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농사짓던 소년이 있었다. 그는 은행원을 꿈꾸며 상고에 진학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좌절하지 않았고 은행원을 준비하는 동안 쌓았던 지식과 세심한 습관을 바탕으로 회계사가 됐다. 그 후에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자’는 일념 아래 달려온 그는 어느새 삼정KPMG의 부회장직을 거쳐 현재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천 소년의 성공기
내 사전에 좌절은 없다

그가 걸어온 길이 곧
삼정의 역사
 
  “시련을 딛고 일어서서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실패는 있을 수 없어요. 실패는 일보 전진을 위한 디딤돌이기 때문이죠.” 긴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되뇐 말입니다.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성공만 있었던 게 아니에요. 저도 몇 번의 실패를 맛봐야만 했죠. 하지만 그 실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 게 중요해요.

  -회계사 생활은 몇 년 했나.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붙었어요. 그리고 78년부터 삼정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39년이네요.”

  -근 40년간 삼정에서 근무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전 삼정회계법인의 역사를 함께해왔답니다. 제가 입사한 당시 삼정은 회계 법인이 아닌 직원들 다해봐야 10명 남짓 있었던 회계 사무소였어요. 그땐 기업 컨설팅 같은 서비스는 제공하지도 않았고 회계 감사만 했었죠. 그러다가 점점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전반적인 회계 법인의 역할도 늘어나면서 기업 컨설팅도 맡게 됐어요. 초기 컨설팅 부서의 부장을 맡았어요. 그 후엔 회사에서 경제 연구원을 만들면서 연구원장으로서 활동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다시 감사부문으로 돌아와 대표직을 맡았죠. 지금은 부회장직에서 물러나 상근고문으로서 삼정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서는 어딘가.
  “아무래도 회계의 꽃인 감사 부서에서 일하던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자동차 산업본부’라는 부서를 만들었는데 현대, 쌍용, 르노 삼성 등 자동차 산업에 특화된 고객들을 대상으로 회계 감사와 컨설팅을 하는 일을 했었죠. 당시 회사에선 과연 새로운 부서까지 만들 만큼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점을 가졌어요. 하지만 전 한국의 주력 산업이 자동차를 겨냥한 부서이기에 성공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고 밀어붙였죠.”

  -그래서 성공했나. 
  “그럼요.(웃음) 제가 했던 성공한 프로젝트 중 하나죠.”

  -다른 것도 소개해 달라.
  “회사에서 제게 3년 동안 호주 주재원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줬었어요. 대부분 타 회계 법인에서는 6개월 정도 가는 게 전부거든요. 그런데 전 운이 좋았죠. 호주에서 지내는 3년 동안 포스코, 삼성, LG, 대성 등 외국으로 진출하는 한국회사를 대상으로 컨설팅·자문·감사 등을 제공하는 토탈서비스인 ‘코리안 프렉티스(Korean Practice)’를 설립했죠. 당시 한국 회계 법인에서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었거든요. 삼정이 첫 시초랍니다”

  삼정의 발전을 위해 달려온 이창수 고문에게 힘든 점은 없었느냐고 묻자 그는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며 웃어 보였다. “주변에서 어려움을 모른다는 이야기를 줄곧 들어왔어요. 그러면 저는 ‘힘들어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하겠지요’하고 만답니다.(웃음) 그리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자주 해요. 자기 의식화를 하다 보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참고 이겨낼 수 있더라고요. 술, 담배에 의지하는 사람도 있던데 전 건강도 해치고 더 타락해버릴 것 같아서 즐기지 않아요.”

  -삼정KPMG에 입사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많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회사 분위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삼정은 어떤 상황에서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죠. 그렇기에 고객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찾아가 서비스를 제공한답니다. 더불어 항상 발전을 도모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신뢰하는 것 같아요.”

  -발전을 도모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달라.
  “타 회계 법인과 비교하는 건 조금 그렇지만 비교적 삼정의 구성원들은 하나의 비전을 꿈꿔요. 어떻게 보면 다양성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지만 회계 법인은 항상 위험에 대비해야 하기에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가지는 게 중요하거든요.”

  -비즈니스 철학이 궁금하다.
  “비즈니스 철학이라, 대단한 건 없어요. 제 인생 철학이 비즈니스 철학 그 자체랍니다. 제가 살아온 방식은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거밖에 없어요. 주변에 ‘부장 정도 했으면 잘한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분들이 간혹 있더라고요. 여러분은 그런 마인드를 접어두세요.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정상까지 가려면 기다림을 이겨내야 하는 것 같아요.”

