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첫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입니다. <몬테크리스토>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작으로 하는데요. 주인공 에드몬드 단테스가 자신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사람들에게 복수를 해나가는 이야기죠. 하지만 분노와 복수만이 <몬테크리스토>의 전부는 아닙니다.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서 14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에드몬드는 파리스 신부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출해 부를 축적합니다. 몬테크리스토라는 가명으로 귀족 사교계에 접근한 그는 그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들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죠. 결국 에드몬드는 꿈꾸던 복수를 이뤄냅니다. 하지만 이내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것을 깨달은 에드몬드는 괴로워합니다. 결국 그는 스승의 말대로 세상을 용서하기로 결심하죠. 
  
   “한 가지 선물을 더 주지, 세상을 용서해.” 에드몬드의 친구이자 스승인 파리스 신부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말인데요. 그의 대사는 몬테크리스토가 전달하는 주제의식, 용서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몬테크리스토>는 용서-속죄-화해의 전형적인 전개 대신 처절한 복수와 극적인 용서라는 전개를 택하는데요.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복수극 특유의 재미를 넘어 인간의 본질과 용서의 가치를 생각하도록 합니다. 분노와 용서가 얽힌 파란만장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음악. <몬테크리스토>의 여운에 빠져보는건 어떨까요? 
 
  <밀양>과 『벌레이야기』
  두 번째로 소개해드릴 작품은 영화 <밀양>과 그 원작소설 『벌레이야기』입니다. 이청준의 소설 『벌레이야기』를 영화로 재해석한 <밀양>은 각색된 줄거리로 소설의 주제의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고 호평 받았죠.
 
  두 작품은 이야기의 큰 흐름을 공유합니다. 주인공의 아이가 유괴된 후 살해되고 유괴범은 곧 체포돼 교도소에 수감되죠. 큰 충격을 받은 주인공은 곧 기독교에 귀의하고 범인을 용서하고자 교도소에 찾아가는데요. 자신이 용서하기도 전에 하나님께 먼저 용서받았다는 범인의 말을 듣습니다. 주인공은 절망에 빠지죠. 비슷한 줄거리의 두 작품이지만 각자의 방점은 다릅니다.
 
『벌레이야기』는 용서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벌레이야기』는 주인공인 알암이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마무리되는데요.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은 듯한 범인의 태도에 절망했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대상과 기회를 모두 빼앗긴 것이죠. 이러한 결말은 종교적 용서는 누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종교적 용서를 오용하는 태도를 지적합니다.
 
  <밀양>은 기독교와 용서에 대한 소설의 문제의식을 심화시킵니다. 소설엔 없던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오면서 영화와 소설 사이의 차이가 두드러지는데요. <밀양>은 종찬(송강호 분)이라는 조력자를 통해 <밀양>의 주인공 신애(전도연 분)의 구원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서정남 교수(계명대 언론영상학과)는 “영화에서는 종찬이라는 듬직한 인물이 등장해 신애의 어려움을 함께 겪고 극복한다”며 “신애가 신을 저버릴지라도 신은 종찬을 통해 신애가 구원받을 가능성을 열어두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죠.
 
  또 범인과의 면회 이후 신애의 태도에서도 영화만의 주제의식이 드러납니다. 신애 역시 알암이 엄마와 마찬가지로 범인이 이미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워하죠.
 
  이에 신애는 자살이 아닌 저항을 택합니다. 신애는 예배를 방해하고 신도와 성관계를 가집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죠. 영화는 기독교에 대한 신애의 분노를 표현함과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인간은 신의 명령에 완전히 복종하면서 살아갈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이죠. 이를 통해 <밀양>은 인간이 신의 명령과 복수심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는 점을 부각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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