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아름다운 지형을 가진 천혜의 섬
수많은 마음이 지켜낸 우리 땅
 
대한민국의 새벽을 여는 곳. 대한민국 최동단에 위치한 독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어둠이 걷히는 곳이다. 독도에서 해가 보이는 순간 우리의 하루는 시작된다. 독도가 가장 먼저 어둠을 갈라준 탓에 본토는 보다 쉽게 하루를 맞이할 수 있다. 독도는 우리의 ‘시작’인 것이다. 그 시작을 지켜내기 위해 대학신문사 편집기자들이 모였다. 기자단은 시민단체 독도수호국제연대 ‘독도아카데미’의 일환으로 지난 3월 31일 ~4일 2일 시작의 땅 독도를 다녀왔다. 
 
  가깝고도 먼 우리 땅
  서울에서 4시간여를 달려 후포항에 도착했다. 새벽보단 밤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릴 때, 후포항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둑한 새벽에 비 내리는 항구는 그 나름의 운치가 있었지만 이를 즐길 수는 없었다. 비가 온다는 것은 곧 바다의 사정 또한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6시 즈음에 비는 멈췄지만 불안한 마음은 멈추지 않았다. 항구에 도착해서도 기상상황이 좋지 않아 배를 타지 못한 적도 있다는 단장님의 경고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다행히도 배가 뜨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침 8시쯤 울릉도로 향하는 배에 승선했다. 독도를 가기 위해선 반드시 울릉도를 경유해야 한다. 독도에 갈 수 있는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출항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었다. 하지만 그 설렘도 잠시, 배가 놀이기구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현재 너울파도가 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선체가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울릉도까지 2시간 반 동안 이 상태를 견뎌야 한다니. 막막함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아수라장 같았던 배 안 상황과 달리 울릉도에 내리자마자 보인 것은 맑디맑은 하늘이었다. 언제 그렇게 날씨가 안 좋았냐는 양 새침 떼고 있는 바다가 얄밉기도 고맙기도 했다. 울릉도에 약 40여분을 머무른 후 바로 독도행 선박에 올랐다. 파도는 잔잔했다. 그렇게 또 1시간 반여를 달렸다. 배 안의 분위기는 활기찼다. 끝없는 이동에 지칠 만도 하다만 다들 독도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독도다! 어디선가 터져 나온 탄성에 배 안이 부산스러워졌다. 아직은 섬 두 개가 손톱만큼 보일 뿐인데도 말이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최대한 배를 독도에 대 보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섬 주변 선회관광으로 대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독도에 가려면 3대가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1년 중 독도에 입도할 수 있는 날이 고작 40여 일에 불과해서 나온 말이다. 독도가 가까워질수록 설렘 반 긴장 반 가슴이 두근거렸다. 걱정과 달리 큰 무리 없이 동도 선착장에 배를 댈 수 있었다. 우리 조상님들은 공덕을 잘 쌓으셨나 보다. 4월 1일 만우절. 우리는 ‘거짓말처럼’ 독도에 걸음을 내딛었다.
 
  소중한 만큼 귀중하게
  “충!성!” 독도경비대의 우렁찬 경례 소리가 기자단을 맞이했다. 결국 독도에 발을 딛고야 말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한 경례에 전율이 흘렀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전율에 젖어있을 수만은 없었다. 하·승선하는 시간을 뺀다면 독도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20 여분 남짓이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담기 위해선 그만큼 바삐 움직여야 했다.
 
  독도는 천연기념물 제 336호다. 독보적인 자연생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도엔 섬기린초나 도깨비쇠고비와 같이 생소한 식물들은 물론, 민들레와 강아지풀과 같은 익숙한 식물들까지 약 60여 종여종 식물들이 동고동락하고 있다. 게다가 독도를 ‘새들의 고향’이라고 불렀던 한 노래처럼 독도는 철새들의 쉼터이자 번식터다. 현재까지 관찰된 조류만 해도 약 160여 종에 달할 정도다.
 
  독보적인 생태를 자랑하는 것은 독도 섬뿐 아니라 그 주변 바다도 마찬가지다. 독도 앞바다는 지리적으로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조경수역이다. 말그대로 ‘황금어장’이다. 한류와 난류에 서식하는 생물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섬 주변을 따라 숲을 이루고 있는 풍부한 해조군락은 해안생태계에 안정성을 더해줄 뿐 아니라 여러 생물의 삶의 터전이다.
 
  그래서 한 때는 일반인 출입 자체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질적인 존재가 무분별하게 드나들면 혹여나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일반인에게도 개방을 하는 대신 출입가능 지역을 제한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울릉군 독도천연보호구역관리조례는 독도에서 관광객이 출입할 수 있는 범위를 동도 선착장과 그 나루터로 제한하고 있다. 그 안쪽으로 가는 길목은 독도경비대가 지키고 서 있다. 한 관광객은 ‘독도를 오르기 위해서 배에서 급히 내렸다’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독도의 자연생태를 보존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듣고 납득했다. 기자의 눈에 독도를 담는 것보다 이를 오래도록 보존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다.
 
  눈으로 느낀 하늘의 은혜
  선착장에서도 독도의 여러 지형들은 감상할 수 있었다. 독도는 본디 화산분출로 만들어진 하나의 섬이었으나 긴긴 세월 많은 부분을 파도와 바람에 내줘 지금처럼 동도와 서도로 나뉘었다. 오랜 시간 풍랑에 몸을 맡겨온 탓에 독도에는 기암괴석이라고 칭하기엔 너무 아름답고, 그저 바위라고 칭하기엔 특별한 지형들이 존재한다. ‘독도’라는 이름 자체도 ‘돌섬’에서 비롯됐다.
 
