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할 방법은 있다
개선은 공론화로부터
 
강요된 친목으로는
누구도 친해 질 수 없었다

어린아이와 숨바꼭질을 해보면 귀엽고도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은 온몸은 그대로 드러낸 채 자신의 눈을 손으로 가림으로써 숨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남들은 모를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오늘날 신입생을 맞이하는 재학생들의 시선에는 신입생들이 어린아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신입생의 눈만 살짝 가리면 악습이 환영 문화 속에 숨겨질 것이라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입생은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다행히 신입생은 숨겨진 악습을 찾아냈고 재학생은 눈을 가린 손을 거둘 용기를 냈다. 전통을 악습으로 규정하기까지 그들이 일으킨 변화는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은 환영 문화를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지 알아봤다.

  A급 ‘플랜B’
  모든 환영 악습은 오랜 시간 전통으로서 존재해왔다. 공동체의 전통은 집단의 유지를 위해 부분적으로 필요하지만 악습으로서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 김귀옥 교수(한성대 사회학과)는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대안에 대한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악의성이 없다거나 전통이라는 명분으로 인격권의 침해가 정당화되진 않아요.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분명히 있습니다.”

  실제로 학생사회에서는 본래의 악습을 대신할 새로운 환영 문화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표적으로 올해 사과대는 그동안 학과별 장기자랑을 위해 자행되던 신입생의 ‘예비스쿨’ 장기자랑 강제 참여를 금지했다. 사과대 박민형 학생회장(공공인재학부 4)은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는 강제 참여를 방지하기 위해 단대 차원에서 학과별로 공연 지원자를 모집해 운영하기로 정했다”고 말했다. “인터넷 설문조사를 통해 지원자를 모집했어요. 혹시나 강요하는 표현이 있을까봐 설문지 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죠.” 실제로 설문조사 양식에서 ‘예비스쿨 무대공연 참가 여부에 따른 불이익은 절대로 행해지지 않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라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행 이후 지난 해와 비교해 총공연 수가 대폭 줄었고 소속 학과별로 참가 인원수의 격차가 발생했다. 행사 진행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는 결과였다. 그럼에도 박민형 회장은 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입생의 부담감이 사라졌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학과 분위기가 더 중요하죠.”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는 오랜 전통이었던 ‘단톡방 스파이(스파이)’를 지난 2015년 부터 운영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을 주도한 고고미술사학과 공명반 박상현 학생회장(서울대 인문계열 2)은 기존의 신입생 환영 문화가 본래 목적이 전치돼 나타난 것이라 말했다. “첫 만남에서의 어색함을 해소하고자 했던 친목 행위가 왜곡됐어요.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비춰지는 친목만을 강요하고 있죠.”

  그는 신입생과 재학생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 결과 더 나은 반 분위기를 이루는 데에 스파이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반대의견도 있었다. 신입생에게 정보를 공유해주고 학생들 간에 친목을 유도하기 위해선 스파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과 카페를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고 신입생들 간의 어색함이 풀리기를 기다려주면 그만인 일이었다. “스파이가 사라지자 모든 구성원이 스파이에 의한 인위적인 친목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어요.”

  같이 만드는 가치
  신입생 환영 문화에 대한 고찰은 학교 구성원 모두와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는 공론화 과정에서 시작돼야 한다. 중앙대 인권센터 김태완 전문연구원은 단 한 사람의 불편이라도 공론화가 된다면 문제의 인식과 해결에 대한 고민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론화의 장점은 항상 존재해요. 특히 악의 없이 그저 전통만을 좇아온 학생들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될 수 있죠.”

  공론화 과정을 잘 활용한 사례로는 한양대 총학생회 ‘한마디’가 기획한 ‘평등한 새터 프로젝트’가 있다. 그중 릴레이 피켓 캠페인은 총 14개의 단대가 참여해 ‘OO대는 평등한 새터를 위해’라는 문구의 뒷부분을 완성해 총학생회의 SNS에 올리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일종의 단대별 새터 운영 공약인 것이다. 각 단대는 주로 차별적 언어 사용의 지양, 평등한 소통, 의무 장기자랑 폐지 그리고 신입생의 의사 존중 등의 비가시적 억압을 방지할 방법을 제시했다.

  한양대 총학생회 ‘한마디’ 측은 캠페인 참여를 위해 각 단대가 환영 문화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새내기 환영 문화는 학생자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규제가 불가능해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상정하고 함께 토론하는 시간 자체가 유의미한 것 같아요.”

  소리는 두 손이 맞닿아야만 난다
  학생들이 내디딘 변화의 걸음은 진행 중이다. 여전히 불편을 숨긴 채 웃고 있을 누군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태완 전문연구원은 진정한 환영이 이뤄지기 위해선 신입생과 재학생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먼저 신입생의 경우 낯선 문화와 마주한 순간의 자신을 살펴봐야 한다. “이 상황이 스스로 불편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렵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생각해봐야 해요. 강제성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권유가 아니죠.” 김태완 전문연구원은 신입생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관습에 젖은 재학생들보다 신입생들이 문제의식을 느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한편 재학생에게는 학내 전통으로 굳어진 문화의 필요성과 이로 인해 유발될 수 있는 불편함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권했다. 또한 학생 주최의 학내 행사지만 모두가 주시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공론화가 되어도 문제 되지 않을 환영 문화를 이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부적절한 문화를 강요할 때 주변 학생들이 가만히 있는 것은 그러한 문화를 긍정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서 대응하지 못한 것뿐이죠.” 신입생과 재학생 간의 환영의 기쁨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신입생 환영 문화가 정립되기까지는 아직 남은 숙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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