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얼마 전 타칭 ‘셀기꾼’이라 불리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친구는 자신의 칭호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누구보다 멋지게 담아내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다며 말이죠. 동감했습니다.

  사실 이 기사 우측 하단에 있는 사진은 가히 믿음직하지 못합니다. 기자는 여드름도 많고 눈도 작습니다. 하지만 사진에 나온 기자의 피부는 하얗고 눈도 큽니다. 기자조차 이 사진을 보고 제대로 된 모습을 연상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사진은 시각언어입니다. 촬영자는 프레임 안에 사물을 배치해 관객이 사진 너머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합니다. 셀카는 사진 너머의 자기 자신을 더 멋지다고 말해주는 셈이죠. 이렇게 보면 사진은 믿어선 안 될 매체만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진은 생각을 위한 좋은 재료라고 할 수 있을까요?

  카메라는 손쉽게 현장의 규모와 사물 사이의 거리감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광각렌즈로 찍으면 원근감이 멀게, 망원렌즈로 찍으면 가깝게 보이죠. 똑같은 피사체라도 프레임 속에 구성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분위기도 바뀝니다. 초점을 맞지 않게 함으로써 피사체를 숨길 수도 있습니다. 그럼 원근감이 정확하고 초점이 잘 맞은 사진만 객관적인 사진일까요?

  전설적인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목숨을 걸고 찍은 유명한 사진이 있습니다. 그가 긴박한 전투 현장에서 찍은 사진은 많이 흔들렸고 초점까지 맞지 않았지만 오마하 해변의 긴박한 분위기를 그 어떤 문장보다 생생하게 전하죠. 카파의 사진은 넓은 전장의 일부만 담았지만 역사의 한 장면으로서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집니다.

  사진의 객관성과 사진을 믿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법정에서는 정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믿음직한 증거물을 통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합니다. 이때 사진은 앞서 말한 조작 가능성 때문에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인정받으려면 사진이 조작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하죠. 그렇다면 보도사진은 어떻게 검증절차도 없이 신뢰받는 걸까요?

  보도사진에는 엄격한 윤리규정이 있습니다. 취재하는 상황에서 객관성을 유지하고 촬영한 사진의 무결성을 지키도록 약속합니다. 좌우 반전조차 구성을 왜곡해 사실을 조작하는 것이라며 금지되죠.

  사진기자들은 윤리규정을 천명하고 이를 지킴으로써 조작 가능성을 배제합니다. 조작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진을 바라보면 사진으로부터 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요.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라는 단순한 신뢰에 사진기자들은 양심을 걸었습니다. 이제 사진은 생각을 위한 좋은 재료가 됩니다.

  꼼꼼한 팩트 체크를 거친 글 기사는 믿고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보도윤리를 지켜 지면에 오른 사진도 당연히 믿을 수 있는 사진으로 보이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기자는 앞으로도 카메라를 들고 발걸음을 재우치겠습니다. 기자는 카메라 뷰파인더에 독자 여러분이 믿고 보는 중대신문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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