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의 본관점거 사태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이화여대에서부터 시작된 학생들의 농성은 고려대를 이어 최근의 서울대에서도 진행 중이다. 이 사태를 각 대학의 개별 사건으로 보기엔 학생들은 같은 방법으로 일관된 목소리를 외치고 있다. 바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불통’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동시에 선도적인 역할의 책임이 있는 대학 사회에서까지도 서로 마주할 수 없는 우리의 민낯이 드러났다. 점거하는 대학생은 왜 탄생한 것일까. 각 대학의 사건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대학의 구조적 문제를 살펴봤다.  
 
 
 
  귀를 닫은 대학본부
  울부짖는 학생사회
 
 
“누가 이 대학을 멈춰주세요. 제발 좀 멈춰주세요.” 지난 13일 서울대 60동(행정관, 이하 본관) 앞에서 학생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서울대 학생들은 날치기로 체결된 ‘서울대 시흥캠 조성을 위한 실시협약’의 철회를 위해 153일간의 본관점거를 진행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대학본부와의 협상 테이블이 아닌 무자비한 폭력과 감금이었다. 대학본부 직원과 청원경찰은 학생들을 집어던지고 물대포를 퍼부었다. 과연 대학본부는 본관점거를 강제적으로 해제할 만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을까. 최근 본관점거를 진행한 이화여대, 고려대, 서울대에서 답을 찾아봤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 아니다
  서울대 학생들은 시흥캠 설립 전면 철회를 위해 대학본부에 면담을 요청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자체적으로 수렴했다. 이 같은 학생들의 적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8월 22일, 실시협약은 체결됐다. 대학본부의 기습적인 실시협약 체결에 많은 학생들이 분노했다. 결국 당해 10월 10일 개최된 학생총회에서 1097명의 학생이 시흥캠 실시협약 철회를 위한 의견 개진의 수단으로 본관점거를 선택했다.
 
  서울대 본관점거의 이유는 대학본부의 기습적인 실시협약 때문만은 아니었다. 2011년 서울대 법인화부터 학생들과 일방적인 관계를 맺어 온 대학본부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고근형 서울대 본부점거본부 언론대응팀장(조선해양공학과)은 “서울대가 법인화된 이후부터 학생이 대학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며 “사실상 학생이 배제된 대학 행정에서 소통은 무의미해졌다”고 말했다. 법인체제의 특성상 대학 내 의사결정은 이사회를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곪아있던 불통의 고름이 터져 나온 것은 비단 서울대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24일부터 12월 23일까지 총 30일간 본관점거를 진행했던 고려대에서도 대학본부의 불통행정은 고질적인 문제였다. 고려대 이승준 총학생회장(심리학과)은 “그간 대학본부는 재수강 횟수 제한 등 학생과 관련한 학사제도를 논의 없이 통보했다”며 “그간의 불만이 미래대학을 기점으로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6일 고려대 대학본부가 ‘미래대학 발전 계획’을 발표한 이후부터 꾸준히 학생들의 반대가 쏟아졌다. 이에 대학본부는 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약속했다. 하지만 11월 2일 대학본부에서 ‘미래대학 설립안(설립안)’을 발표하기 이전까지도 약속했던 공청회는 없었다. 심지어 설립안에서 폐지가 결정된 자유전공학부는 발표 직전까지도 이를 모르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24일 고려대 학생들은 염재호 총장의 소통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러나 대학본부는 본관의 모든 문을 안에서 잠가 소통을 거부했다. 공공의 건물인 본관의 출입을 통제함으로써 학생들과 소통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드러낸 것이다. 대학본부의 태도에 분노한 학생들은 그 길로 본관을 점거하기에 이르렀다.
 
  세 대학 중 가장 먼저 본관점거에 들어선 이화여대 역시 행정 처리 과정에서 학생의 의견이 배제된 상황이었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당시 이화여대가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에 추가로 선정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도 지난해 7월 28일 새벽 이화여대 온라인 커뮤니티 ‘이화이언’에서 사업의 일환으로 신설되는 미래라이프 대학과 관련된 글이 게시되면서 학생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 있었다. 김아라 학생(이화여대 사학과)은 “관련 글을 보기 이전까지 사업의 존재 여부 조차 몰랐다”며 “학생들을 위한 사업이라면서 정작 학생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대학본부의 밀실 행정에 분노한 약 400명의 학생은 당일 자발적으로 모여 대학평의원회가 진행되는 본관으로 향했다. 학생들은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계획을 폐기할 것을 요구했지만 대학평의원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상으로 관련 대화가 이뤄지지 않자 학생들은 본관을 점거하기에 이르렀다. 

 
  여전한 불통 대학
  세 대학의 학생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대학본부에 의견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본부점거라는 수단을 취했다. 하지만 대학본부는 여전히 학생들을 억압할 뿐 소통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당시 본관점거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고려대 박세훈 전 총학생회장(정치외교학과)은 “본관점거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집어던지고 밀쳤다”며 “본관점거의 상징으로 걸어둔 플래카드를 밤중에 훼손하려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대학본부 역시 공권력의 투입을 통해 불통의 자세를 고수했다. 최경희 전 총장은 학생들에게 지난해 7월 30일 직접 만나 소통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약속한 정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총장이 아닌 1600여 명의 경찰이었다. 소통을 기대하던 학생들은 굳건한 불통을 맞이했다.
 
  김아라 학생은 “신성한 교육의 장에서 경찰과 학생들이 몸싸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대학본부가 학생을 학교의 주인이 아닌 그저 피교육자로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경찰을 막기 위해 맨몸으로 바리케이트를 만들었으나 결국 사지를 붙들린 채 밖으로 끌려 나왔다. 
 
  서울대 역시 학생들에 대한 대학본부의 억압이 존재했다. 본관점거 학생들에 의해 대학본부에서 시흥캠 반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을 사찰한 정황이 발견됐다. 또한 본부점거 학생들 29명에 대한 징계와 학생들이 점거하고 있는 본관 일부 층에 단전·단수 및 난방기 차단 등의 조치를 취하며 학생들을 압박했다.
 
  직접적인 폭력도 거리낌 없이 자행됐다. 지난 11일 약 400여 명의 대학본부 직원들이 사다리차를 동원해 본관에 침입했다. 학생들은 팔이 꺾인 채로 밖으로 끌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은 본관에 버티고 있는 학생들에게 소화전으로 만든 물대포를 발사했다. 고근형 언론대응팀장은 “당시 학생들이 신체적 고통을 호소했으나 직원들은 무자비하게 학생들을 끌어냈다”며 “학생들은 당시의 기억을 복기하는 것마저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심할 수 없는 이유
  본관점거 이후 28일이 지나고 고려대 대학본부는 미래대학 추진을 전면 철회했다. 이화여대 학생들 역시 86일간의 본부점거를 통해 최경희 전 총장의 사퇴와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폐지를 이뤄냈다. 대학의 일방적인 행정 처리가 꾸준히 자행돼 왔던 만큼 본관점거를 통해 학생들이 얻어낸 결과는 대학사회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학생들이 본관점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아직도 대학 내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박세훈 전 총학생회장은 기울어진 대학의 권력관계를 문제로 꼽았다. 박세훈 전 총학생회장은 “대학본부는 대학의 행정과 관련한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학생은 아무런 의결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권력을 가진 대학본부는 공식적으로 의결권이 없는 학생의 의견을 들을 의무가 없다. 때문에 선심 쓰듯이 진행되는 설명회나 공청회는 명분식 소통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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