁게 지냈죠. 하지만 한편으론 생각만큼 자유롭지 못했어요.”
 
  -생각만큼 자유롭지 못했다니.
  “지난학기에 웹 소설 연재를 시도했어요. 공모전에 출전해서 당선까진 됐는데 시간이 없어서 연재를 못 했죠. 부모님 반대도 심했고요. 쓸데없는 일을 왜 하냐는 소리를 들었을 땐 기분이 나빠 부모님께 대들기도 했죠. 무시당한다고 느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인데 왜 이렇게 심하게 간섭하나 싶었죠.”
 
  -남은 대학 생활 동안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대학이란 공간 안에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요. 음악을 좋아해서 첼로 수업을 듣고 있어요. 미술에도 관심이 있어서 미술관 서포터즈 활동을 지원해 보려고요. 교환학생도 해보고 싶어요. 안중근 의사께선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하셨는데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전 하고 싶은 걸 못하면 병에 걸리는 성격이거든요.(웃음) 꾸준히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해요.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일 말이에요. 특히 글을 쓸 때 그렇게 느끼곤 하죠. 소설을 쓰는 것도 제 인생을 기록하는 작업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구체적인 행복의 기준을 생각한 적이 있나.
  “중국 학자 정이는 세 가지의 불행(三不幸)에 대해 말했어요. 젊은 시절의 너무 빠른 출세로 교만해지는 것(소년등과), 위세가 대단한 부모를 만난 덕에 권세를 누리는 것(석부형제지세), 뛰어난 재주와 문장을 가진 것(유고재능문장)이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즉 어떤 위치에 있어도 힘든 것은 매한가지라는 말이에요. 이런 글귀들을 보다 보면 남들이 보기엔 소박하더라도 나 자신이 만족하는 일을 하면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자기 나름의 기준을 세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기준이 아닐까요.”  
 
  -자신이 꿈꾸는 인생은 어떤 모습인가.
  “청춘엔 자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는 자유 말이죠. 나 자신을 대면하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해요. 오노노 코마치가 노래하듯 삶은 유한하죠. 언젠가 끝날 짧은 인간의 인생이지만, 그 생애 동안 영원히 남을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을 찾고 포기하지 않고 해내면 언젠가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미래의 자신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혹여 힘들고 지친 상황에서도 지금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이번 공모전처럼 제 재능을 알아보시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또 저를 도와주는 분들도 계실 거고요.(웃음) 범사에 감사하고 역경이 닥쳤을 때는 체념하지 말고 해학으로 견뎌냈으면 해요. 좌절로 움츠려 있지 말고 ‘일어서서 움직여라.’ 나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고 싶어요.”
글 서보미 기자 bom@cauon.net
사진 오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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