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권리에
어른의 책임을 지우다
 
서울대 학생과 대학본부 간 갈등이 최악의 상황에 치달았다. 서울대 학생 약 20명은 지난달 27일부터 서울캠 시흥캠퍼스 철회와 성낙인 총장 면담을 요구하며 대학본부(행정관) 1층 로비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1일 대학본부는 직원과 청원경찰을 동원해 농성 학생들을 강제로 해산했다. 강제해산 과정에서 일부 학생과 청원경찰 1명이 응급실로 옮겨지는 등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같은 날 밤, 학생들은 진입을 막기 위해 행정관 내외를 지키고 있는 직원과의 물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사다리를 동원해 창문을 깨고 2층에 진입해 재농성에 돌입했다. 다음날 성낙인 총장은 주동자를 형사고발하고 중징계를 내리겠다고 예고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3일 점거 학생 3명을 형사고발하고 10여 명의 학생을 중징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서울대 징계 처분의 규모는 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 이후 가장 큰 규모다.

  한 일간지에서 서울대 사태를 기사로 다뤘다. 기사는 서울대가 미리 학생들에게 매를 들지 않아 최악의 상황에 치달았다고 말한다. 시흥캠퍼스 문제를 두고 몇 년간 이어져 온 갈등 과정에서 학생들이 꾸준히 불법행위를 행해왔으나 대학본부가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해 일을 키웠다는 내용이다.

  언뜻 보아서는 기사가 서울대 대학본부를 꾸짖는 듯하다. 하지만 비판의 화살은 사실 대학본부를 넘어 행정관을 점거한 학생들을 향하고 있다. 기사에서 건물을 점거하고, 교수와 직원을 향해 폭언을 던지는 학생들의 행동은 무조건 불법이고 무례한 행동이다. 왜 학생들이 창문을 부수면서까지 재농성을 시도해야 했는지, 교수와 직원에게 날린 폭언이 무엇을 호소하는지는 기사에 담기지 않았다.

  기사에서 한 서울대 교수는 “회초리 아끼려다 몽둥이를 써도 해결하기 어려울 만큼 일을 키웠다”고 말한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동안 ‘어른’인 대학본부가 바로잡아주지 못했다는 의미다. 학생을 대하는 그의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20대를 어엿한 성인으로 대우하지 않고 여전히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도 회초리를 들어 종아리를 때려가면서 말이다.

  20대 그리고 대학생은 매를 들어 교화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학생과 대학본부는 회초리로 가르치고 가르침 받는 관계가 아니다. 한쪽에서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의견을 관철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양측은 학내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크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대 사태는 그런 기본적인 관계가 정립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아이’들에게 일찍이 매를 들지 못한 ‘어른’들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자 돌연 태도를 바꾼다. 사태 진화를 위해 ‘형사고발’이라는 어른들의 갈등 조정 방식을 꺼내 든 것이다. 어른들의 일을 방해해서도 안 되고, 제발 말을 들어달라며 본부를 점거하며 투정부려서도 안 되고, 어른들의 결정에 반대해서도 안 되는 어린아이들.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는 부단히 어린 아이의 그 수준에 머문다. 그러나 책임은 어엿한 성인의 것으로 짊어져야 한다.

  삶을 살아낸 시간과 경험이 올바른 결정을 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다면 더 오랜 시간을 살아낸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삶을 살아낸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는 일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20대를 온전히 성인으로 대우하고 훌륭한 성인의 갈등 조정 방식을 몸소 보이며 가르칠지, 회초리와 몽둥이를 들이대며 어린아이의 권리에 어른의 책임을 뒤집어씌워야 할지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전자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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