  -기다린다고 모두 정상에 오르는 건 아니지 않나.
  “물론 그렇지만 기다리지 않으면 기회도 오지 않아요. 최고가 되려면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진급이 늦어지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말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야 해요.”

  “오늘도 중앙대 동문과 점심을 함께 했어요. 제가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중앙대 동문이죠. 전 항상 ‘난 중앙인이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요. 동문과 학생, 동문과 교수, 동문과 학교가 서로 유대감을 가지고 소통했으면 좋겠어요. 중앙대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끈끈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소통의 창구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경영경제대학 동창회 초대회장이라고.
  “네. 2011년에 경영경제대학 동창회가 창립됐고 감사하게도 제가 초대회장으로 뽑혔죠. 이전에도 경영경제대학 동창회가 있긴 했지만 운영되지 않은 지 30년이 지났거든요. 결국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늘 동창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후배들과 장지인 전 경영경제계열 부총장의 노력 덕분에 만들어져 다행입니다.”

  -애교심이 투철하다.
  “워낙 중앙대 후배들에게 관심이 많아서요. 졸업하고 호주에 간 3년을 빼곤 매년 학교를 방문했죠. 회계사를 준비하는 후배들의 공부와 진로 상담을 도와주거나 강의를 하기도 했어요. 이렇듯 학교와 후배들에게 애정을 늘 가져왔어요. 원래 경영경제대학 초대회장으로 안국약품의 어준선 회장님이 예정돼 있었는데 그분께서 연세가 많아 힘들 것 같다며 저를 추천해주셨죠. 우연과 필연이 겹쳐 동창회장을 맡게 됐습니다.”

  -대학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
  “사실 전 대학을 갈 마음이 없었고 일찍이 취업하고 싶었죠. 원래는 은행원이 되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닌 상고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은행원이 되는 데 실패했어요. 처음 겪는 실패에 마음은 아팠지만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중앙대 경영학과에 왔어요. 그런데 고등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이 회계사가 되는 데 필요한 지식과 맞닿아 있더라고요. 자연스레 회계사를 꿈꾸게 됐고 두 번의 실패는 없다는 생각으로 4년 내내 도서관에서만 있던 공부벌레였죠.”

  -모범생이었다.
  “좋게 말하면 모범생이고 현실적으로 말하면 대학의 낭만을 모르던 학생이죠.(웃음)”

  -중앙대에 대한 추억은 도서관이 전부인가.
  “그렇죠. 그리고 중대신문을 즐겨 읽었던 기억도 있어요.”

  -정말인가.
  “학교 신문이니까 당연히 읽었죠. 공부하면서도 틈틈이 중대신문은 챙겨 봤답니다. 종종 기고도 했었어요.”

  -어떤 내용이었나. 
  “시사하는 바가 큰 글은 아니었어요.(웃음) 농촌봉사활동에 관한 글이었는데 70년대 중대신문에는 농활에 관한 기사나 체험기가 많았거든요. 아무래도 저희 집안이 농사를 짓다 보니까. ‘난 일상이 농활이다!’ 이런 푸념이 담긴 글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대기업의 재무관리, 판매정책, 경영전략 등을 관리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만큼 남다른 경제관념을 지녔을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제 자산관리는 아내가 도맡아 해요. 전 비교적으로 보수적인 경제관념을 지니고 있긴 해요.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건 직업윤리에 반하는 것이라서 조심스럽죠. 그리고 삼정에서 감사하는 기업에는 개인적인 투자가 금지돼 있답니다. 물론 개인자산관리 할 시간도 없고요. 회사 사무실에서 딴짓하면 되겠어요? 떼돈 벌고 싶으면 퇴사해야죠.(웃음)” 

  -중앙대 후배들은 회계를 필수교양으로 공부한다.
  “아무래도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니까요. 돈의 힘을 무시할 수 없죠.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굴러가는지 아는 것은 중요한 정보랍니다. 여러분 잘 배워 두세요.(웃음)”

  -간혹 회계의 필요성을 못 느끼기는 이들도 있다.
  “회계는 전공의 연계성에 상관없이 누구나 배워야 하는 학문이에요. 돈이 경영학을 배운 사람들만 쓰는 게 아니잖아요. 예술을 하는 사람과 기계를 만지는 사람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까지. 누구나 돈을 만들고 사용하죠. 물론 회계학을 전공으로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생소한 언어이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지금 공부해 놓으면 도움 될 겁니다.”

