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은 늘 인식 편향적이다. 회고록은 역사를 개인사로 치환시킴으로써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잃게 되지만 또 그만큼의 진실성은 확보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모순은 모순이 아니다. 객관적이지 않다는 게 곧 진실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회고록을 쓴다. 이 회고록의 내용이 사실이 아닐지 몰라도 진실이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2년 6개월 동안의 신문사 생활에 대한 회고록을 쓴다면 이런 회고록이 되고 싶다고 늘 생각했었다. 주관적이지만 진실한, 개인사적이지만 역사적인 그런 회고록 말이다. 저널리즘이라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현실과 철저히 타협하며 이상을 좇고, 존재를 의도적으로 망각한 채 당위를 찾고, 사실을 가장한 채 주장을 펴는 그런 역설을 추구한다는 점에선 말이다.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중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이렇게 안 좋은 면만 보느냐고.”, “긍정적이고 좋은 측면도 많은데 왜 이런 기사를 쓰려고 하냐고.”, “이 기사를 보도함으로써 도대체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학교의 발전을 생각하라고.”, “학교를 비판하는 기사에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내가 하는 일이 과연 학교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일까 수차례 고민해 봐도 내 결론은 같았다. 중대신문이 학교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중앙대의 발전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면 중대신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은 중앙대가 가고 있는 길에 정의와 사실을 따져 물어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뿐이다.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다그친다. “학교 홍보지에 불과하다.”, “대학본부의 변명과 해명으로 얼룩졌다.”, “기계적 중립을 지킨다.” 그들은 더 강하게 누군가를 미워할 것을 주문한다. 비판이 없는 신문은 홍보지, 소식통에 불과하다는 조롱까지 덧붙인다.

  그에 대한 나의 답도 항상 같았다. 정의를 위해 끼워 맞춘 사실은 거짓이라고 다짐했었다. 그들이 생각한 정의라는 가치 위에 사실을 끼워 맞추고 싶진 않았다.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기사를 쓰진 말자고 다짐했다.

  기자 생활을 하며 만났던 중앙대 구성원들은 저마다 중앙대를 사랑하고 있었다. 물론 각자의 방식이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중대신문은 학교의 녹을 먹으며 학교를 비판하는, 독자를 위한다며 독자를 배반하는 신문으로 둔갑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괴로웠다.

  이 모든 질문과 비판들에 대해 내가 편집장으로서 내놓은 답이 정답이었는지는 모르겠다. 2년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나도록 그 답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떠남은 어쩌면 내가 게을러서, 무능해서, 아니면 비겁해서였을 수도 있다.

  결국 이 모든 회한과 번뇌를 잊고 편집국 문을 나선다. 그리고 이 회고록을 말끔히 청소된 편집장 책상에 올려놓았다. 내 후배들이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회고록이 그들에게 꽤 솔직한 회고록으로 읽혔으면 하는 바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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