  선착장에서 가장 먼저 기자를 맞이한 것은 숫돌바위였다. 꽤나 반듯한 사각형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형상은 오랜 세월에 스러진 흔적이었지만 어느 조각가가 정교하게 깎아낸 작품처럼 느껴졌다.
 
  그 옆으로 자리하는 부채바위의 위용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동도에서 시선을 돌려 서도 쪽을 바라봐도 마찬가지다. 서도 옆쪽으론 촛대바위와 삼형제굴바위가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마치 서도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탕건용도 빼놓을 수 없다. 암석으로 이뤄진 바위천지의 섬이지만 바위 하나하나가 모두 특별했다.
 
  선착장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도 얼굴바위, 한반도 바위, 독립문 바위 등 여러 지형들이 자리하고 있다. 저 아래 해저엔 미래 에너지자원으로 각광받는 고체 천연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매장돼 있다. 다양한 생태와 지형, 자원까지 겸비한 이 섬은 과연 ‘천혜의 자연’이란 찬사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도는 ‘그냥’ 우리 땅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독도를 노리는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4월 1일, 우리가 독도 땅을 밟았던 바로 그 날 일본국토지리원은 ‘지리원지도’에 독도 지명을 일본식으로 갖다 붙였다. 동도와 서도는 각각 여섬(女島)과 남섬(男島)이라 표기하고 삼형제굴 바위엔 ‘고토쿠지마’(五德島), 촛대바위엔 ‘기리이와’(錐巖)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본식 지명을 붙임으로써 독도 침탈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넘보는 가장 큰 근거는 「시마네현고시 제40호」다. 1905년 일본정부는 「시마네현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를 일본 영토로 강제 편입시키려 했다. 1900년 고종이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 섬이라고 칙령으로 명시한지 불과 5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이 고시의 효력 자체가 의심된다. 원본은 불에 타 사라졌고 사본만이 남아있는데 이엔 ‘회람’이란 글자가 뚜렷하게 적혀있다. 즉 내부검토를 위해 활용하는 문서일 뿐 외부에 공표되지 않으면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이다. 또한 만약 고시됐다고 하더라도 일본이 대한제국에 아무런 기별도 하지 않은 채 은밀하게 고시한 것은 국제법상 무효라는 것이 다수설이다.
 
  일본의 억지 문서를 뺀 어느 기록을 살펴봐도 독도는 명실상부한 ‘우리 땅’이다. 과거 일본정부의 공식 문서들에도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고 명백히 기록돼 있다. 국제법상의 근거도 존재한다. 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부 지령(SCAPIN) 제77호는 독도를 일본통치권에서 제외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의 영토로 인정했다. 이 지령엔 이에 대한 또 다른 연합군 최고사령부 지령이 없는 이상 미래에도 영구히 적용된다고 명시돼있다. 현재까지도 유효한 지령이라는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일본의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게다가 예전부터 현재까지 독도를 지키는 주체는 ‘우리’다. 숙종 때 안용복은 일본에 납치돼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독도는 조선의 땅임을 주장했다. 결국 그는 에도 막부에게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란 확약을 받아냈다.
 
  이런 안용복의 의지는 지금까지 내려온다. 독도에 머무르는 시간은 우리 땅 독도를 마주하는 시간임과 동시에 그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이들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현재 독도엔 매의 눈으로 독도의 안위와 관광객의 안전을 지키는 독도경비대가 상주한다. 독도경비대는 군인이 아닌 의무경찰이다. 독도는 분쟁지역이 아니며 분명한 우리의 영토이기 때문에 분쟁 지역에 파견하는 군인이 아니라 자국 치안을 지키는 경찰을 배치한 것이다. 
 
  마음먹고 한번 오려고 해도 이토록이나 힘겹고 멀었던 이 땅에 독도경비대원들은 자원해서 왔다고 한다. 안용복부터 독도경비대까지 내려오는 독도수호의 의지야말로 독도가 우리 땅인 실질적인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망망대해가 가득 채워질 때까지
  배의 기적소리가 울렸다. 이제는 떠나야함을 알리는 소리다. 서둘러 승선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걸음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동쪽 끝, 대한민국 그 어느 곳보다도 ‘우리 땅’이라고 수도 없이 외친 이 곳. 떠나는 배를 독도경비대는 경례로 배웅했다. 배 안에서도 아쉬운 마음에 하염없이 멀어지는 독도를 바라봤다.
 
  처음 독도에 입성했을 때 독도가 외로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떠나는 지금은 알 것 같았다. 독도는 혼자가 아니었다. 독도엔 수많은 마음들이 머물러 있다. 독도 근무를 자원한 독도경비대의 마음, 고작 2-30분 독도 땅을 밟아보기 위해 머나먼 여정을 떠나왔던 이들의 마음, 비록 독도 땅을 밟고있진 않더라도 수호하고자 하는 의지만은 충만한 이들의 마음까지.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은 독도에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마음과 함께하는 독도는 더 이상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독도가 더욱 더 그 마음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릉도부터 독도까지의 그 머나먼 망망대해가 수많은 마음들로 가득 채워져 그 누구도 독도를 ‘외롭다’ 말할 수 없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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