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용품 자기결정권
 
 

선택의 여지없는 생리 용품
모두가 원하는 생리는
공론화로부터

 

기술의 발전은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다. 여성의 존재와 함께 생리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생리용품은 20세기가 돼서야 사회에 등장했다. 뒤늦은 등장 이후로도 생리용품은 지지부진하게 발전해왔다. 여전히 생리용품의 안전성은 불확실하고 종류는 한정적이다. 여성은 생리용품을 결정할 권리조차 없는 것일까. 생리용품을 통해 생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짚어봤다.

  우등과 열등의 기준, 생리
  여성을 위한 생리용품은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사회에 등장했다. 여성의 생리는 스스로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고대 이집트에선 파피루스를 말아 생리혈을 처리했고, 중세까지도 여성들은 생리를 감추기 위해 걸레나 남는 천을 벨트에 고정시켜 생리용품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런 생리용품은 여성의 몸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적십자간호대 이예림 교수(간호학과)는 생리 중에는 알칼리성을 띄는 생리혈이 여성의 질 내 산도를 떨어트려 세균에 감염될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비위생적인 생리용품은 통증, 구토 등을 증상으로 하는 독성쇼크증후군을 발생시킬 수 있죠.” 생리용품 사용에 각별한 유의가 필요한 이유다.

  과거 여성은 건강을 담보로 생리를 숨겨야 했다. 아시아여성학센터 노지은 수석연구원(이화여대학원 여성학과)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생리는 열등함의 증거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당시 사회는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고 사회에서 배제하려했죠. 실제로 힌두교엔 생리 중인 여성을 오두막에 격리하는 전통이 있어요.” 생리를 금기시하는 사회에선 여성의 생리를 어떻게 보조해야 하는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였다.

  출발선에서 제자리걸음
  생리용품의 상품화는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이뤄졌다. 일회용 생리용품의 등장으로 여성은 사회활동의 기회를 얻었다. 더 이상 생리기간동안 집에 틀어박혀 조심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일회용 생리용품은 활동성을 보장하면서 여성의 사회활동을 독려했다.

  그러나 생리는 아직도 터부시되고 있다. 오늘날 생리에 대한 금기는 생리용품 광고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생리용품 광고는 ‘완벽히 숨길 수 있는’ 기능을 강조한다. 생리를 완벽하게 은폐할수록 좋은 생리용품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생리용품 광고에 등장하는 하얀 면으로 떨어지는 파란 물방울 역시 실제 생리를 외면하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그 결과 생리용품 광고는 생리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사회에 심어 주고 있다. “생리용품 광고는 생리를 전달하는 데에 가장 영향력이 큰 미디어예요. 하지만 생리용품 광고는 잘못된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죠.” 노지은 수석연구원은 생리를 꺼리는 분위기에 맞춰 재단된 생리용품 광고는 사회가 생리를 비현실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생리용품이 생리권을 보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생리용품은 일회용 패드 생리대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의 일회용 패드 생리대는 해외에 비해 그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여성은 흡수율이나 발열 등 기능성에서부터 라벤더나 한약재 등 향기까지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일회용 패드 생리대에 국한된 이야기다. 행복한 생리를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이지앤모어의 안지혜 대표는 우리나라 생리용품의 선택지가 한정적임을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일회용 패드 생리대와 면 생리대, 탐폰 이외의 생리용품을 개발하지 않았어요. 생리를 터부시하는 오랜 인식 때문이죠.” 생리의 터부시는 여성이 생리에 대해 말할 권리를 박탈했다. 그 결과 여성의 불만은 생리용품 개발 과정에서 배제됐고 결국 생리용품은 기술적으로만 발전할 뿐 종류의 다양화를 이루진 못했다.

  생리의 사회화
  최근 국내 생리용품 시장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여성들이 생리용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리컵이 바로 그 예다. 생리컵은 대안 생리대의 일종으로 컵 모양의 실리콘을 질에 삽입하는 방식이다. 자주 교체 할 필요가 없고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여성들 사이에서 생리컵이 화제가 됐다.
 
  그 결과 생리컵 공동 구매 사업이 진행됐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거부로 수입이 불가능해졌다. 생리컵이 의약외품 제조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예림 교수는 생리컵은 여성의 몸에 직접 삽입되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양인의 몸과 한국인의 몸이 완전히 같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여성의 몸을 위해선 확실한 검증이 필요해요.”

  안지혜 대표도 이에 동감했다. 이지앤모어는 생리컵 제조 허가에 도전하고 있다. 의약외품 제조 허가를 통과한 상품과 동일한 원재료를 사용하면 같은 종류의 상품을 발매할 때 따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때문에 이지앤모어가 앞서 허가를 받으면 다른 기업도 같은 재료로 생리컵을 생산할 수 있다. 안지혜 대표는 앞으로도 해외의 생리용품을 소개하고 새로운 생리용품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성은 생리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해요. 이를 위해선 생리용품의 개발과 다양화가 필수적이죠.”
 
  여성이 보다 다양한 생리용품을 선택하기 위해선 사회구성원 전체의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까지도 생리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예림 교수는 현재 생리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부족하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여성의 생리와 신체적인 부분이나 증상뿐만 아니라 제도까지 깊게 다루는 연구가 거의 없어요. 관련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유의미한 논의가 진행될 수 없죠.”

  노지은 수석연구원은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생리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결부된다. 생리는 여성의 인권과 교육권, 경제권 등 다양한 권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생리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인 것이다. “여성이 어떤 생리를, 어떤 생리용품을 쓰고 싶은지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해요. 여성의 생리는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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