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온대 中


예전에 나는 소설이나 에세이들을 자주 읽었다. 브론테 자매, 울프, 뒤라스, 손택 같은, 아직 자기만의 방이 없었거나 이제 막 생겼던 시대의 서양 여성 작가들이었다. 손택이 젊었을 때 쓴 문학평론집의 경우 이해하지 못할 말들이 대부분이라 지금은 레비 스트로스라는 인류학자가 쓴 기행문을 다룬 대목만이 기억에 남는다. 서구 문명에 밀려 사라져가는 남미의 선사부족을 다룬 그 책을 두고 손택은 ‘슬픈 열대’라는 제목부터 아주 억제된 표현이라고 했다. 그들은 슬픈 정도가 아니라 고통 속에 신음한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나는 아파트 정문 부스에서 방문 차량을 맞아 방명록을 작성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스무살 이후로 산 곳만 해도 열 손가락을 다 채울걸요.” 소설의 배경인 이문동과 화양동도 그가 살았던 동네 중 하나다. 그는 그 동네를 떠올리며 무엇보다 글을 썼다. 그에겐 글밖에 없었다.
 
-등단을 준비한 지 얼마나 됐나.
“1년이 채 안 된 것 같아요.”
 
-등단 준비 기간치고는 짧은 편이다. 어떻게 준비했나.
“저는 개작(改作)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보통 등단을 준비할 때면 신작을 쓰더라고요. 떨어지면 다시 신작을 쓰고. 전 그것보다 글을 다듬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을 두고 습작을 묵혔죠. 대여섯 번은 개작했던 것 같아요. 당연히 퇴고도 셀 수 없이 했어요.”
 
-왜 하필 소설을 쓰게 됐나.
“몇 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변명을 위한 소설 쓰기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어요. 지금은 생각이 달라요. 사람마다 삶을 소비하는 방식이 있잖아요. 대화를 나누거나 일기를 쓰거나 영화를 보거나. 제 경우 그 방식이 소설이었던 거죠. 어릴 때 접할 수 있는 게 책뿐이었거든요. 시골에 살았는데, 그렇다 보니 읽을 수 있던 게 백과사전밖에 없었어요.(웃음) 자연히 책에 관심이 생겼죠. 일종의 생존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등단작인 「슬픈 온대」의 제목은 어디서 유래했나.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에서 따왔어요. 인류학자인 레비 스트로스가 브라질 오지를 탐험하면서 쓴 책인데 정말 슬픈 내용을 담고 있죠. 수잔 손택이 자신의 비평집에서 ‘슬퍼서 질식할 지경’이라고 표현할 정도로요. 이 책을 읽은 게 2012년이었는데, 전 그때 아파트 주차장 경비를 하고 있었어요. 책을 읽는데 너무 슬프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이 슬픔도 대상화돼서 소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슬픈 열대』도 어쨌든 서구의 학자가 외지인을 바라본 시선이니까요. 대상화가 이뤄진 거죠. 슬픔까지도.”
 
-대상화된 슬픔은 무엇인가.
“슬픔은 소비하기 좋은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우린 슬픔을 소비하며 우리의 슬픔을 풀어내요. 그렇게 가난은 슬픔을 위해 대상화되죠. 대상화되는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어요. 사실 저도 그에 포함되죠. 결론적으론 절 객관적으로 보고 싶었어요.”
 
-소설 속 주인공 ‘씬’도 주차장 경비 일을 했다. 「슬픈 온대」는 자전적인 느낌이 강한 소설인가.
“자전적인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야기 재료는 제가 경험한 ‘제 것’이에요. 전 모르는 소재는 쓰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 소설은 명백한 허구에요. 무엇보다 전 여자가 아니니까요.”

-화자를 여성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제가 쓰는 소설엔 꼭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나와요. 그러면서 고민이 들었어요. 남자가 바라보는 여자, 남성 판타지에 갇힌 여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소비만 하는 것은 아닌가. 이건 시대착오적인 시선이죠. 이런 시선에서 벗어나서 여성을 좀 더 이해하고 싶었어요. 근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결국 제가 대상화한 여자가 주체인 척하고 소설에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회 고발성이 강한 소설이다. 소설관이 그러한가.
“사회 고발하고는 거리가 멀어요. 그렇게 보이는 건 제가 사회를 보는 시선이 어쩔 수 없이 소설에 담기기 때문이겠죠. 이 소설은 사회 고발보다도 소설을 쓰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에요. 실제로 작중에서도 소설을 쓰는 사람이 등장하죠.”
 
-소설 중간에 한 문장으로 한 문단을 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전 한국 소설보다 외국 소설을 즐겨 읽어요. 아무래도 번역본이다 보니 문장이 길죠. 전 그게 좋더라고요. 긴 문장은 무엇보다 ‘쓰는 맛’이 있다고 생각해요. 심사위원은 긴 문장 때문에 작품 선정에 고민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영화 속 롱 테이크(long-take) 기법과 같아요. 단 한 번의 컷 없이 쭉 따라가는 방식. 전 이게 소설에서도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살아남는 거죠. 1년이나 2년 안에 언제 묻힐지 모르니까요. 실제로 등단자 대부분이 3년 이내에 묻혀요. 더 이상은 발표할 지면을 찾을 수 없거나 각자 이유로 스스로 떨어져 나가죠.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보니 주목받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제 특색을 갈고 닦으려고요.”
 
-등단을 준비하는 중앙대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자기 검열이 심한 학생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느라 투고 자체를 잘 하지 않죠. 일단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해요. 난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 어디까지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이런 것들을 항상 고민해야 해요. 할 수 없기에 해야 하는 게 있고 할 수 있기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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