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동문으로 돌아가
100년 신화를 응원할게요"
 
100. 우리말로 ‘온’이다. 온은 ‘모두의, 전부의’란 뜻도 갖는다. 지난 8년 동안 이태현 전 100주년기념사업부단장(부단장)에게 중앙대와 중앙대의 100주년은 그의 모든 것이었다. 310관(100주년기념관 및 경영경제관)의 주춧돌부터 2018년에 열릴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의 세부계획까지 중앙대의 100주년과 관련된 어느 하나 그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중앙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이태현 부단장은 중앙대에 오기 전 대기업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했다. 공교롭게도 그 기업에서 그의 마지막 직위는 100주년기념사업팀장이었다. 기업의 100주년 사업이 마무리될 즈음 운명처럼 중앙대의 홍보를 맡아줄 사람을 찾는다는 공고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해 준 중앙대에서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은 그에게 뜻깊은 일이었다.

  그가 중앙대에 부임해 처음 맡은 직책은 홍보실장이었다. 첫 직책인 만큼 홍보실에는 그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특히 중앙대 홍보대사 ‘중앙사랑’과의 인연은 큰 기쁨이었다. 홍보대사 학생들의 사진이 가득한 집무실에서 중앙사랑에 대한 그의 애정이 느껴졌다. “홍보대사 학생들은 대학생활을 즐길 시간을 줄여가며 의전 활동과 중앙대 SNS 홍보를 성실하게 도와준 친구들이에요. 일에 있어서는 엄하게 대했지만 함께 울고 웃으며 정이 들 수밖에 없었죠.”

  중앙인 커뮤니티의 ‘청룡광장’ 운영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교수나 교직원에 대한 학생들의 직설적인 표현과 근거 없는 말들로 곤란한 처지에 놓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룡광장에 올라온 글을 보면서 당황한 적이 많았어요. 심지어 제 자신에 대한 욕설에 대해서도 이성적으로 대처해야만 했죠.”

  그럼에도 그는 학교 홍보에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 “전문가집단과 함께 학교 홍보영상을 만들었어요. 중앙대 광고의 격이 한 단계 올라갔다는 평을 들었죠.” 자신의 업적을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홍보실장을 거쳐 미디어센터장으로 발령받아 일할 때도 중앙의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그의 목표는 한결같았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역시 100주년 기념사업이었다. 이 일을 위해 그는 310관의 기념물 하나하나를 구상하며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310관은 그를 거쳐 간 서류 위에 한 층 한 층 쌓여 올라간 셈이다. 그가 사업에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 기대도 컸다. “기다려왔던 중앙대의 개교 100주년을 1년 앞두고 퇴임하게 돼 아쉬움이 남네요. 이젠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응원하며 좋은 소식을 기다릴게요.”

  그는 중앙대를 학생과 교수라는 톱니로 이뤄진 하나의 시계에 비유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비롯한 직원들이 그 시계 속 맞물리는 톱니 사이의 윤활유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학교에 남은 이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중앙의 시계가 멈추지 않을 테니까요.”

  이제 이태현 부단장은 그의 인생에 남은 시간을 가늠하고 있다. “인생의 첫 30년은 사회 초년생이었고 이후 30여 년간은 일만 했죠. 이제 남은 30년은 제가 가진 것을 나누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중앙대에서의 그의 시간은 다했지만 그가 새겨 넣은 중앙대의 100년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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