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 걸기’는 어떤 일이나 형상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거나 훼방을 놓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번학기 기획부는 불편함을 당연시하는 우리 사회에 딴지를 걸어보려 합니다. 개강을 맞이해 얘기해 볼 첫 번째 딴지는 ‘대학 내 신입생 환영 문화’입니다. 입학 철마다 불거지는 대학 내 군기문화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뿌리가 근절되지는 않았죠. 대학 사회에는 선배라는 이름으로, 친목 도모라는 이유로 정당화되고 있는 불편한 문화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단톡방 스파이’, ‘장기자랑 및 과 행사 강제참여’, ‘부적절한 게임 및 프로그램’ 등은 눈에 보이는 폭력은 아니지만 신입생에겐 폭력만큼이나 두려운 일이죠. 환영 문화 속에 숨겨져 있는 악습에 딴지를 걸어봤습니다.


3월의 캠퍼스는 봄기운으로 가득하다.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캠퍼스 이곳 저곳에 활기를 전하는 신입생들 덕분이다. 그러나 이들의 앞날은 그리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

  신입생들이 처음으로 친구를 만나는 곳은 ‘단체채팅방(단톡방)’이다. 그곳에서 대학 생활을 희미하게 그려보기도 하고 서로를 알아가며 마음 맞는 친구를 찾는다. 그러나 이 친구가 정말 내 친구가 맞는지는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이 단톡방에 재학생들이 숨어 들어있기 때문이다. 기대 가득했던 환영행사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춤을 선보이고 누군가를 조롱하는 게임을 하며 함께 웃어야만 한다. 설령 그게 싫더라도 피할 수 없다. 선후배 간의 화합이라는 이름 아래서 누구도 빠질 수 없는 전통이고 문화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봄과 함께 시작된 유대의 틈에 불편함이 싹트고 있음을 학생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중대신문은 신입생 환영 문화를 바라보는 대학생들의 시각을 알아보기 위해 신입생 포함, 대학생 총 210명을 대상으로 지난 20일부터 4일간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아직도 내가 친구로 보이니
  ‘단톡방 스파이(스파이)’는 신입생 단톡방에 재학생이 섞여 있다가 나중에 정체를 밝히는 신입생 환영 문화다. 친목 도모에 도움을 주고 학교에 대한 정보를 신입생에게 공유한다는 명목으로 운영하는 일종의 이벤트다. 그러나 과연 스파이가 이벤트라고 불릴 만큼 모두에게 즐거운 행사인지는 의문이다.

  설문조사 결과 전체 신입생 응답자 총 97명 중 약 67.0%(65명)가 스파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특히 ‘신입생 간의 사적 대화가 재학생에게 공유될 수 있다’는 데 스파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한 신입생 총 65명 중 약 61.5%(40명)의 신입생이 우려를 표했다. 처음 만난 선배가 자신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서지호 학생(가명·서강대 경영학부)은 스파이 때문에 당혹스러웠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친구라고 믿고 과거에 왕따 당했던 경험을 털어 놓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분이 스파이 선배였죠. 앞으로의 대학 생활이 걱정될 뿐이에요.”

  “사실 선배라는 권위를 이용해서 신입생을 속이고 놀리려고 하는 거죠.”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학생은 신입생을 거짓된 신분으로 속이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재학생도 스파이를 부정적으로 인식했지만 신입생이 느낀 두려움과는 달리 스파이의 기만성에 초점을 맞췄다. 학교생활을 거치며 스파이의 실체를 알게 된 재학생들은 후배들의 미숙한 대화를 몰래 지켜보며 웃음 짓는 스파이의 의도에 화가 난 것이다. 스파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한 재학생 총 83명 중 약 63.9%(53명)가 ‘타인을 기만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강요도 폭력이다
  아직도 많은 대학에서는 장기자랑 혹은 과 행사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신입생의 참여를 강제하고 있다. 신입생의 다른 일정이나 재능은 중요치 않다. 이에 일부 신입생들은 ‘개인의 의사결정권을 무시하는 처사다’라며 불만을 표했지만 공동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장기자랑 혹은 과 행사 강제 참여’에 대해서는 신입생과 재학생 대다수가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신입생 약 68%(66명), 재학생 약 89.4%(101명)가 강제 참여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 또한 신입생과 재학생이 의견을 같이했다. 신입생 약 80.3%(53명)와 재학생 약 84.2%(85명)가 단지 과 내 전통이라는 혹은 반드시 함께해야만 한다는 ‘정당하지 않은 근거로 참여를 강제하기 때문에’ 강요된 행사 참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를 거부하지 못한 신입생들은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박상현 학생(가명·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벅찬 신입생에게 행사 강제 참여는 큰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학교에 적응하기도 바쁜데 장기자랑까지 준비하느라 많은 시간을 뺏겼어요. 별로 참여하고 싶지도 않은 과 행사에 억지로 참여해야 해서 고통스러웠죠.”

  나이 어린 꼰대
  신입생과 재학생의 조우는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서로의 목을 부여잡으며 ‘러브샷’을 외치고 가발과 치마를 둘러 ‘여장 대회’에 나온 동기에게 환호하고 ‘선배를 웃겨라’는 미션을 위한 개그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이런 ‘부적절한 게임 및 프로그램’은 선배의 권위를 내세워 개인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하거나 수치심을 유발한다. 그럼에도 웃고 즐겨야 친해질 수 있다는 명분하에 부적절한 게임 및 프로그램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짓던 웃음은 쓴웃음일 뿐이었다. 재학생과 신입생 모두 이런 게임과 프로그램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당사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신입생 약 55.4%(36명)와 재학생 약 77.4%(72명)가 부적절한 게임 및 각종 프로그램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로 ‘개인을 불쾌하게 만들기 때문’이라 답했다.

  신입생의 경우 재학생과는 조금 다른 인식을 드러냈다.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신입생이 약 73.8%(48명)로 가장 많았다. 대다수 신입생이 부적절한 게임 및 프로그램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거부하지 못하고 있던 셈이다. 설문에 답한 한 응답자는 “일단 강요하고 따르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식으로 무안하게 만들잖아요”라고 말했다.

  재학생은 위와 같은 신입생의 인식을 알고 있음에도 각종 게임 및 프로그램을 강요하고 있었다. 부적절한 게임 및 프로그램을 부정적으로 인식한 재학생 중 약 62.4%(58명)가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을 이유로 들었다. 이범현 학생(서울대 사회교육과)은 신입생이 느끼는 부담에 공감했다. “친목도 좋지만 후배 입장에서는 이런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선배가 권위를 내세우는 걸로 비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설문조사 결과 친목과 전통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부조리는 사실 모두에게 드러나 있었다. 신입생과 재학생 모두 신입생 환영 문화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된다. 이 고리를 끊지 않는다면 캠퍼스 곳곳에서 웃음으로 자행되는 악습에 신입생은 언제나 그랬듯이 신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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