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자연스러운 것
인정하고 민주주의 이룩해야

경제·행정권력 견제할
시민권력 키워야 한다
 
지난달 31일 피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는 주요 화두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작동할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샤츠슈나이더는 기존 학설을 제치고 새로운 주장을 폈다. 지난 31일 오후 6시 302관(대학원) 301호에서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이 그의 혁신적인 이론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 박상훈 학교장이 샤츠슈나이더의 민주주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원을 찾아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찾곤 한다. 실제로 민주주의(demokratia)라는 단어 자체가 고대 그리스에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말이 영어(democracy)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말에 이르러서부터다. 하지만 박상훈 학교장은 제도 측면에서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현대 민주주의는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에선 갈등이 인정되지 않는다. 갈등 없는 완전한 사회를 꿈꾼다. 이러한 제도로 국가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선 국가 크기부터 작아야 한다. 개인과 전체가 갈등 없는 사회를 작은 국가를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 아테네 민주주의의 이상(理想)이다.
 
  박상훈 학교장은 현대 민주주의는 아테네보다 로마 공화주의에 가깝다고 말한다. 로마 정치관의 전제는 인간 사회는 이해관계, 감정, 열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로마 공화정은 갈등을 부정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봤다. 이러한 정치관은 집정관, 원로원, 호민관 세 계급이 서로 견제하며 국가의 균형을 맞추는 형태로 나타났다.
 
  하지만 로마 공화정도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갈등을 자연스러운 것이라 보긴 했지만 종국에 정치의 방향이 갈등을 줄이는 것에 목표를 두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갈등을 줄이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그보단 갈등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민주주의는 힘과 힘의 대결일까
  이러한 현대 민주주의 이론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이가 로버트 앨런 달 교수(Robert Alan Dahl)다. 그는 민주주의가 수많은 사람들의 힘겨루기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아래 이뤄지는 정치 행위는 수십만 개 사회집단의 힘이 뭉친 ‘압력 정치’라는 것이다. 이러한 힘 겨루기의 결과는 공공정책으로 나타난다. 압력정치에선 더 큰 압력 행사할 수 있는 이가 좋은 결과를 얻는다.
 
  이러한 로버트 달 교수의 주장엔 두 가지 비판이 가해진다. 첫 번째 비판은 압력 정치의 형태로 민주주의가 이뤄진다면 그 결과는 사회집단 중에서도 상층부에 유리하게 집중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 민주주의의 애초 목적과 상반된다.
 
  두 번째 비판은 사회에서 목소리가 큰 상층부는 애초에 정치 영역이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 문제가 해결되길 원한다는 것이다. 모든 영역에 있어서 정부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것이 대표 사례다. 상층부는 그들의 문제가 정치 영역에서 다뤄지길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정부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정부가 전지전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세계가 살아가기에 위험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중략)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간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사적 갈등에서는 강자들이 승리하는 반면 공적 영역에서는 약자들이 자기방어를 위해 세력을 규합한다는 것이다”
절반의 인민주권 中에서
 
  민주주의는 갈등 그 자체다
  샤츠슈나이더는 갈등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민주주의의 관건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갈등의 사회화’를 강조한다. 개인 간, 집단 간 이해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민간의 영역에서 정치 영역으로 올라와야 한다는 것이다.
 
  샤츠슈나이더는 갈등이 정치 영역에서 다뤄질 때 약자를 위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회적 강자와 경쟁해야 하는 약자는 갈등을 정치적으로 다뤄야만 그들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갈등이 쪼개지고 그 원인을 개인에게서만 찾으려고 할 때 민주주의는 퇴색한다.
 
  약자를 위한 정치적 조직
  샤츠슈나이더는 약자를 위한 민주주의의 또 다른 요소로 ‘조직’을 강조한다. 갈등을 정치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직도 약자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샤츠슈나이더는 조직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조직이 없으면 약자들은 그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조직이 아니라 개인으로 참여하는 정치는 약자에겐 문턱이 높다. 참여 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개인이 모두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개개인의 생각을 담는 여론조사를 경계하기도 한다. 사회집단들이 특정화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라 여론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샤츠슈나이더는 시민운동의 한계를 지적한다. 좁은 갈등을 다루기 때문에 문제의식까지 좁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시민운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참여가 줄기 때문에 전문가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는 결국 다시 전문가에게 유리한, 상층편향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샤츠슈나이더는 비정치적 시민집단보다는 정치적 시민집단, 즉 정당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시민집단의 역할이 커야 사회가 약자를 위한 변화를 꾀하기 때문이다.
 
  정당은 약자를 대변한다
  갈등을 정치 영역에서 다루는 데 필요한 것이 정당이다. 샤츠슈나이더는 정당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민주주의 중심에 정당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주주의에서 정당정치가 원활하지 않다면 민주주의는 허망한 약속에 불과하다.
 
  정당의 가장 고전적인 정의는 ‘조직화된 사회적 의견’이다. 비슷한 정치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리는 단체이다. 현대 사회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이뤄지기 힘들다. 아테네 사회에 비해 그 크기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정당은 시민을 대신해 싸운다. 그래야만 사적 영역으로 치부된 문제가 평화적이고 정의롭게 해결된다. 또한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을 더 넓은 정치적 가치로 묶어 연대시킨다.

“정당은 자신보다 작은 조직이 갖고 있는 많은 특질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그들 나름의 압도적인 자산 한 가지를 보유하고 있다. (중략) 이 체제에서 군중을 이루는 각각의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들에게 주어진 대안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당은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는 방식을 통해 이들을 조직한다.”
절반의 인민주권 中
 
  인용문에서 살펴볼 수 있듯 샤츠슈나이더는 정당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모든 갈등에 정당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정당의 역할은 파편화된 이해관계를 공통된 거대한 갈등으로 모으는 것이다. 샤츠슈나이더는 좋은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가 잘못했을 때 잘못을 물을 수 있는 책임정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다원주의의 천국에서 울려퍼지는 합창 속에는 사회 상층계급들의 악센트가 더 크게 들릴 수밖에 없다”는 그의 말은 이미 유명하다.
 
  미국과 한국의 불평등
  권력은 크게 경제권력과 행정권력 그리고 이에 대비하는 시민권력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권력 구조는 로마의 그것과 비슷하게 다른 권력을 향한 견제를 통해 사회 균형을 맞춘다. 박상훈 학교장은 이러한 균형이 무너진 예를 미국과 한국에서 찾았다.
 
  미국이 농업자본주의에 근간하던 때엔 지주와 노예가 존재했다. 박상훈 학교장은 오히려 그 당시가 현재에 비해 더 평등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 사회과학 분야 전문가들은 미국 공공정책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이 경제권력이라 합의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경제권력이 다른 두 권력에 비해 비대해졌기 때문에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엔 행정권력이 다른 권력에 비해 크다. 관료제가 지금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방관했다. 이를 다시 검찰 행정권력이 심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상훈 학교장은 경제권력과 행정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민권력을 크게 조직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한다.
 
“누군가 대신해서 공적 영역에서 싸워줘야 합니다. 정치적인 것을 열등하게 보고 사회 운동만을 좋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중요한 문제들은 갈등과 욕설 속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