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 인터뷰] 조주형 전 안성캠 총무처장
  • 김예령 기자
  • 승인 2017.02.1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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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녹색 기와를 올리며
 
 
"정문의 녹색 기와만큼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1981년 4월 16일 중대신문 제855호에서 62대 1의 경쟁률로 신규 채용된 조주형 전 안성캠 총무처장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채용인원이 21명이었는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그를 지금껏 일터에 남게 한 원동력은 지족상락(知足常樂)의 정신이었다. 만족할 줄 알면 항상 행복하다는 말이다.

  그는 지난 36년 동안 부지런히 중앙대를 위해 일해 왔다. 그가 입학팀에서 근무할 당시 대성학원에서는 매년 서울 소재 주요 7개 대학을 선정해 입시설명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소위 명문대의 척도로 여겨지던 대성학원 입시설명회 선정이었지만 중앙대는 번번이 제외됐다. “대학 총장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라고 할 정도로 모든 대학교가 선정되고 싶어 했죠. 중앙대는 안타깝게도 선정되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그는 굴하지 않고 기존 7개 대학 선정 의결권을 가진 대학의 입학담당자들을 일대일로 만나 중앙대를 알렸다. 그 결과 중앙대는 입시설명회에 만장일치로 선정됐다. 당시 공로상을 받았지만 학교를 자랑스러워하는 학생들의 감사 인사가 더 큰 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의 행보는 학교 밖 세상까지 이어졌다. 그는 1989년 3월부터 28년 동안 ‘중앙대 교직원회(보호회)’의 이름으로 한국 어린이 보호재단에 후원금을 전달했다. 전달된 후원금은 어느새 4억6300만 원에 이르렀다. “1988년 소년·소녀 가장 특집 라디오 방송을 듣고 더는 봉사를 미뤄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길로 한국 어린이 보호재단을 직접 방문해 후원을 시작했다. 처음 후원한 아이는 어엿한 성인이 돼 받은 만큼 베풀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월급의 20%를 기부하면서도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다는 그는 지금까지도 봉사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학교를 떠나면서 정문에 있던 녹색 기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미소 지었다. 당시 중앙대는 ‘녹색 기와’로 통했다고 한다. 신입생 합격 발표 날의 새벽녘에는 어김없이 합격자가 적힌 종이가 녹색 기와 아래 게시됐다. 기와 밑으로는 지금과 다름없이 열정으로 가득한 학생들이 지나다녔다. 데모가 많던 시절에는 학생들이 정문을 막고 바닥의 보도블록을 깨서 던지며 의와 참을 외치기도 했다. 녹빛 기억들이 담긴 정문의 녹색 기와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아쉬웠죠. 아쉽지만 담이 없어지니까 좁은 캠퍼스가 넓어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전 잊을 수가 없네요.”

   바쁜 와중에도 여행을 자주 떠났다는 그는 퇴임 이후 아내와 오붓한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장대한 여행 계획은 남미에서 시작돼 태국, 포르투갈, 스페인, 캄보디아 그리고 제주도 등으로 이어진다. 여행 경비를 걱정하는 기자의 말에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며 웃었다. 만족할 줄 알면 항상 행복하다는 그의 신념이 다시금 떠오른다.

  “이게 36년 동안 모은 급여명세서인데 오늘 파쇄하려고 가져왔어요.” 유일하게 모아왔다는 직장생활의 기록을 없애는 것이 아까울 법도 한데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모아온 것이 급여명세서만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직책을 거치면서도 항상 사람을 중시해 온 그였다.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을 거듭 강조하는 모습에서 그가 나눈 사랑이 느껴졌다. 그의 기록은 파쇄기 속에 담겼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사람에 담겨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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