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한 칸의 약속
  • 이수빈 기자
  • 승인 2017.03.12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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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가위에 눌렸다. 까맣고 묵직한 무언가가 내 위로 올라왔다. 움직일 수 없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우연히 룸메이트가 뒤척였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가위에서 풀려났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짓누르는지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나는 학생기자다. 그래서 그날 밤 취재 사항에 알맞은 기사 방향을 고민해야 했고 기사를 통해 어떤 문제의식을 전할지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적고 있는 ‘뉴스 에필로그’에 어떤 생각을 담을지도 정해야 했다. 

  결국 나는 해가 뜰 때까지 고민을 마치지 못했다. ‘기자답고’도 ‘날카로운’, ‘뾰족한’ 기사를 써내고 싶었다. 그러나 의욕은 욕심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게 스트레스가 됐나 보다. 그래서 겨우 잠깐 잠든 새에 가위에 눌렸나 보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생각보다 우울했다. 학생기자가 되고 싶었던 처음의 마음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억울했다. 누구를 위해 며칠 밤을 지새우는 걸까. 어째서 밤에 가위에 눌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가 잘하고 있긴 한 걸까?’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끊임없이 밀려오는 책임감과 압박감에 계속 기사를 준비했다. 취재요청서를 보내고 답변이 오지 않아 취재처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 기획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기획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신 눈치였다. 이 기사를 왜 쓰고 싶은지, 무엇이 궁금해서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 ‘내 생각’을 신나게 설명했다. 돌아온 답변은 ‘그렇다면 생각대로 글을 적으세요’였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 내 감정을 호소하는 게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기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취재원에게 이번 기사를 통해 중앙대가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는지 설명했다. 이유 없는 ‘비판’이 아니라 이 기사를 통해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다고 담담하게 전달했다. 그러자 ‘기자님, 제 입장을 정리해 답변을 보내 드리겠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날 저녁 내가 문제를 제기한 부분이 학교 홈페이지에 반영돼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피드백을 보니 ‘내가 그렇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기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난 밤 날 짓눌렀던 가위는 학생기자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고민’을 멈추면 안 되는 사람이다. 누구보다 진지하게 내 역할을 위해 고민하던, 그래서 가위까지 눌려버린 내가 조금은 대견했다.

  한 신문사 동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나는 너무 의심과 고민이 많아. 그런데 그게 기자로서는 참 좋은 성격이야.” 이 말을 들었을 당시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서 고생하는 나의 성격이 조금 마음에 든다. 내가 골머리를 앓은 시간들이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로 돌아온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신문의 한 칸을 빌려 약속하고 싶다. 적어도 기자로 일하는 매 순간만큼은 고민을 멈추지 말자고. 정확한 사실과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전달하는 기자가 되기 위해 매일 밤 악몽을 꾸더라도 끊임없이 고민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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