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운동이 전개된 지 약 20년 만에 동성애가 주요 이슈로 대선토론에 등장했다. 성소수자의 존재와 권리가 드디어 정치권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마냥 유쾌할 수 없다. ‘동성애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식 없는 혐오발언부터 ‘하늘의 뜻에 반하는 동성애를 엄벌해야 한다’는 무식이 대선후보들의 입을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근간은 자유와 평등이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누구라도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성소수자 역시 누구와 사랑하고 가정을 꾸릴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민이며 누군가의 사랑과 가정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지도,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도 않는다. 성소수자들의 사랑과 결혼이 침해하는 자유는 포비아들의 혐오와 차별에 대한 ‘자유’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오늘도 영외의 동성애를 죄목으로 동성애자 군인에게 2년의 징역을 구형했고, 동성애로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면서 누구에게나 보장된 혼인의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철폐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이다. 이미 23개국 이상이 동성혼을 합법화했으며 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동성혼제도를 곧바로 도입할 것인지 혹은 시민연대협약(PACS)과 같은 중간 형태를 거칠지에 대한 논의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나아갈 방향은 의식은 물론 제도에서도 모든 형태의 차별을 제거하는 것이다.
 
  성애에 대한 정체성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바뀔 수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기 자신을 규정하고 정의할 권리 자체가 선천적이며, 어느 누구도 프로크루스테스가 되어 자신의 침대에 타인을 때려눕히고 그 시시비비를 재단할 권리를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생득적인 정체성에 대한 왈가왈부 자체가 또 다른 적폐고 부조리며 폭력이다. 촛불 투쟁으로 세운 새로운 나라를 더럽히는 혐오가 더 이상 존재해선 안 된다.
 
  인류는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성장해왔다. 노예,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여성 등 소수자는 다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와 제도로부터 배제됐으며 이 비합리성에 대한 저항과 희생을 통해 사회는 진보해왔다. 그러나 진보의 역사 속에서도 성소수자들은 너무 오래 기다렸다. 냉소만으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것 또한 민주주의의 성질이다. 시작은 늦고 미흡했을지라도, 차별과 혐오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 배제된 이들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논의가 속히 이뤄지길 바란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