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정치를 일상의 민주주의로!
  • 중대신문
  • 승인 2017.05.1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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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날이 밝았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젊은 세대의 승리입니다. 전체 사전투표자 중 약 23.9%가 20대였고 출구조사 결과 압도적인 수(약 47.6%)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들은 지난 2016년 가을부터 ‘촛불광장’의 민심을 구성해 낸 주역이기도 합니다. 이는 아마도 지난 보수정권에서 더 살기 힘들어진 젊은 세대의 현실과 관련 있을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재벌들은 곳간에 돈을 쌓아두고 특정 집단에 로비를 하며 그 대가로 특혜를 누리기 바빴지요. 4대강 개발, 세월호 사건, 한일위안부 합의, 국정화 교과서, 국민의 합의를 거치지 않은 사드배치 등 지난 정권들의 무수한 실책 또한 시민들이 겪는 고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난 촛불 광장은 단순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향한 분노 표출의 장이라기보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지속적인 경멸, 이로 인한 고통과 죽음, 축적된 무자비한 무관심으로 인해 ‘마음이 부서진 자’들이 엮어낸 슬픔의 연대체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광장에 모인 이들은 국가, 정부, 민주주의, 시민권이란 인간의 마음 안에, 마음과 마음의 연결을 통해 끊임없이 구성되는 것임을 환기했습니다.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갈망했습니다.
 
  미국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은 ‘보편적’ 관점이 만약 특권집단의 이익을 정당화한다면, 그리고 ‘일반적 생각’이라는 미명 하에 억압받는 집단의 입장이 부분적이거나 편파적이라고 부정당한다면, 이를 부정의한 것으로 보고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정의는 제도화된 지배와 억압에 도전하면서 이질적인 시민이라는 비전을 제공하고 집단의 차이를 인정하고 긍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국가는 사회적 약자들, 억압받는 자들의 목소리와 관점을 효과적으로 인정하고 대변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비로소 약자들은 자기조직을 구성하고 자신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정책을 직접 제안하고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시민권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정권교체는 모든 것을 해결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새로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것도 아닙니다. 투쟁을 통해 새로운 권리를 획득하고, 비존재하는 자는 ‘실체’를 부여받습니다. 약자들의 존재에 대한 실질적 인정, 공정분배, 동등참여를 이루기 위해 여러분의 깨어있는 의식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타자를 생산하는 무수한 차별적 기제들, 혐오 발화들, 불평등한 제도들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언행에서 재생산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새로운 시민권을 상상하는 투쟁의 광장이 일상 속에서 더 너르고 지속적으로 열리길 소망합니다. 바로 지금, 여기, 여러분이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요.
 
이나영 교수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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