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 걸기’는 어떤 일이나 형상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거나 훼방을 놓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번학기 기획부는 불편함을 당연시하는 우리 사회에 딴지를 걸어보려 합니다. 세 번째 딴지는 바로 ‘소수자의 성’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성욕은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욕구를 넘어 하나의 권리로서 자리매김했는데요. 대표적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은 경제적·사회적·신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보장받을 수 있는 기본권의 성격을 가집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이런 당연한 권리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빼앗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청소년과 장애인 입니다. 모두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성적 권리를 빼앗긴 존재들, 그리고 그들에게 성욕을 억압하는 사회에 딴지를 걸어봤습니다.
 
 
 
억압받는 청소년
순수를 강요당하다
 
“아니요, 저는 못 할 것 같아요. 왜인지 죄짓는 기분이 드는걸요.” 김찬비 학생(안서중 3)은 성교육 시간에 성관계는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배웠다. 정가인 학생(안서중 3)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그냥 하지 말라고 했어요. 성인이 돼야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우리 사회는 청소년이 성인과 같이 성숙한 발달 단계에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모순을 보인다. 청소년에게 성은 권리일까 금기일까.

  그들은 왜 우물에 들어갔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서울시청소년문화연구조사」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 2013)에서 성관계 가능 여부를 묻는 질문에 답변자 중 49.3%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16.8%라는 긍정적인 반응에 비해 약 3배 이상 많은 수치다. ‘성에 대한 이야기가 쑥스럽냐’는 질문에도 그렇다는 반응이 그렇지 않다는 반응보다 16.1%p 더 많았다. 이렇듯 대다수의 초등·중학교 학생들이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쑥스럽고 숨겨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김용현 학생(진성고 2) 또한 성교육 시간에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고 배웠다. 하지만 청소년은 본능적 충동이 강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만 19세를 기준으로 청소년을 성인과 완벽하게 구분할 수 있는 걸까요? 제가 성인이 되자마자 완벽하게 이성적인 인간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대다수 청소년들이 성에 관한 사회의 논리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사회의 인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청소년은 스스로 성에 대한 생각을 가질 수 없다. 사회가 그런 청소년을 ‘발랑 까진 애’로 여기며 관련한 논의를 묵살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고 성적 호기심을 억압하는 사회구조는 ‘보호’를 명목으로 청소년의 피지배적 위치를 고착화하기 위한 것에서 비롯한다. “현 사회는 청소년을 가족과 학교 안에서 감독받고 통제당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존재로 여기는 시스템으로 운영돼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공현 활동가는 사회가 청소년을 주체적인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소년이 기존의 존재가 아닌 자기결정권을 가진 존재가 되면 사회는 시스템상의 균열이 일어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부장적 풍토 속 약자의 위치인 청소년이 많은 권리를 지킬 수 없다는 것도 큰 이유다. 남성지배구조인 가부장제는 성의 재생산 기능을 통해 존속된다. “가부장제는 자녀출산과 손쉬운 지배구조 형성을 위해 강제적 이성애를 강요해요. 그래서 노인이나 동성을 비롯해 재생산 기능이 없는 아동·청소년의 성은 억압받죠.” 이하영 교수(교양학부대학)는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서 성적으로 취약한 아동·청소년이 성인들로부터 쉽게 착취당할 수 있기 때문에 강간이나 성매매 문제 등이 야기될 수 있다며 우려했다.

  금지를 가르치는 학교
  청소년 성에 억압적인 현재의 사회구조는 교육현장에서도 드러난다. 김상환 학생(진성고 2)은 사랑을 ‘나쁜 행동’이라 규정하는 교칙에 당황한 경험을 토로했다. “이성 친구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는데 주의를 받은 적이 있어요. 이성교제는 당연히 금지죠.” 서울시 교육청에서 제공한 ‘2009~2013년 이성교제 차별현황’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의 고등학교 중 51.2%는 여전히 학생의 이성교제를 규제하는 학칙을 갖고 있다. 실례로 서울 당곡중학교는 이성과 자발적인 성관계를 가지면 등교정지를 당한다. 이는 성폭력(성희롱 기준)보다 더 높은 징계수위다.

  성교육 시간이 되면 잠을 자는 학생이 많아지는 교실에서도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김의주 학생(서울과기대 디자인학과)은 성교육의 내용이 일괄적이었다고 회상했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은 항상 원론적인 이야기만 해요. 가치관 확립을 위한 실질적인 내용은 없죠.” 성폭력은 나쁘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아기가 만들어진다는 내용의 유치한 애니메이션으로는 건강한 청소년의 성 의식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이하영 교수는 청소년에게 필요한 교육은 생물학적 내용이 아니라고 말한다. “단순히 생식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려주는 게 도움이 되진 않아요.” 공현 활동가도 대부분의 성교육이 청소년들의 현실적 고민을 아우르지 못하는 점을 지적한다. “현재 성교육은 운동으로 성욕을 풀라거나 임신중절에 관한 과도한 공포심을 조장하며 잘못된 과학적 편견을 전하고 있어요.”

  벼랑 끝에 내몰린 청소년
  실용성 없는 성교육은 청소년이 다른 방법을 통해 성 지식을 얻을 수밖에 없게끔 내몰았다. 청소년 성교육을 주제로 한 ‘2013 서울시민 100인 원탁토론’에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고등학생 1229명 중 40.8%는 손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인터넷을 통해 성 지식을 습득하고 있었다. 이는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보다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청소년 보호법」에서 규정하는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인터넷이 올바른 성 지식을 제공한다고 보긴 어렵다. 기준 정의에 쓰이는 ‘선정적인 것’,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 ‘현저히’, ‘명백히’ 등의 단어들은 자의적인 판단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인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2011년 4월 28일에는 청소년에게 일반형 콘돔과 초박형 콘돔을 제외한 모든 특수 콘돔의 판매를 금지한다는 고시가 발표됐다. 박소현 학생(연세대 사회복지학과)은 이에 의아함을 표했다. “청소년에게 성행위에 도움을 주는 도구를 금지한 건 잘못됐어요. 청소년이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고 음란하다고 판단한 거잖아요.”

  청소년도 인간이기에 당연히 성은 삶의 일부에 포함돼야 한다. 하지만 사회는 이에 대해 성과 관련한 실질적인 정보를 차단하고 억압했다. 이는 결국 성에 대한 잘못된 지식의 보급을 촉진하고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킨다. 실제로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가 주관한 토론회에서는 성폭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게 된 원인으로 공론화되지 못하는 성문화가 거론됐다.

  이하영 교수 또한 사회구조적으로 강요된 성에 대한 무지는 청소년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고 정확한 정보를 차단해 순수함을 유지시키겠다는 의도는 오히려 청소년이 스스로 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왜곡된 성 인식을 가질 확률이 높아지고,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적절한 대처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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