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감싸안은 무지개
  • 김현지 기자
  • 승인 2017.05.21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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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동성혼 돌아보기

‘딴지 걸기’는 어떤 일이나 형상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거나 훼방을 놓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번학기 기획부는 불편함을 당연시하는 우리 사회에 딴지를 걸어보려 합니다. 여섯 번째 딴지는 바로 ‘동성혼’입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결혼을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남녀’만이 결혼을 원할까요? 결혼은 관계에 대한 사회적인 인정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엔 결혼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권리들이 많죠. 그러나 법적으로 결혼이 불가능한 동성애자들은 모두가 누리는 권리에서 배제당하고 있는데요. 동성혼을, 그들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딴지를 걸어봤습니다.

 

 
  최소한의 권리에서
  기본적인 권리로
 
결혼은 개인 간의 애정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상징한다. 때문에 사회에서 결혼은 법적 권리 이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의 수단이다. 이성애와 동성애의 구분은 애정의 방향성을 기반하기 때문이다. 동성혼을 법제화하고 있는 국가가 늘어가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는 파트너와의 법적 권리를 인정받을 수도, 완전한 결혼을 할 수도 없다. 동성혼을 법제화한 해외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짚어봤다.
 
  프랑스=동성혼을 법제화하는 형태는 국가마다 다양하다. 동성 커플에 결혼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동성혼’ 법제화와 동성혼을 ‘결혼’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결합으로 인정하는 것이 대표적인 동성혼 법제화의 방식이다. 전훈 교수(경북대 행정학부)는 과거 프랑스에선 후자의 방식을 통해 동성 커플의 권리를 보장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1999년 시민연대협약(PACS)을 통해 동성 커플에게 결혼에 준하는 법적 권리를 부여했어요. 동성 커플에게 일반적인 가족 관계가 보장하는 권리를 허용한 것이죠.”
 
  그러나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약은 사회가 동성혼을 완전히 인정했음을 의미하진 않았다. 시민연대협약이 제정된 1990년대는 전세계적으로 동성애 차별 금지 운동이 확산된 시기였다. 유럽 각국에서 동성애 차별금지법이 제정됐고 프랑스에서도 동성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법원은 동성혼을 거부했고 결국 타협책으로써 제정된 것이 바로 시민연대협약이다.
 
  동성혼에 대한 차별은 시민연대협약 자체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전훈 교수는 당시 프랑스의 민법을 언급했다. “당시 프랑스 민법에선 결혼을 이성 간의 결합으로 한정했어요. 시민연대협약이 일반적인 결혼과는 다른 형태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죠.”
 
  시민연대협약의 차별적인 요소들은 프랑스에서 동성혼에 대한 주장을 더욱 강경히 하는 계기가 됐다. 프랑스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된 2013년까지 동성혼은 매번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사회적으로 많은 논의가 오갔다. “프랑스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한 차원에서의 논쟁이 이뤄졌기 때문이에요. 가족이라는 사회적 차원과 성적 지향이라는 개인적 차원의 접근이 함께 이뤄졌죠.”
 
  미국=1990년대 세계적인 동성애 차별 반대의 움직임에 맞춰 미국에서도 동성혼을 사실혼 관계로 인정하는 ‘The Act To Civil Union(시민적 결합제도)’를 제정했다. 시민적 결합제도는 동성혼에 결혼이 가지고 있는 법적 권리와 거의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동성 파트너에 대한 상속, 재산 분할의 권리뿐만 아니라 상호간 부양책임도 부담한다.
 
  하지만 시민적 결합제도 역시 동성혼을 일반적인 결혼의 범위에서 배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시민적 결합제도는 ‘결혼’을 원칙적으로 1남 1녀의 결합이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는 완전한 평등과 결혼의 자유를 요구하는 동성애자 인권 운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성애 혐오가 드러나는 결과다.
 
  김병록 교수(조선대 법과대학)는 그 이후인 2000년대부터 미국에서 동성혼이 꾸준히 논의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대선 시기마다 논쟁거리가 되는 게 있어요. 바로 동성혼이죠.” 많은 동성 커플이 법원에 결혼 허가증 발급을 요청하고 동성혼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하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201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과거 동성혼을 거부하는 ‘결혼방어법’에 위헌 판결을 내렸고, 2015년에는 드디어 미국 전 지역에서 동성혼이 합법화됐다. 결혼이 반드시 이성간의 결합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법은 개인간의 결합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만=유럽과 달리 아시아에선 동성혼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아직까지 아시아권에서 동성혼을 법제화한 국가가 없는 가운데 대만이 그 논의를 시작했다. 현재 대만은 동성혼 법제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동성혼 법제화 초안이 발의된 이후로 지난달 24일 법제화의 마지막 단계인 입법위원의 독회에 돌입했다.
 
  하지만 대만의 동성혼 법제화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2016년 자크 피쿠 대만 국립대 교수의 자살으로 인해 동성혼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촉발됐다. 프랑스인인 그는 대만인 동성 파트너와 35년간 동거했지만 동반자로서의 법적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파트너의 암 치료에 아무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었고 심지어 파트너가 죽은 뒤엔 함께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대만 사회는 그의 자살을 통해 동성 커플에 대한 법적 지위 보장의 필요성을 느낀 대만의 일부 시에선 ‘동성반려관계등록법’을 제정했다. 동북아법연구소 김민중 전 위원장은 해당 법의 내용을 설명했다. “동성반려관계등록법은 결혼 관계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권리를 동성 커플에게도 부여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법적인 영역에서만이죠.” 동성반려관계등록법은 동반자로서의 법적 권리만을 보장하고 있을 뿐 동성혼을 이성혼과 같이 성애의 관점에서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
 
  현재 대만에서 논의되고 있는 ‘혼인평등권’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발의됐다. 해당 법안은 ‘남녀’가 아닌 ‘쌍방’이라는 성중립적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일부에선 동성혼 법제화가 아닌 동성반려관계등록법의 확장과 ‘쌍방’과 ‘남녀’의 병기를 요구하며 동성혼과 이성혼을 구분하려 하고 있다. 동성혼 법제화의 과정에서 동성혼에 대한 논의가 가시적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현재까지도 약 23개국에서 동성혼을 완전히 법제화했고 약 21개국에선 동성 커플에 대한 법적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동성 커플에 대한 법적 보장도, 완전한 동성혼의 법제화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김병록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동성 커플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도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족 관계가 누릴 수 있는 법적 권리는 결혼이 선행돼야만 한다. “우리나라에선 동성혼도, 동성 커플 간의 사실혼 인정도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동성애자는 기본적으로 가족 관계를 형성할 수 없어요. 법률혼 관계 수준의 법적 보호가 불가능하다면 동반자로서의 법적 보호라도 이뤄져야 해요.”
 
  제도뿐만 아니라 사회적 논의도 절실하다. 전훈 교수는 동성애 차별 철폐를 위해선 사회적 논의가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한 솔직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이성 간의 결합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죠.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권과 가족에 대한 관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서로의 의견을 경청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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