  -회계사를 고용하면 되지 않나.
  “물론 그러면 되겠지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남이 가져갈 위험이 있어요. 자신이 가진 물건이나 능력의 가치는 얼마인지 파악하지 못하다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잖아요. 일찍이 회계를 배우고 숫자 감각을 익힌다면 자기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보호할 수 있답니다. 또한 세금 문제에 대한 고민이나 의문점도 쉽게 해결할 수 있고요.” 

  -회계 분야에도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렸다.
  “전 회계의 역할을 두 가지로 봅니다. 먼저 ‘회계를 한다’는 의미인 Accounting이 있어요. 보통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일이죠. 나머지 하나 Auditing는 회계를 감사하는 거예요. AI의 발달로 어카운팅을 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회계감사는 AI가 할 수 없어요.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고 투자해야 하는 데 컴퓨터로 작성한다면 쉽게 조작할 가능성이 커지잖아요. 기업에서 조작했는지 안 했는지 감시하는 건 회계사의 몫이랍니다. 70,80년대에는 회계할 때 주판을 사용했어요. 그러다 기술의 발달로 컴퓨터를 사용하게 됐죠. 그러나 예전에도 지금도 감사는 회계사가 했답니다. 그러니까 미래에 아무리 AI를 이용해 회계할지라도 회계사라는 직업이 없어지진 않을 거예요. CCTV가 발달했다고 한들 경찰이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에요.”

  -분식회계로 경제가 휘청하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음. 분식회계의 목적은 기업이 투자를 받기 위해 만드는 거잖아요. 뻥튀기한 재무제표로 주가를 올리고 투자를 받는 등 순간적인 이득을 볼 수는 있죠. 그런데 사실이 밝혀지고 나면 주가와 투자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기업에 대한 신뢰 자체에 금이 가게 될 겁니다. 그러다가 회사가 부도 나기도 하고요. 결국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더 큰 거시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거죠. 분식회계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하면 별수 있나요? 교도소 가야죠.(웃음)”

  -그렇다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나.
  “음. 무엇보다 회계사가 더 꼼꼼하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식회계가 없어지면 좋겠지만 제 생각에는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사실 회계 감사라는 것도 부정분식을 했을 거란 전제하에 하는 거잖아요. 사업할 수 있는 경제적 역량이 부족하다면 하지 말아야지. 억지로 없는 걸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되는데 말이죠.”

  -단호하다. 회계사는 기업의 파수꾼이라는 말이 있던데.
  “아니에요. 회계사에게 가장 필요 되는 덕목은 독립성인걸요. 아무리 기업에서 청탁하고 강요한다고 해서 회계사의 직업윤리를 배반할 순 없죠. 그리고 워낙 감정을 배제하고 관리가 철저한 직업이랍니다. 심지어 ‘회계사에게는 돈 빌리는 사람은 바보다’는 말도 있는 걸요.(웃음)” 

  이창수 고문은 지금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고 한다. “제가 사원, 부장, 상무…. 등을 역임하고 상근고문이 되기까지 40년이 흘렀네요. 언젠가는 순리에 따라 상근고문의 자리에서도 내려오게 되겠죠. 그 날이 와도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요. 운동하고 여행을 다니는 것도 행복한 노후 생활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중앙대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답니다. 나이가 들어 다시 공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후배 교수님들에게 물어가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교수님들이 후배인가.(웃음)
  “그렇죠. 72학번이다 보니까 경영학과 교수님들이 80, 84 등 대부분 후배님들이죠. 이런 말 해도 될는지 모르겠는데 김창수 총장님도 제겐 후배랍니다(웃음)”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여러분은 자랑스러운 중앙인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꾸지 못한다고들 하잖아요. 중앙인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동문과 함께 나아가면 좋겠어요. 훌륭한 선배들을 좌표로 삼고 동문과 소통하고 상부상조하면서 단결해 함께 나아 간다면 더 멀리 그리고 더 높이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중앙대는 제 분신이죠. 총동창회 수석부회장, 경영경제대학 초대회장을 맡으며 동문과 끈끈한 유대감이 생겼어요. 후배들과도 의미 있는 시간을 많이 보냈고요. 70년대에 중앙대는 여느 대학에도 밀리지 않는 명문 사학이었고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후배들이 중앙인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더욱 키울 수 있도록 중앙대의 발전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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