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림이 머무는 곳, 버스정류장
 
기다림 속에는 참 다양한 감정이 있습니다. 기대도 있고 설렘도 있고 한 켠으로 느껴지는 애틋함도 있죠. 이 감정들은 기다리는 동안에만 느낄 수 있기에 기다림은 그 자체로 특별합니다. 기대와 설렘, 애틋함을 머금은 기다림이 머무르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정류장이죠. 이번주 ‘캠퍼스를 거닐며’에서는 정류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 5511버스 최방석 기사님(64)

"긴 기다림이 될 수도 짧은 기다림이 될 수도 있는 거지" 


  “우리 노선이 서울 시내버스 회사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사람이 많아. 한 대당 하루에 1400명이 탈 정도니 말 다했지. 한 번에 다 태우고 싶은데 못 태우고 갈 때도 있어. 우리 버스 기사들은 승객들을 기다리게 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

  -기사님께서 기다릴 때는 없나요?

  “종점에서 기다리지. 출발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와서 승객들을 기다리곤 해. 지하철에서 환승하는 승객들이 종점에 많거든.”

  -버스 기사의 하루가 궁금해요.

  “새벽반은 5시 30분 첫차 이후로 8시간을, 오후반은 막차 시간까지 8시간을 근무해. 한 바퀴 운행하면 잠깐 쉬고. 다시 출발하고. 그렇게 하루가 가지.”

  -집에 늦게 들어가시면 가족분들은 다 주무시고 계세요?

  “자고 있지. 아침에 나올 때도 다 자고 있고. 깰까 봐 조용히 나올 때가 많아. 이 생활도 오래 하다 보니 다 습관이 되더라고.”

  -그 잠깐 틈에 쉴 시간이 있긴 한가요.
  “오래는 못 쉬고 회차할 때 5분 정도 쉴 수 있어. 바쁠 땐 못 쉬기도 하지.”

  -그나마 식사시간에 조금 쉬시려나요.

  “아니, 25분 만에 제대로 어떻게 쉬겠어. 주어진 25분 동안 학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데, 먹고 올라오다 보면 눈 깜짝할 새 시간이 지나있더라고. 담배 한 대 피울 시간도 없이 말이야.”

  -기사님께서 하루 중에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에요?

  “퇴근 시간.(웃음) 하루가 무사히 끝났단 마음에,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건 내게 힘이 되는 기다림이지.”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시나요?

  “버스가 일찍 도착했다고 승객들이 생각해줄 때 기분이 좋지. 승객들이 기분 좋아하니까 나도 덩달아
아. 그런데 사실 일찍 도착한 건 아니야. 버스는 대부분 정시에 도착하거든.”

  -정시에 도착했는데 빠르게 느껴지다니요?

  “추운 날씨가 되면 5분을 기다려도 10분 기다렸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겠지만, 버스가 빨리 온 덕분에 따뜻하게 집에 갈 수 있다며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 사실 버스는 항상 정각에 도착하는데 말이야. 마음에 따라 짧은 기다림이 될 수도, 긴 기다림이 될 수도 있나 봐.(웃음)” 
 

 

▲ 버스를 기다리던 박상훈 학생(글로벌금융전공 3)

"버스를 타고 가도 제가 더 먼저 도착해요"


  “버스를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멘토링을 가는 날이거든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아니요. 이렇게 버스를 타고 가도 제가 더 먼저 도착해요. 가서 아이들이 고등학교가 끝나고 올 때까지 기다리죠.”
 
  -학생을 기다리면서 어떤 생각을 하세요?

  “오늘도 공부할게 산더미인데 또 늦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서죠. 제가 맡은 친구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거든요.(웃음)”

  -저런. 그 친구도 기다리는 입장이 돼봐야 알 텐데요.

  “저는 이해해요. 저도 사실 누군가를 기다리게 한 적이 많거든요. 추석이나 설날에 고향에 내려갈 때요. 부모님께서는 항상 제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세요. ‘기차 탔니?’, ‘집에 오면 몇 시니?’라고 먼저 연락해주시죠.”

  -그때의 기분은 어떠셨나요?
  “서울에는 집이 없잖아요. 반대로 고향엔 절 항상 기다려주는 집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해요.”
 
 
 
▲ 김떡순 포장마차 박진원 사장님(61)

"맛있게 잘 먹었다고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녁 시간 이후를 기다려. 학생들이 몰리면 재밌거든. 장사하는 사람들은 별거 없어. 그냥 학생들을 기다리지. 학생들만 보면 항상 좋아.”

  -학생들과 추억도 많겠어요.
  “아기 가지고 나서 생각난다고 온 학생도 있었다? 인천으로 시집갔대. 배부른 채로 오더라고. 그러면 너무너무 좋지.”

  -얼굴이 기억나셨어요?

  “처음에는 기억 못 했는데 이야기 하다 보면 생각이 나. ‘그때 그러셨잖아요. 어쩌고저쩌고’ 그러면 기억이 나. 취업해서 고맙다고 다시 오는 애들도 있었어. 우리 집 떡볶이 때문에 취업이 잘 됐다나 뭐라나.(웃음)”

  -기분 좋으셨겠어요.

  “얼마나 좋은 이야기야. 우리 가게 음식을 먹고 노력해서 취업까지 됐다니. 게다가 다시 와서 인사까지 해주니까 정말 고맙지.”

  -학생들에게 어떤 가게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학생 시절 추억이 담긴 가게. 맛있게 잘 먹었다고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졸업하고 나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한 번쯤 다시 오고 싶은 가게. 이 자리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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