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새 시대가 왔다고 한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분노로부터 시작된 저항의 목소리가 모여 부패한 권력을 무너뜨렸다. ‘6월 항쟁 이후 한국 민중들이 이뤄낸 최대의 승리’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지난 5월 9일,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첫 주에 한·일 위안부 합의 재논의를 시사했고, 세월호 희생 기간제 교사들의 순직을 인정했고, 국정 한국사 교과서 폐기를 지시했다. 지난 9년 간 보지 못했기에 너무 낯선 상식적 국정 운영에 모두가 환호했고, 많은 이들이 ‘촛불의 승리가 완성됐다’고 말했다.
 
  올해 5월 9일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것이다. 이전에도 역사에 기록될 만한 5월 9일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90년 5월 9일, 민주자유당의 첫 전당대회가 열렸다. 민자당은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의 연합으로 소위 3당 합당으로 탄생했다. 3년 전 6월 항쟁을 이끌었던 민중들은 야당을 끌어들여 수명을 연장하려는 노태우와, 민주화 투사의 삶을 팽개치고 군부 독재 세력들과 손을 잡은 김영삼에 대한 분노에 가득 찼다. 5월 9일 서울 도심에 10만 명이 모였다. 몇 년 만에 일어난 대규모 시위였지만 3당 합당 자체를 막지 못했다. 92년 대선에서 김영삼은 승리했고, 그는 군부 못지않게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이후 민자당은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을 거쳐 오늘날의 자유한국당까지 이어진다.
 
  87년 6월 항쟁은 교과서에 민주화 운동의 완성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90년 5월 9일이 보여주듯이 이후에도 민중에 대한 탄압과 착취,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은 계속됐다. 그러나 제도적 민주화의 실현이라는 성과는 계속해서 싸웠던 민중들의 목소리를 손쉽게 가렸다. 87년은 단지 어두운 과거의 끝이 아니라 밝은 미래의 시작이 되어야만 했다. 그 시작이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박근혜 정부라는 거대한 괴물은 남아있는 어둠의 잔재 속에서 성장했고, 6월 항쟁 이후 정확히 30년이 흘러 민중은 다시 한 번 시대의 어둠을 직접 쓰러뜨려야 했다.
 
  6월 항쟁과 박근혜 탄핵의 의미를 깎아내리려는 것도, 문재인이라는 인물을 평가절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것을 ‘완성’이라 말하는 섣부른 평가를 경계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박근혜 정부라는 괴물은 박근혜 개인의 악함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섣부른 평가에 가려져 있던 우리 사회의 병폐 속에서 자라났다. 박근혜 개인의 몰락도, 문재인 개인의 성공도, 변화의 완성이 아니다. ‘문재인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문재인이라는 한 인물을 찬양하고 현상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나은, 보다 더 옳은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한 개인에게 맡길 일도, 정치권에만 떠넘길 일도 아니다. 역사에 남을 2017년의 5월을 보내며, 우리가 직접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안태언 학생
영어영문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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