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학기 기획부에서 직면한 학교 밖 세상은 아주 제대로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당연해서는 안 될 일들이 당연하게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죠. 지금까지 총 2번의 기획을 거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기획의 방향에 대해 생각하면서 혹은 취재를 하면서 수없이 많은 망치들이 제 머릿속의 얼음을 깨부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제1889호 중대신문에서 다뤘던 ‘신입생 환영 문화에 딴지걸기’를 취재하면서 권위주의적인 대학 문화의 이면엔 특정 구성원에 대한 ‘길들이기’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길들이기는 주로 선배가 후배를 순종적으로 만들어 집단에 잘 섞이도록 하기 위해 자행되는데요. 하지만 그 속에는 선후배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상하관계가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여장대회’가 있습니다. 여장대회는 여성을 제외한 남성들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선배들은 여성화된 남성 후배를 구경하면서 비웃고 남성 후배들이 흉내 내고 있는 여성이라는 존재를 희화화합니다.
 
  여성이 차별받는 남성중심주의적인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코드는 차별을 담고 있습니다. 과거 백인중심주의 사회에서 흑인이라는 코드가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남장을 했을 때는 하나도 웃기지 않지만 남성이 여장을 했을 때는 웃긴 일이 돼버리는 것이죠. 이는 현재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존재가 어떤 위치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사실은 기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해 경험했던 ‘선배를 웃겨라’에서 여장한 남성 동기들을 보며 깔깔댔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다수의 남성 동기들이 과장스럽게 ‘여성’스러운 척하며 선배들을 웃겼습니다.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조롱거리로 소비했던 것이죠.
 
  제1890호에 실린 ‘이력서에 딴지걸기’ 기획 역시 그렇습니다. 실제로 기자는 그동안 이력서가 구직자에게 어떤 정보를 요구하던지 간에 구직자는 마땅히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취재를 진행하면서 기업은 구직자에게 정보를 요구할 권리가 없고, 구직자도 기업에게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이력서에서 구직자의 직무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는 학력, 경력, 자격 및 어학 증명서 여부를 기재하는 항목뿐이었습니다. 그 외의 모든 항목은 비직무적인 요소를 묻는 질문이었죠. 이런 요소들은 개인정보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구직자에 대한 차별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불과 두 번의 기획을 거치면서 기자는 스스로가 예민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외쳤던 ‘병신샷’도 불편하게만 느껴집니다. ‘병신’이라는 어휘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같이 ‘병신샷’을 외치는 분위기가 상대에게는 억압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남들보다 예민하게 생각한다고 느끼게 된 시점부터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친구들에게서 ‘굳이, 그런 것 가지고 예민하게’라는 말을 들을 때면 주변을 살피게 되죠. ‘내가 너무 극성맞게 구는 걸까? 이건 당연한 건가?’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고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고민을 거듭해야만 어제보다 한 발짝 정도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JTBC의 손석희 앵커는 “문제의식이 있어야 문제가 발견되고, 문제를 발견해야 문제제기를 할 수 있고, 문제를 제기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죠. 세상은 늘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사람들에 의해 발전한다고 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당연하게 여기는 흐름에 딴지를 걸어보겠습니다. 그러다보면 모두가 편안할 수 있는 날이 오겠죠. 때문에 기자는 오늘도 한껏 예민해져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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