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부문

이 시대 뷰티풀엑스의 탄생기 中
-박민규와 황정은의 소설

자폭과 충돌을 통해 그들의 변이가 이루어지는 순간 이 시대의 뷰티풀 엑스가 탄생한다. 착취에 최적화된 다양한 혜택과 가망 없는 감정들로 공격하는 세계를 향해 아름다운 변종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다양한 버전으로 대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아프지 않을”(『파반느』, 378쪽) 수 있다는 인간의 용기가 기적을 이루어낸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한 번 삶을 살아내는 인간들이야말로 날마다 리부트(reboot)되는 주체이자 이 시대의 아름다운 변종들이다. 
 
수상 소감이라고 하면 보통 ‘아름다운 밤이에요’로 끝나는, 감동에 찬 목소리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의 등단 소감은 평이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려니 했어요. 시간문제지 언젠가는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간단한 대답이 결코 거만하지 않게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확신에 찬 눈빛 때문이었다.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걷는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봤다.
 
-2011년부터 최종심사평에 오르다 이번에 등단했다. 초조하진 않았나.
“주변 사람들이 초조해했지, 저는 오히려 좋았어요. 처음 지원해본 작품부터 최종심사평에 올랐거든요. 최종심사평에 올랐다는 건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는 거잖아요? 덕분에 이 길이 내 길이 맞다고 확신했죠. 어떤 작가든 습작기를 거치잖아요. 5~6년이면 운이 좋은 편이죠.”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전창식 방송작가가 저희 조부님이세요.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집안 분위기 자체가 문학과 가까웠어요. 덕분에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죠. 그렇다 해도 고등학생 때까진 백일장조차 제대로 나가본 적 없어요. 본격적으로 글을 쓴 건 대학에 오고 나서부터였죠. 그냥 책이 좋아서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첫 수업을 듣는 순간부터 이 학문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더라고요.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됐죠.”
 
-문학을 좋아하셨는데, 왜 ‘평론’을 쓰게 됐나.
“평론은 가치 있는 일을 찾아내고 그것에 합당한 이유를 부여하고 또 증명하는 일이에요.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일이죠. 얼마나 매력적이에요! 본격적으로 평론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건 박철화 교수님 덕분이었어요. 석사 논문을 쓸 때 왜 논문에 평론을 쓰냐고 자주 혼났죠. 그런데 힘겹게 논문을 끝낸 후 교수님께서 ‘너는 꼭 평론을 써야 되겠구나’라고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그때 기분이 너무 좋았죠.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 같았어요.(웃음)”
 
-글을 꾸준히 쓰는 것 말고 등단을 위한 노력이 따로 있었나.
“물론 습작이 중요하긴 하죠. 하지만 습작 말고도 여러 가지 훈련이 필요해요. 배우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의식해 연기에 활용하는 것처럼 글 쓰는 사람이라면 마치 훈련하듯 항상 주변을 의식하고 소재 거릴 생각해야 하죠. 책도 이것저것 읽어두고요. 게임을 하면 경험치가 쌓이잖아요? 마찬가지로 계속 훈련하다 보면 어느 순간 딱 개요가 보이더라고요.”
 
-보통 어디서 영감을 얻나.
“일주일 중에 적어도 하루쯤은 마음껏 자거나, 뒹굴거나,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몽상의 시간이죠. 저는 많이 걸었어요. 제겐 산책이 제일 맞더라고요.”
 
-이번에 등단한 평론도 그렇게 영감을 얻었나.
“이번 평론은 영화 <엑스맨>을 보고 영감을 얻었어요. 엑스맨은 방사능으로 인해 돌연변이가 된 이들의 이야기죠. 보면서 돌연변이를 만드는, 현대 사회 속 ‘방사능’은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그러니까 돈이 생각나더라고요. 자본주의 하니 자연스럽게 박민규 작가와 황정은 작가가 떠올랐죠. 그래서 그 둘의 소설을 엮어서 신자본주의인 이 시대의 변종 ‘뷰티풀 엑스’를 쓰게 됐어요.”
 
-변종의 이름이 특이하다. 왜 ‘뷰티풀’이냐.
“뷰티풀 엑스는 자폭할 줄 아는 속물이면서 온전한 괴물이 될 수 없는 슬픈 괴물이에요. 신자본주의의 생존경쟁 아래 인간은 속물인 괴물이 돼야만 했죠. 하지만 자의식을 가진 이들은 속물의 세계에 완전히 동화될 수 없어요. 그 와중에도 인간적인 가치를 유지하려 노력하죠. 이 속물의 시대에서 인간 고유의 가치를 지키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뷰티풀 엑스’라고 이름 붙였죠.”
 
-등단하고서 부담감은 없었나.
“등단하고 첫 원고를 쓸 땐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에 장염까지 걸렸어요.(웃음) 이전엔 아무리 글을 써도 스트레스 때문에 장염에 걸린 적은 없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한번 장염까지 걸리고 나니 감이 잡히더라고요. 지금은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즐기면서 쓰려고요.”
 
-즐기면서 쓰는 글이라.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나.
“‘엑스맨’과 ‘변종’이란 키워드를 잡아서 쓴 이번 평론처럼 컨셉이 확고한 글이 좋아요. 거대한 비유로 이뤄진 평론을 쓰고 싶고 그게 제 스타일로 굳어졌으면 좋겠어요. 누가 봐도 ‘이건 전영규 글이구나’ 싶은 거요.(웃음) 정말 큰 꿈을 말한다면 문예사조의 한 점을 찍고 싶어요. 어떤 작품이 그 시대의 한 정점이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등단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끄러워하거나 부러워하지 말 것. 가장 쉬운 말이지만 가장 힘든 거라고 생각해요. 글 쓰는 사람들에겐 특히나 그렇죠. 아무래도 취직하는 것보단 삶이 불안정하니까요. 그런 불안감에 초연해져야 해요. 누가 뭐라고 하든 부끄러워하지 말고, 누가 어떻게 살든 부러워하지 않아야 하죠. 스스로를 믿고 꾸준히 밀고 나가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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